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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an 09. 2022

고독할수록 더 쏜살처럼 달린다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특송>

<특송>(Special Delivery, 2021)


박소담 배우가 주연을 맡은 여성 원톱 액션물인 영화 <특송>은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과 닮았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최대한 집중하면서도, 불의의 폭력 속에서 선함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죠.

단순명료한 스토리와 전개 스타일 속에서 뜻밖의 함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빠진 카 액션과

박력 있는 격투 액션으로 채워진 좌충우돌 특송 과정을 그저 즐기면 그만이고,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즐겁습니다.


우체국이나 택배에서 취급하지 않는 모든 것을 약속된 시간 내에 실어나르는 특송 업체가 있습니다.

이 업체의 일급 드라이버인 '은하'(박소담)는 오늘도 성공률 100%를 자랑하며 '가시나'라는 편견을 뒤엎고 활약중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묵직한 의뢰가 들어오고, 백사장(김의성)의 등쌀에 먼길을 달려 의뢰 장소에 갔더니만

도착한 곳에 의뢰인은 보이지 않고 웬 아이만 있습니다. 서원(정현준)이라는 그 아이를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쫓으니

은하는 일단 아이를 실어나르기 시작하지만, 경필(송새벽)을 위시한 일당의 집요한 추적이 계속됩니다.

사실 서원이의 아버지인 두식(연우진)이 빼돌린 300억이라는 초거액 돈에 대한 단서가 서원이에게 있고,

경필을 비롯해 그 돈을 손에 넣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서원이를 쫓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송거부도 할 수 없고 반품도 물 건너 간 이 특송은 대체 어떤 길을 달려 어디로 도착할까요.


<특송>(Special Delivery, 2021)


음지에서 드라이버 일을 하는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위기에 빠진다는 설정은 눈에 많이 익습니다만,

한국영화에서 여성을 중심에 세워 이러한 설정을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특송>은 새삼 눈에 띕니다.

물론 그렇다고 시도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수준은 아니고, 선택하여 집중한 요소들의 퀄리티가 꽤 뛰어납니다.

가장 먼저 인상에 남는 것은 주인공의 드라이빙 실력에서 기인한 경쾌한 속도감입니다.

영화의 전반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본 가장 초현실적인 드라이빙 실력을 자랑하는 은하의 활약이 채우는데,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도심 구조를 톡톡히 활용한 카체이싱 장면은 옅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뛰어납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마냥 무작정 때려부수거나 물량공세를 퍼부을 수 없는 환경적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을텐데,

영화는 필요한 만큼의 차량으로 현실 곳곳에 주어진 길들을 누비는 효율성으로 그러한 제약을 극복합니다.

그런가 하면 영화의 후반에 이르러 격투 액션의 비중이 보다 커지는데, 이 강도가 생각보다 상당히 셉니다.

드라이빙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존 윅'만큼의 근접 격투 능력은 어불성설일, 그러나 녹록치 않은 환경을 살아내면서 터득한

최소한의 생존 격투 능력을 활용해 전개되는 액션 장면의 치열함은 웬만한 액션 장르물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설정에서 오는 감수성 면에서의 특징을 굳이 지워내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이 여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강도가 조절되지도 않은 힘이 넘치는 액션 또한 놓치지 않으며 에너지를 유지합니다.


<특송>은 차갑고 건조하게 가라앉는 느와르보다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성 액션을 지향합니다.

그렇다고 신파로 빠진다는 뜻은 아니고,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 주인공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입니다.

영화 초반 드라이빙 실력을 통해 그 어떤 아찔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평정심을 자랑하던 은하가

서원을 만나 그와 동행하면서 점차 그를 지켜주기로 마음 먹는 과정이 그렇게 친절하게 그려지진 않습니다.

연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저 뭔가 통한 게 있어서 두 사람이 함께 하게 됨을 보여주는 느낌임니다.

언뜻 쿨해 보이는 영화의 이런 태도 뒤에는 은하와 서원이 지니고 있는 비슷한 삶의 배경이 보입니다.

극중에 은하가 종사하는 특송 업체의 사장인 박사장은 자신들이 단지 특송 과정만 책임질 뿐이라고 말합니다.

출발지와 목적지가 어떻고는 알 바 아니라는 거죠. 은하와 서원의 처지도 이런 특송 업무의 성격과 꽤 비슷해 보입니다.

'너 친구 없지'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수시로 들을 수 밖에 없는 개인사를 지닌 은하와,

별안간 아빠와 떨어져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서원이는 고독을 공유합니다.

그런 그들이 질주하는 것은 마치 고독이란 한 곳에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짙어질 따름이니,

그저 있는 힘껏 엑셀을 밟고 달려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단지 영화는 그 내면을 절절히 풀어놓기보다,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모습 자체로 보여줄 뿐입니다.


<특송>(Special Delivery, 2021)



액션 장르물에서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는 박소담 배우의 연기가 이런 인물들의 서사를 대변하는 듯 했습니다.

얼핏 박소담 배우의 마스크와 목소리는 파워풀한 액션이 중심이 되는 장르물과 잘 매치되지 않는 느낌인데,

박소담 배우는 이런 우려를 기우에 머물게 하며 난이도 높은 액션 연기를 무척 매끄럽게 소화함은 물론,

남다른 서사를 지닌 인물을 의미심장하면서도 처지지 않게 가뿐한 터치로 그려내며 극을 이끕니다.

영화의 메인 빌런인 경필 역의 송새벽 배우도 오랜만에 매우 개성 있는 악역 연기로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악에 받친 기운보다는 이런 짓들 자체가 그저 생계를 위한 것임을 표현하는 의무감과 피로감을 부각시켜 개성을 살렸습니다.

한편 <기생충>에 이어 박소담 배우와 두번째 호흡을 맞춘 '문제의 의뢰인' 서원이 역의 정현준 배우는,

<기생충>에서보다 한층 더 역동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의 숨통을 틔우고 박소담 배우와 인상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특송>은 주인공의 날렵한 핸들링과 신들린 코너링만큼이나 경쾌한 속도감을 자랑합니다.

대체로 영화의 톤이 그러하다 보니 후반부에 전개되는 액션 장면의 수위를 좀 더 조절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도 있지만,

철저히 배송 과정에 집중하는 특송 드라이버의 직업 정신처럼 더 넓은 서사를 끌어안고픈 과욕을 부리지 않고

달려나가는 사건과 사건 위 인물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영화의 마인드가 즐기기에 딱 좋은 오락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특송>(Special Delive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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