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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pr 24. 2022

내가 본 영화는 당신이 본 영화와 다를 것이다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소설가의 영화>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2021)


<소설가의 영화>는 2018년에 개봉한 <클레어의 카메라> 이후 4년 만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의 영화는 케이블 TV에서도 잘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극장에서가 아니면 만나기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감독의 개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이

그의 평소 영화 스타일을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다소 꺼림직했던 게 사실이었는데,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이번 영화는 좋았습니다.

여전히 해체된 시간 감각 속에서 끊이지 않는 대화로 주절거리듯 사유하는 기이하고도 저절로 이끌리게 되는 공기가 느껴집니다.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글을 못 쓴 게 좀 오래 된 소설가 준희(이혜영) 서울 근교의 작은 책방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준희는 한때 작가였지만 지금은 글쓰기를 포기하고 책방을 운영하는 후배(서영화)를 만납니다.

준희는 책방에서 일하는 점원(박미소)이 수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에 즉흥적으로 수어를 배워 봅니다.

책방을 나온 준희는 인근의 명소라는 전망대 타워에 홀로 올라 도시 전경을 구경하던 중

우연히 예전에 인연이 닿았던 영화감독(권해효)과 그의 아내(조윤희)를 만나 인사를 나눕니다.

그 예전 인연이 썩 편하지는 않았기에 이번 만남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지만, 적적했던 준희는 부부와 함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았던 괜찮은 산책로로 향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배우인 길수(김민희)를 만납니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준희와 길수는 서로 말이 잘 통하고, 준희는 길수에게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2021)


매년 1~2편의 영화를 꾸준히 내놓는 왕성한 창작력을 자랑하는 홍상수 감독이지만, 이야기의 변별력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다 보니

이제는 어느 영화가 어떤 이야기였는지 구분하는 게 헷갈리겠다 싶으면서도, 이 영화의 개성은 꽤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크게 의미는 없는 이야기 대신, 꾸준히 움직이고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나타나는 주인공의 생각을 그리게 되니 그렇습니다.

주인공인 소설가 준희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행위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이야기하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창작물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홍상수 감독 자신의 주관과 어렵지 않게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표현이 여전히 불편한 그의 개인사 보다 영화라는 창작 예술의 의미에 대한 관점으로 향해 있어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준희의 입을 빌어, 영화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적인 수단의 일종이라 이야기합니다.

영화 초반 수어를 배우고는 일상적인 표현을 설레는 표정의 손짓으로 그려내는 준희의 모습처럼,

예술하는 이들은 소설이든 영화든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는 것이죠.

그 내용이 픽션이든 다큐멘터리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스스로를 그릴 수 있느냐 하는 것.

준희의 주장처럼 그 모든 장르적, 형식적 구분에 우선하는 것이 바로 '진짜'가 들어있는가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영화는 이미 이미지와 소리와 텍스트를 동반할 뿐인, 사람의 언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준희는 입에 발린 말은 하지 못하는 성격인 듯 하고, 그래서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뼈 있는 지적을 하는 듯하다가도 진심 어린 애정을 표하고, 좋게좋게 넘어갈 만한 상황을 굳이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준희의 태도가 이미 오직 '진짜'만을 용인하는 그녀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그 가치관이 영화를 향한 태도에도 투영됩니다.

말로 그려낼 수 없는 자신의 어떤 '진짜'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영화를 택했을 테고, 그렇게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일테죠.

준희의 이러한 주관을 통해 나타나는 영화의 사유는 영화라는 창작 예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진 인식을

잔잔히 흩뜨려 놓으며 우리에게 질문으로 와 닿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저 감상되고 향유되는 완성품에 머물지 않고, 만들어내는 감독에게든 표현하는 연기자에게든 수용하는 관객에게든

영화는 출발하고 도착하는 지점에 따라서 저마다 다른 정의를 획득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을 내놓을 것입니다.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2021)


<당신 얼굴 앞에서> 이후 홍상수 감독과 두번째로 작업하는 이헤영 배우는 감독의 필치와 너무나 잘 어우러집니다.

평소의 연기 톤이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보니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어떻게 잘 맞을까 매우 궁금했는데,

영화 속 이혜영 배우는 영화가 주장하는 바처럼 그 특유의 연기 톤을 어느덧 일상 풍경의 일부로 부드럽게 밀어넣습니다.

원래 저렇게 말하는 사람, 원래 저렇게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 같은 자연스러움이 배어들며 극의 그림을 오롯이 그려나갑니다.

이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김민희 배우는 이제 그 연기 화법이 완전히 홍상수 감독의 뜻과 일치해진 듯 합니다.

원래부터 현실의 제스처와 연기의 경계가 모호한 듯 했던 그녀는, 그 경계를 더욱 흐린 채로

일상인 듯 상상인 듯 사유인 듯 경계를 흩뜨린 '홍상수 월드'의 핵심 구성원으로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서영화, 박미소, 권해효, 조윤희, 기주봉, 하성국 등 익숙하기도 신선하기도 한 얼굴의 배우들이,

매번 만날 때마다 익숙하다가도 낯선 홍상수 감독의 돌고 도는 세계를 밀도 있게 형성합니다.


GV나 무대인사가 따로 진행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대부분 만든 이가 사라진 채 완성된 영화만을 스크린 앞에서 마주합니다.

그 어떤 해설이나 각주도 없이 그렇게 외따로 놓인 영화를 지켜보는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흔히 우리는 만들거나 참여한 이의 해설까지 들어야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만들고 표현하고 보는 사람의 진짜를 그려내는 영화에 절대적인 해석은 필요치 않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극중 준희와 길수가 분식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창밖에서 한 어린 아이가 왜 멀뚱히 지켜보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 건,

제3자가 그 장면을 무슨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굳이 알 필요가 있느냐는 영화의 반문이 담긴 것일지도 모릅니다.

홍상수 감독은 이번에도 흘러가는 대화와 멈춰진 카메라 속에 그렇게 저마다 다르게 읽히는 많은 표식을 흩뿌려 두고는,

찾아보고 의미를 만들어 보길 제안합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찾고 만들어 본 의미를 굳이 공언하고 인정받으려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소설가의 영화>(The Novelist's Fil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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