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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Feb 20. 2022

시작한 자가 끝을 내니, 단지 다섯번째 영화가 아니다

인상적인 영화 리뷰 - <스크림>(2022)

<스크림>(Scream, 2022)


시리즈의 1편부터 4편까지를 연출한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세상을 떠난 후 처음 나온 '스크림' 시리즈인 2022년 버전 <스크림>은

호기롭게도 '5'라는 넘버링을 빼버리고 1편과 같이 스스로를 명명했는데, 그 야심에 걸맞은 결과물로 나온 듯 합니다.

시리즈 중 처음으로 다른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시리즈의 유산을 계승하는 정통성이 투철해 보이며,

그러면서도 수 갈래로 흩어졌다가 만나기를 거듭하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들의 변덕스런 계보를 스스로 되짚어가며

새로우면서 동시에 정통적이어야 하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한편 결국 그 모두를 아우르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냅니다.


25년 전 시작된 악몽 같은 전설을 뒤로 하고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즈보로' 마을의 평화가 다시 한번 깨집니다.

십수년 간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한 '고스트페이스' 살인마가 또 다시 사람들의 목숨을 해하러 나타난 것이죠.

마을을 떠나 있던 샘(멜리사 바레라)은 여동생 태라(제나 오르테가)가 고스트페이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에

남자친구 리치(잭 퀘이드)와 함께 황급히 마을로 돌아오고, 사건의 배후를 캐기 시작합니다.

고스트페이스는 마을의 핏빛 역사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10대들을 타깃으로 삼아 숨통을 조여 오는 가운데,

그 역사와 함꼐 해 온 주인공들인 시드니(니브 캠벨), 게일(코트니 콕스), 듀이(데이비드 아퀘트)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른 호러 시리즈에선 매번 같은 살인마가 죽지도 않고 돌아오지만 이 시리즈는 다르죠. 이번엔 과연 누가 범인일까요.


<스크림>(Scream, 2022)


이 영화가 '5'라는 넘버링을 떼어낸 것은 시리즈의 자취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일신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호러만큼 유행을 타는 장르도 없기에, 근래 몇년 간의 호러 트렌드(이를테면 제임스 완, 블룸하우스, A24 같은) 속에서

25년 전 처음 나온 '스크림' 시리즈가 다시 나오는 것이 철지난 우려먹기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극중 인물들의 입을 빌어 '어쩌라고'라는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곧이곧대로 갈 뿐입니다.

돌이켜 보면 일찍이 '스크림' 시리즈가 걸어온 길은 호러 장르의 클리셰를 간파하고 뒤트는 매우 영민한 길이었고,

이는 곧 시대에 발맞춰 업데이트만 잘 한다면 충분히 동시대적인 호러로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감독은 '스크림' 시리즈의 그 고유한 길을 이번 영화에서도 지켰습니다.

옛날 피칠갑 호러의 감칠맛과 살인마의 정체를 쫓는 과정의 리드미컬한 긴장감은 25년 전 1편 못지 않게

싱그러운(?) 에너지를 자랑해 반갑고, 거기에 장르를 분석하고 뒤틀고 반격하는 시리즈 특유의 개성은

그 누구보다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끌어나가길 좋아하는 Z세대의 특성과 결합시켜 동시대적으로 업데이트합니다.

이 5편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계속 곱씹어 보며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호러 영화의 클리셰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의 속성까지도 줄줄 꿰고 있는 영화광 캐릭터들의 대사는

마치 제4의 벽을 뚫는 듯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흐트러지게 하는데, 이를 통해 한편으로 영화는

억지스레 생명력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히스토리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업데이트하는 자신의 역할을 천명하는 듯 합니다.


그래도 '스크림' 시리즈를 쭉 지켜봐 온 이라면 가장 반가운 것은 시리즈를 책임져 온 원조 캐릭터들의 귀환일 것입니다.

3편 이후 11년 만에 나온 4편에도, 4편 이후 11년 만에 나온 5편에도 등장한 이들 캐릭터들은 호러 프랜차이즈로선 극히 드물게

25년에 걸쳐 이어지면서도 시리즈가 줄곧 만족스런 행보를 걸어올 수 있게 한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타 프랜차이즈들과 달리 어떤 에피소드를 없던 셈치거나 하지 않고 전편을 끌어안을 수 있었고요.)

특히 이번 영화에서 이들의 귀환이 반가운 것은 귀환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그에 값하는 역할을 해내게 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세대의 사람으로서 현 세대가 맞닥뜨린 새로운 위기에 대해 수동적인 조언자 역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과거를 붙들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온 살인의 망령을 그 시작점에 있던 이들로서 비로소 끝내려는,

'결자해지'의 의지가 시리즈 팬들에게는 전율로 다가올 클라이맥스의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 줍니다.


<스크림>(Scream, 2022)


그런 점에서 생기 넘치는 젊은 배우들과 관록 있는 오리지널 배우들 간의 호흡이 꽤 만족스럽습니다.

<인 더 하이츠>의 여주인공으로 낯이 익은 샘 역의 멜리사 바레라, 멕 라이언-데니스 퀘이드의 아들이기도 한 리치 역의 잭 퀘이드,

태라 역의 제나 오르테가, 앰버 역의 미키 매디슨, 웨스 역의 딜런 미네트, 민디-채드 남매 역의 재스민 사보이 브라운과 메이슨 구딩 등

역량 있는 젊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원조 못지 않은 텐션이 2022년에 걸맞은 에너지를 극에 부여하는 큰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시드니 역의 니브 캠벨, 게일 역의 코트니 콕스, 듀이 역의 데이비드 아퀘트는 세월의 흔적은 남았을지언정

그 옛날 시리즈 속 성격을 여전히 변함없이 담고 있는, 그러나 25년의 세월을 거치며 넘치는 혈기에 티격태격하던 과거를 지나

이제는 같은 상처를 안고 든든하게 의지하는 친구가 된 모습으로 찾아와 중심을 잡아주고 확실한 임팩트를 남깁니다.

더불어 전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오리지널 멤버가 이번 편에 등장해 반가움(?)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스크림' 시리즈가 늘 그러했듯 이번 편에도 영화 애호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2022년 버전 <스크림>은 리부트와 리메이크, 시퀄의 속성을 골고루 포함하고 있는 이른바 '리퀄'에 해당합니다.

새로운 속편으로서 시리즈의 생명력을 연장할수록 그만큼 원조로부터의 정통성과 멀어질 수 밖에 없는 딜레마를,

시리즈의 역사를 되짚고 재생산하면서 변주하는 방식으로 돌파하는 그 리퀄로서의 사명을 영화는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살인마를 따라 오래된 망령처럼 남지 않고 시리즈를 열고 마무리하는 호스트로서 우뚝 서는,

주체적인 호러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탄생하는 클라이맥스를 목격하게 되니 짜릿하고 통쾌하고 흐뭇해지는 영화였습니다.


<스크림>(Screa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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