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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pr 09. 2022

올라타든지 비켜서든지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앰뷸런스>

<앰뷸런스>(Ambulance, 2022)


블록버스터 전문으로 할리우드의 파괴지왕이라 불리기도 하는 마이클 베이 감독이 비교적 저예산(?)인

4천만불의 제작비로 만든 소품(??)에 가까운 <앰뷸런스>는 예산의 무게에서 벗어나 감독이 잘하는 것을 양껏 해낸 영화입니다.

하드보일드하거나 쿨하거나 하는 최신 영화 트렌드와 상관없이 마이클 베이 감독은 화려한 영상과 선굵으면서도 느끼한 감정선 등

90년대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해 왔는데, 요즘 90년대 트렌드가 다시 유행이라고 이 영화에도 그 영향이 미친 모양입니다.

휘황찬란한 영상과 장렬한 서사가 얽힌 모습이 새삼스레 반갑고, 이게 또 감독 초기작만큼의 텐션을 되찾은 수준으로 돌아왔으니 말이죠.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은 아프가니스탄 등 중요 임무에 투입되며 국가에 헌신해 온 전직 군인이지만,

현재는 아내의 암 수술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도 거부당하는 등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중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가 찾아간 곳은 사업을 하고 있는 형 대니(제이크 질렌할).

어린 시절 대니의 집으로 입양된 윌은 대니와 우애 깊은 형제로 지내왔지만 윌의 입대 이후 왕래가 드물던 상황입니다.

어렵게 돈을 빌려줄 것을 부탁하는 윌에게 대니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돈을 벌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합니다.

은행에 예치된 3200만불을 털자는 대니의 부탁에 윌은 기함을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한 끝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합니다.

최대한 치밀하게 작전을 완수하는 게 목표였지만 이런 이야기에서는 꼭 계획이 틀어지게 마련입니다.

현장에 있던 경관이 총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고, 현장에는 구급요원 캠(에이사 곤잘레스)이 이끄는 앰뷸런스 차량이 투입됩니다.

코너에 몰린 대니와 윌은 캠의 앰뷸런스 차량을 탈취하고, 그렇게 은행강도와 부상당한 경관,

그리고 구급요원이 탄 앰뷸런스는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머금은 채 LA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앰뷸런스>(Ambulance, 2022)


마이클 베이 감독은 야심과 역량의 차이가 극명한 경우라, 그가 잘 만드는 영화를 볼 때 관객의 만족도가 큽니다.

그가 잘 만드는 영화는 관객 역시 그에 걸맞은 기대치를 갖게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실망하지 않죠.

감독이 관객의 기호에 발맞춘다기보다, 관객이 감독의 역량에 발맞춰 기대치를 맞추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갈수록 실망스러웠던 건 원작의 인기나 장르적 개성으로 인한 특유의 기대감이 대중에겐 있었을 것이나,

마이클 베이 감독은 그렇게 원작을 따르거나 관객의 기호에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앰뷸런스>는 그가 잘 만드는 영화의 조건을 갖췄습니다. 사연 있는 주인공, 브레이크 없는 이야기, 폭발적인 액션.

2022년에도 이런 이야기가 통하는가 싶을 법도 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마인드로 돌진하는 마이클 베이의 연출 뚝심은

시대에 부응하는 최신 기술과 비교적 정제된(?) 연출력에 힘입어 2022년의 관객을 기어이 빠져들게 합니다.


<앰뷸런스>의 장점은 짧지 않은 시간, 단순한 이야기를 가지고 꽉 찬 긴장감을 균일하게 가져간다는 데 있습니다.

은행강도에 의해 탈취당한 앰뷸런스를 경찰과 FBI가 쫓는다는 외형적 구도는 단순하지만,

달리는 앰뷸런스에 탄 인물들이 얽힌 기이한 서사가 수시로 국면이 뒤바뀔 수 밖에 없는 긴장감을 줍니다.

모든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수립하고 실행하면서도 살인만은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간주하는 대니와,

형의 강요에 가까운 부탁으로 떠밀려 왔지만 천성이 모질지 못하기에 인간적 도리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윌.

이들은 일종의 인질로 붙잡았지만서도 일이 틀어지는 순간 죽은 목숨이 되므로 앰뷸런스에 탄 경찰을 반드시 살려야만 하고,

그렇기에 유일한 구급처치 전문가인 캠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들을 쫓는 경찰과 FBI 또한 경관의 목숨이 그들 손에 달려 있기에 쫓는 동시에 심기를 거스를까 조마조마해 하고요.

영화는 감독의 평소 성향처럼 시도때도 없이 터뜨리는 성미를 자제한 채, 이들의 이런 위태로운 관계 와중에 생겨나는

뜻밖의 상황들을 연쇄적으로 전개하며 관객에게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서스펜스를 선사합니다.

남발 없이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총격전과 폭발 장면은 그때그때 기대했던 만큼의 임팩트를 그대로 안고 관객에게 돌진합니다.

'찍었으니까 넣은 듯한' 맥락 없는 구도와 시점의 눈요기 장면들이 들어가는 특성은 여전히 남아있고

보는 이에 따라 완급조절이 보이지 않는 일관된 질주 스타일에 호불호가 엇갈릴 수도 있겠지만,

특유의 냅다 달리는 에너지를 획일적인 볼거리 위주로만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앰뷸런스>(Ambulance, 2022)


입체적인 캐릭터도 <앰뷸런스>에 몰입할 수 있게 한 중요 요소입니다. 인물들이 감독이 내건 기치를 전하기 위해,

혹은 의도한 볼거리를 연출하기 위해 이용되는 게 아니라 그만의 명확한 개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죠.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대니는 배우의 전매 특허인 양면성 짙은 캐릭터에 마이클 베이식의 과장된 감정 연기가 결합된 경우입니다.

어떻게든 동생에게 도움을 주려는 끈덕진 우애가 마이클 베이 특유의 살짝 느끼한 감동 코드를 발현하면서도,

꼭지가 돌아버린 자를 연기하는 데 특출난 제이크 질렌할의 에너지 덕에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유지됩니다.

한편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연기한 윌은 표면적으로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선량한 본성이 내재돼 있는데,

앰뷸런스 추격 과정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돌발 상황 속에서 대니와 대립각을 형성하며 균형을 이룹니다.

더불어 에이사 곤잘레스가 연기한 구급요원 캠은 기대 이상의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줍니다.

외형은 그간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에 등장한 미녀 주인공의 계보를 잇는 듯 하면서도

한 장면에서도 성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고 한시도 누구와 러브라인으로 얽힐 기미조차 주지 않으며,

철저한 직업 정신과 능동적인 판단력으로 극에 보다 다채로운 긴장감을 부여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글을 쓰면서 '기대 이상'이란 표현이 여러 번 나왔는데, 그만큼 마이클 베이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나 싶어 웃프기도 합니다.

이제는 '밈'으로 소비되다시피 하며 연출력에 있어서 기이한 이미지로 남는 듯 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이번 <앰뷸런스>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드레날린의 감독임을 보란듯이 입증합니다.

90년대의 바이브를 놓치지 않는 가운데서도 드론캠에 대한 애정에서 보이는 최신 기술의 도입,

시대에 발맞춰 입체적으로 구현된 캐릭터로 내실을 다진 이 영화는 거칠 것 없이 달리는 영화 속 앰뷸런스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마이클 베이의 영화에 즐겁다면 함께 올라타든지 아니면 비켜서라고 다시 호기롭게 말합니다.

이렇게 보고 난 뒤 기분이 깔끔한 것도 오랜만인, <트랜스포머> 이후 마이클 베이 최고의 영화입니다.


<앰뷸런스>(Ambulanc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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