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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ug 15. 2022

나를 확인하려 너를 사랑한다면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노르웨이 출신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으로 미리 보았습니다. 작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로맨틱 코미디'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로맨틱 코미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완성'해 가는 사랑이 중심이 아니라 사랑을 '통과'해 가는 한 사람이 중심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랑이 개인에게 어떤 것으로 정의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따라갑니다. 완벽하게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으로 가는 사랑이야기에 주목하기 전에, 그 가운데에서 성장해 가는 인간에 주목하게 된달까요.


내일 모레 서른이 되는 29세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지금껏 살아오며 줄곧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공부를 잘 하니까 의학을 전공하다가, 사람의 몸보다는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어 심리학을 배우게 되고,

그러다가 예술 쪽이 아무래도 적성에 맞을 것만 같아 사진 찍기를 시작하고, 그렇게 서점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중 연애에 관해 쓴 글로 인터넷에서 화제를 얻게 되자 작가가 적성인 건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자신의 진로를 따라 율리에의 사랑 또한 여러번 옮겨 갔는데, 그녀의 사랑이 바뀌는 것은 살벌한 다툼 때문도 상대방의 부정 때문도 아니었고 그저 이 사랑에서 자신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연인인 40대의 만화가 악셀(안데스 다니엘슨 리)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문제가 불거지고, 때마침 율리에는 낯선 파티장에서 만난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와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율리에는 서른을 코앞에 두고도 끊임없이 궁금해 하고 의아해 하면서 내일로 걸어나갑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마치 논문처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 안에서 율리에의 행보는 그야말로 '갈지자'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시놉시스대로 본다면 율리에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은 이야기인 것 같고 결국 어느 쪽으로 갈지는 정해져 있기에 그 정해진 결말을 향해 우여곡절 끝에 달려가는 로맨틱 코미디인 것 같지만, 그렇게 예상하고 영화를 본다면 사람을 갖고 노는가 싶게 율리에의 오락가락 행보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율리에에게 사랑은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간주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율리에의 태도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게, 영화의 태도 역시 '로맨스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거나 파국으로 가기까지의 서사보다 영화의 중심은 사랑들 사이를 분주히 걷는 개인의 서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인의 서사에는 명확한 시작과 끝이 없고, 쪼개진 챕터처럼 과정의 편린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단지 29세에서 30세로 향해 가는, 길고 긴 삶의 작은 구간 위에서 기승전결을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기에 영화는 사랑을 목적이 아닌 삶을 나아가게 하는 수단으로서 탐구합니다. 탐구라는 표현은 좀 거창한 듯 하고, 율리에의 그런 오락가락 행보를 통해 솔직하게 짚어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매우 끈끈하게 종속되는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흔히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주는 행위'라는 정의가 붙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현대의 사랑을 규정함에 있어서 이러한 정의는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는 것을 율리에의 행보를 통해 보여줍니다. 율리에는 연인과의 애정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위치에 놓이고 어떤 결실을 습득하는가에 주목합니다. 가령 나이차가 많이 나는 만화가 악셀과의 관계에서는 이미 만화가로서 많은 것을 이룬 악셀과 반대로 아직 이룬 것이 마땅찮은 자신의 관계에서 자신은 자연스레 이끌기보다 끌려다니는 입장이 되는 게 아닌가, 그로 인해 내 삶임에도 내가 조연이 되는 게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됩니다. 반면 악셀보다는 한결 또래에 가까운 에이빈드와의 관계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되며 율리에를 난처하게 만들죠. 이건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진심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헌신하고 진실한지 같은 관계의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관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표현되고 확인되며 증명되는지일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고 믿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게 나를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아진 시대에, 영화는 이제 사랑이란 무조건적인 감정으로 완성되는 게 아닌, 아니 완성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지난한 자기 탐색의 과정일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설령 그 과정이 최악의 상황을, 최악의 인간을 만들지라도 이 시대의 사랑과 마주한 이 시대의 인간인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인 것처럼요.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율리에가 무척 홀가분한 표정으로 오슬로 거리를 내달리는 장면은 사실 영화에서 전개되는 전체 이야기 중에선 찰나에 불과하겠습니다만, 흐르는 시간과 일렁이는 감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탐색하는 율리에를 위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일 것입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이렇게 치열하게 자신을 발견하고 증명해 나가는 그녀의 변화를 확인하게 되기에, 관객은 율리에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게 됩니다. 매우 섬세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율리에를 그림에 있어서 주연 배우인 레나테 레인스베는 잊지 못할 존재감을 새깁니다. 정말 영어 제목처럼 '세상에서 제일 최악인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사랑의 방황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능히 납득하게 만드는, 절제되고 신중하면서도 감정에 솔직한 연기로 극을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 이끌어 가는 데 성공합니다. 낯선 얼굴이고 어려운 이름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노르웨이 배우의 이름과 얼굴을 잊기 힘들 것입니다. <퍼스널 쇼퍼>, <7월 22일>, 최근작 <베르히만 아일랜드>까지 은근히 여러 영화에 출연한 악셀 역의 안데스 다니엘슨 리와 에이빈드 역의 할버트 노르드룸은 율리에에게 각기 다른 사랑의 전기, 삶의 전기를 마련케 하는 두 인물로서 사랑의 숲을 통과하며 성장통을 겪는 율리에의 서사에서 흥미로운 긴장감과 균형감을 이루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2시간 남짓한 이 이야기 이후에도 율리에에게 사랑이 있을 것이라 넌지시 내다보게 되는 이 영화에 마침표를 찍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라면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지만, 사랑 사이를 걷는 사람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라면 마침표보다 말줄임표가 어울릴까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이렇듯 사랑이 끝나도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사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타인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투영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사랑이란, 어쩌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과 증명의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는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사랑영화입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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