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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un 13. 2022

얼만큼 진심이어야 이런 영화가 나올까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탑건: 매버릭>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2022)



1986년 영화 <탑건>의 대성공 이후 속편이 나온다는 소문만 십수년간 무성했는데, 그 끝에 어렵게 제작에 착수하여 완성된 속편 <탑건: 매버릭>은 2020년 개봉 예정이었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2년이나 개봉이 미뤄지면서 많은 영화팬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었습니다. 만남은 조금 늦어졌지만, <탑건: 매버릭>은 36년 전에 나온 영화의 속편으로 왜 지금 나와야만 했는지를 온몸으로 입증합니다.


미 해군의 엘리트 파일럿들을 육성하는 '탑건'을 수료한 후 전설적인 미 해군 파일럿이 된 피트 '매버릭' 미첼(톰 크루즈). 탑건에서의 나날들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생각하기 전에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리고 그걸 또 해내는 본연의 성미는 변치 않고 그대로입니다. 다만 세상은 점점 드론과 같은 무인 비행 기술이 결국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 말할 뿐.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제독 자리에는 올랐을 나이임에도 대령 자리를 고수(?)하며 끊임없이 비행을 갈망하는 그에게 어느날 미션이 떨어지니, 그것은 바로 자신이 수료한 탑건으로 돌아가 이미 탑건을 수료한 엘리트 파일럿들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누굴 가르칠 깜냥이 못된다며 손사래치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오랜 동료인 제독 아이스맨(발 킬머)의 지시임을 알고 매버릭은 그렇게 30여년 만에 자신이 가장 뜨거운 시절을 보냈던 (지금은 위치를 옮긴) 탑건으로 돌아갑니다. 또 한번의 위험한 미션을 위해 모인 정예 엘리트 파일럿들은 '누가 우리를 가르쳐?'라는 마인드로 기고만장하지만, 그런 제자들에게 매버릭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비행 실력으로 자신의 위엄을 입증할 따름입니다. 한편 오랜만에 찾은 탑건은 매버릭으로 하여금 젊은 날의 기억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데, 그 중에는 젊은 날 떠들썩한 스캔들에 함께 휩싸이기도 했던 페니 벤자민(제니퍼 코넬리)도 있지만 자신과 함께 전투 비행에 나섰다가 안타까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가장 절친했던 동료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즈 텔러)도 있습니다. 매버릭은 이제 이곳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성공해야 함은 물론, 여태 지우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도 마주해야 합니다.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2022)


36년이 지난 영화의 속편으로서 <탑건: 매버릭>이 구사하는 전략은 '계승'과 '업그레이드'이며, 두 가지 모두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음악과 크레딧 폰트, 화면 구성까지 1편을 빼다박은 오프닝으로 먼저 이 영화는 36년 전 그 영화 <탑건>의 후속편임을 선언합니다. 실력 있는 해군 파일럿들이 탑건에 모여 갈등과 화해를 거치며 팀이 되어 가고 사랑이 꽃피는 과정도 다시 한번 펼쳐지고요. (기술 발전을 핑계로 충분히 배제할 수 있음에도) 일부 비행 시퀀스에선 전편의 시점 숏을 유지하며 전편에 대한 경의를 보내기도 하죠. 수많은 영화 팬들을 설레게 했던 전편의 비치 발리볼 장면의 뒤를 이어 비치 풋볼 장면을 등장시키고, 전편에 이어 다시 사용되는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을 비롯해 레이디 가가와 원리퍼블릭이 함께 한 오리지널 송들까지, 전편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칠 수 있었던 모든 요소들을 고스란히 가져와 배치함으로써 관객이 <탑건>의 다음 이야기에

기대했을 요소들을 하나하나 충족시킵니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드는 게 아니라 '클래식의 귀환'을 알리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이 영화가 이룬 성취 중에서 어디까지나 '기본'에 불과할 뿐입니다.

두텁게 흘러온 세월을 따라 업그레이드된 기술, 깊어진 정서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남을 세월이 흐른 만큼 기술의 진보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탑건: 매버릭>이 보여주는 비행 시퀀스들은 그런 기술의 진보에 인간의 의지가 더해졌기에 더 감격적입니다. 톰 크루즈가 '내가 직접 비행기를 몰게 해준다면 <탑건> 2편을 찍겠다'고 했다던 제작 후일담도 들었습니다만, 그 후일담에 걸맞게 톰 크루즈를 비롯한 배우들이 직접 전투기에 탑승해 촬영한 비행 장면들은 절대 CG가 대체할 수 없는, 쏜살같은 속도감에 살갗이 간지러울 것만 같고 몸이 휘청거릴 것만 같은 감흥을 고스란히 전하며 관객들을 그야말로 고스란히 미 해군 전투기 조종간에다가 데려다 놓습니다. (굳이 4D 상영관이 아니라도 비행 시퀀스를 보면서 몸을 좌우로 뒤트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곡예에 가깝게 설계된 비행 동선과 이를 살신성인에 가깝게 재현해내는 톰 크루즈와 배우들의 스턴트, 거기에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속도감과 그로 인해 요동치는 풍경을 똑똑히 잡아내는 카메라가 더해지며 한계를 향해 날아가는 이 미 해군 파일럿들의 이야기를 구경하지 않고 체험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처럼 극한에 가깝게 구현된 스턴트와 촬영은 단지 기술적 과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탑건: 매버릭>이 36년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 나타나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이어집니다. 영화 초반, 무인 비행 기술을 신뢰하며 언젠가 파일럿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라 말하는 케인 소장(에드 해리스)의 등장 이후 매버릭이 탑건에서 펼치는 일련의 활약상은 말하자면 여전히 존재하는 파일럿의 역할과 역량과 사명에 대한 절박한 증명입니다. 1편에서 무모하리만치 도전적이었던 매버릭의 성미는 의외로 변하지 않았지만, 이젠 거기에 세월이 부여한 경륜이 더해졌습니다.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때 비로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진리를 동력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매 순간들이 이어진 끝에 지금의 매버릭이 만들어졌으며, 그런 매버릭이 앞으로의 팀을 만들겠죠. 감정 없는 기계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아드레날린이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는 유대와 성취는 해군 파일럿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CG 대신 스턴트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고, 집에서 편안하게 어떤 영화든 골라볼 수 있는 시대에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정신이 고스란히 깃든 액션은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되며, 영화 속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과 자연스레 맞닿게 됩니다.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2022)


톰 크루즈는 30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맡은 매버릭이라는 인물을 원래 쭉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다시 연기합니다. 여전히 그때의 매버릭처럼 호기롭게, 그러나 지금의 매버릭이 지나온 세월만큼 신중하고 현명하게 그려내죠. 정말 오랜만에 그 시절 청춘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활기 가득한 얼굴을 보게 된 것도 좋았습니다. 비행 스턴트 뿐만 아니라 못다 이야기한 사연만큼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 장면들도 꽤 있는데, 결코 오버하지 않고도 휘몰아치는 감정을 섬세한 표정으로 그려내는 모습에서 여전한 관록의 연기력 또한 확인할 수 있었네요. 영화에서 매버릭과 가장 강렬한 감정의 각을 형성하는 루스터 역의 마일즈 텔러 역시 만족스런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방적인 증오라기보다 원망과 존경, 열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매버릭과 대립하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원숙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여전히 설레는, 그러면서도 흘러온 세월에 걸맞게 깊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페니 벤자민 역의 제니퍼 코넬리 역시 톰 크루즈와 매우 적절한 비주얼 조합을 이루며 청춘물에 버금가는 로맨스를 만들어갑니다. 행맨 역의 글렌 포웰, 피닉스 역의 모니카 바바로, 밥 역의 루이스 풀먼 등 정예 파일럿 팀 멤버 역의 배우들 역시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안정된 연기로 그 옛날 1편의 싱그럽고 혈기왕성한 청춘의 기운을 현재에도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1편에서 아이스맨을 연기한 발 킬머의 등장은 병환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프로젝트를 이끈 톰 크루즈와 발 킬머 본인의 의지로 인해 탄생한 소중한 장면으로서 영화가 주는 온갖 감흥의 화룡점정이 됩니다.


<탑건: 매버릭>은 1편으로 끝났다면 활기 넘치는 청춘들의 밀리터리 액션 로맨스물에 머물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평생을 바쳐도 식을 줄 모른느 어떤 열정과 그 속에서 비로소 치유되고 화해하고 완전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뒤바꿔 놓습니다. 덕분에 긴 시간이 흘러 소환된 '추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속되는 '인생'이 되어 우리 곁에 함께 살아숨쉬게 되었습니다. 1편이 톰 크루즈에게 '원 오브 뎀' 청춘스타에서 '넘버 원' 월드스타로 도약하는 계기를 선물했다곤 하지만, 대체 얼마나 영화에 진심이어야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감탄만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스크린X 포맷으로 처음 보았지만 가능한 여러 포맷으로 여러 번 보고 싶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심장 뛰게 하다가 눈물 짓게 만드는, 톰 크루즈의 21세기 최고작이었습니다.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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