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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May 05. 2022

당혹하거나 매혹당할 무질서의 퍼레이드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멀티버스를 소재로 초유의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벌인 후 이어서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제목에부터 '멀티버스'가 포함되어 있기에 비슷한 방향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아 왔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같은 방향의 기대는 안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깜짝 이벤트는 있습니다.)

멀티버스라는 매개를 통해 그간의 역사를 망라하는 게 아니라 멀티버스로 인해 새로워질 세계관을 예고하는 듯한 이 영화는

베테랑 감독의 대쪽 같은 연출 감각에 힘입어 혼란함 자체가 매혹적인 멀티버스 쇼케이스가 되었습니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 이후의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앞에 웬 소녀가 나타납니다.

자신을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라 소개하는 그 소녀는 수많은 멀티버스를 거쳐 여기로 왔으며,

자신의 능력을 빼앗으려는 미지의 괴물로부터 쫓기고 있다면서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얼떨결에 또 다시 멀티버스의 혼란에 휘말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차베즈와 동행하게 되고,

대혼란을 막고자 어둠의 마법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전 어벤져스 동료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적과 맞닥뜨리는 닥터 스트레인지. 이전에는 멀티버스를 이 세상으로 끌고 들어왔다면,

이번에는 그 자신이 멀티버스 속으로 뛰어들게 되면서 여지껏 겪어보지 못한 대혼돈에 빠져들게 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닥터 스트레인지> 1편이 처음 나왔을 때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마법을 활용한 시공간의 재구성이었습니다.

어벤져스 멤버 중에서도 물리력보다 마법에 특화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상대를 타격하는 파워 대신

심리적으로 무너뜨리는 시공간의 재구성을 '미러 디멘션'이라는 패턴화된 기술로 구현해냈고, 이는 독보적인 볼거리를 선사했죠.

그런데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2>가 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이런 패턴화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제목이 설명하듯 수많은 우주가 마땅한 질서 없이 혼재되어 있고, 인물들은 그 우주들 사이를 불쑥불쑥 넘나듭니다.

각각의 우주에서 각기 다른 가능성들이 실현되고 그 가능성들에는 합당한 논리가 붙지 않습니다. 그냥 이 세계에선 원래 이런 것이죠. 

없던 질서도 만들어내던 전편에 이어 무질설로 수렴하는 이 상극의 속편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마블은 흥미롭게도 전도유망한 감독들을 발굴하던 기존의 제작 방식과 다르게 베테랑 감독을 소환합니다.

그것도 MCU가 들어서기 전 마블 코믹스 원작으로 할리우드를 평정했던 '스파이더맨' 3부작의 샘 레이미 감독을 말이죠.

15년 만에 마블 영화로 돌아온 베테랑 감독의 역할이 그저 고용 감독에 머물지는 않을 터인데 돌아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가 '스파이더맨' 3부작 때부터 총괄 프로듀서이기도 했고요.)

샘 레이미 감독은 화려한 경력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자신의 지독한 색깔을 이 대작에서 마음껏 구현해 냅니다.

MCU라는 세계적인 '영화 산업 유니버스'의 한 가운데에서 그 산업의 자장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은 듯

혼란하고도 매혹적인 비주얼로 날뛰는 영화를 보고 있자면, MCU 영화에서 전에 없던 감흥이 들끓어 오르는 것은 확실합니다. 


일부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MCU 영화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는데, 이는 마블의 치밀한 제작 총괄 역량 덕분이었습니다.

감독이 누구든 간에 마블 스튜디오 차원에서 완성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정하고, 세계관을 정돈한다는 느낌을 받았죠.

거두절미하고 사건을 벌이며 시종일관 내달리는 <닥터 스트레인지 2>의 에너지는 그런 그간의 MCU 영화와는 좀 이질적입니다.

난장판으로 열려버린 멀티버스 곳곳을 난데없이 누비면서 대혼돈을 아예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로 잡아 버리죠. 

명색이 제목에서부터 광기, 대혼돈 같은 단어를 썼으면 그에 합당한 '어디까지 갈까 싶은' 장면들을 보여줘야 마땅한데,

마블에게 샘 레이미는 그런 대혼돈의 에너지를 구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감독이었던 듯 하고, 그 선택은 옳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파이더맨' 3부작 이전에 전설적인 호러 감독이었던 샘 레이미는 그떄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되살려

광기와 힘을 동반한 호러 장르 특유의 에너지로 혼재된 멀티버스를 음산하고도 활기 넘치게 그려 나갑니다.

간혹 호러 영화 떄의 재간을 드러내기도 했던 '스파이더맨' 3부작 때보다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호러적 색채를 드러내는

이 영화는 마블이 앞서 공언했던 대로 MCU 최초의 호러물로 꼽기에 손색이 없으며, 그만큼 꽤나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사실상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 두 인물이 쌍끌이를 이루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멀티버스로의 여행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요인인, 이미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와 돌이키고 싶은 욕망에 대해

다른 태도로 대하는 두 인물의 행보가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혼돈 또는 정돈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힘과 섬세함을 두루 갖추며 무르익은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맛이 확실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분장만 하면 잘생겨지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보다 인간적인 스트레인지 본연의 모습과 더불어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각기 다른 모습의 스트레인지를 변화무쌍하게 그려내며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완다 역의 엘리자베스 올슨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는데, 대단한 파워로만 인상에 남을 수 있는 캐릭터를

세밀한 심리 묘사와 힘있는 감정 표현으로 훨씬 더 와 닿는 인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완다비전]에서부터 구축해 온 완다의 뒤틀리고 서글픈 내면의 그림을 비로소 완성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네요.

아메리카 차베즈를 연기한 신예 소치틀 고메즈 또한 때묻지 않은 느낌의 활기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듯 합니다.

앞서 <닥터 스트레인지 2>의 멀티버스 탐험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때만큼의 충격과 감동을 주진 못할 거라고 한 것은,

이 영화가 우리가 생각하고 겪어 본 히스토리를 되짚어 보는 게 아니라 생각하거나 겪어보지 않은 가능성을 둘러보기 때문입니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곧 MCU에서는 한 캐릭터에도 비선형적이고 다층적인 타임라인이 생성될 수 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수많은 버전의 코믹스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MCU의 향후 전개에 대한 강력한 전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다만 그 방법으로 멀티버스 속 세계와 캐릭터들을 유지하며 동시에 운용해나가는 게 좋을지 그때그때 소모해 나가는 게 좋을지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2>를 보면서 그러한 영화 속 멀티버스의 실질적인 활용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치밀하진 않지만 좀처럼 MCU에서 보지 못한 대담한 비주얼이나 스산한 광란의 기운이 매혹적인 이 영화는,

앞으로 MCU가 그릴 힘과 세계의 구도가 본격적으로 그 경계를 넘나들고 뒤틀릴 것이라는 선언과 같은 영화입니다.

그 '무질서의 질서'가 선사하는 설명하기 힘든 장관은 가급적 큰 화면에서 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 쿠키 영상은 2개 있습니다. 1개는 꽤나 놀라실 것이고, 1개는 샘 레이미의 영화를 안다면 매우 반가울 것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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