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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un 20. 2022

가능성의 우주로 떠날 수 있는 용기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버즈 라이트이어>

<버즈 라이트이어>(Lightyear, 2022)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투톱 주인공인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주인공인 스핀오프작 <버즈 라이트이어>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 속 앤디가 장난감 버즈를 신나게 갖고 놀며 품은 마음을 일으켰을 법한 우주 모험담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이 지혜롭고 사려 깊은 픽사 특유의 시선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론 '꼬마 앤디가 무엇에 이끌려 장난감 버즈를 그렇게 소중히 하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영화라면 꽤 흡족할 만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또 한번 넘는 볼거리들과 함께 말입니다.


우주특공대원 버즈 라이트이어(크리스 에반스)의 임무는 인류를 위해 미지의 행성을 탐험하며 조사하고 자원을 수집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목격한 것들과 다다른 곳들을 하나하나 일지에 기록하며 임무에 완벽을 기하는 그는 매사가 확신에 차 있습니다. 남의 도움 받기를 꺼려할 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는 그러나 어느날 자신의 판단 미스로 큰 시행착오에 부딪힙니다. 그 결과 그를 비롯한 전 대원들이 외딴 행성에 기약없이 고립되고, 버즈는 어떻게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여 자신과 대원들이 고향별로 돌아가게 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뜻밖의 변수들이 끼어들어 일을 그르칩니다. 기대 이상으로 똑똑한 로봇 반려묘 삭스(피터 손)을 비롯한 다양한 개성의 동료들과 함께 버즈 라이트이어는, 시공간의 법칙이 꼬이고 뒤틀리는 우주에서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고 그리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요.


<버즈 라이트이어>(Lightyear, 2022)


'토이 스토리' 세계관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는 영화 시작 시점부터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앤디가 어떤 영화를 보고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캐릭터에 반해 장난감을 사게 됐는데 이게 그 영화'라는 것이죠. 보는 이에 따라 살짝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능히 납득할 만한 설정입니다. 앤디가 우리 시대의 인물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는데, 그가 애정하는 장난감의 모델이 실존 인물이라면 우리가 아는 버즈 라이트이어 캐릭터의 미래적 세계관이 설명되지 않고, 세계관 구축에 진심인 픽사가 이를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요. 때문에 <버즈 라이트이어>는 '토이 스토리'의 앤디가 감명받아 장난감까지 사게 만든 바로 그 영화라는 신박한 설정을 얻을 수 있었죠. 우리가 어릴 때 감명 깊게 본 창작물 다수가 그렇듯, <버즈 라이트이어> 역시 새롭진 않지만 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닮고 싶은 주인공과 매력적인 주변 캐릭터들, 흥미진진한 모험이 그것입니다.


1.43 : 1 풀 아이맥스 비율로 지켜본 영화의 볼거리는 일단 실사영화 저리가라 싶게 놀랍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기술로 언급되는 '하이퍼 스피드'가 구현되며 드넓은 우주를 쏜살같이 관통할 때, 외계 세력들과 하늘과 땅을 넘나드는 추격전을 벌일 때, 별이 점점이 박혀 아름답고도 위험한 우주를 유영할 때 등 필요한 장면에 적재적소로 구현되는 아이맥스 비율은, 스크린을 우주를 향해 뻥 뚫린 창으로 만들며 함께 내달리고 유영하게 만듭니다. 특히 이건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기에 더 가능한 부분일지 모르겠는데, 일반 비율에서 아이맥스 비율로 화면이 전환될 때의 효과도 무척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어 시야와 동공이 확장되는 순간을 관객이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버즈 라이트이어>(Lightyear, 2022)


한편 이 영화는 버즈 라이트이어가 펼치는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의외로 영화는 어떤 거대한 미션을 완수하는 이가 아닌,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려는 이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실패했다는 AI의 음성조차도 듣기 싫어할 만큼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던 버즈가 당면한 시행착오는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이후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과장을 조금 보태 모조리 그 시행착오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없었던 걸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그래서 수없이 많은 결과들을 낳는 시행착오를 만회하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버즈가 겪는 변화는 실패를 무기력하게 수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저지른 실수가 없었다면 펼쳐지지 않았을 소중한 순간들, 만나지 않았을 소중한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죠. 더 좋아지는 '성공의 길'과 더 나빠지는 '실패의 길'만 있기에는 우주라는 공간은 너무나 넓으니까요. 결국 그가 숱하게 외치는 '무한한 공간 저 너머'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가능성의 우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버즈 라이트이어' 성우인 팀 앨런과도 전혀 이질감없이 (영화 속이지만) 현실의 버즈 라이트이어를 늠름하게 연기하는 크리스 에반스의 목소리 연기가 더해져, 영화는 과연 장난감으로 오래 두고 아낄 자격이 충분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두었습니다. '토이 스토리'의 자장 아래 있는 영화로서 그에 걸맞은 완성도와 깊이를 기대한다면 다소 아쉽겠습니다만, 실패라고 믿으며 들어선 길에서 새로운 성공을 얻기도 하는 인생의 법칙을 그래도 어느 정도 반추하고 있는 스페이스 어드벤처입니다. 왜 버즈가 그때 "나는 게 아니라 폼나게 떨어지는 것"이라고 받아칠 수 있었는지 이제 이해되네요.


<버즈 라이트이어>(Light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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