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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ug 21. 2022

매혹당한 사람들이 만든 참극 혹은 절경

<놉>(Nope, 2022)


- 스포일러 있습니다 - 


<겟 아웃>, <어스> 등 센세이셔널한 호러 영화들을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의 신작 영화 <놉>은 이번에도 시놉시스가 제작 과정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며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만, 전작들이 그러했듯 역시나 조던 필 감독은 시놉시스만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호러 작법 위에 SF 스릴러 장르의 외피를 씌우며 블록버스터의 규모감까지 도모하는 영화는, 제목이 마치 그 어떠한 전형성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싶게 어떤 영역에도 종속되길 거부하는 동시에 많은 영역을 아우릅니다.


OJ(다니엘 칼루야)와 에메랄드(케케 파머) 남매가 할리우드 인근에서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말 농장은 흑인 유일의 할리우드 말 농장이자 영화가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선조의 이어받은 터전입니다. (물론 매 촬영현장 브리핑 때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해야 할 만큼 세간의 인지도는 0에 수렴하지만.) 그러나 통제할 수 있는 더 쉽고 만만한 수단을 원하는 업계는 점점 더 동물을 다루기를 난감해 하고, 이렇다 보니 남매의 말 농장도 예전같지 않다 보니 인근의 서부극 컨셉 테마 파크에 말을 임시로 팔기도 합니다. 테마 파크의 사장인 주프(스티븐 연)는 아역배우로 얼굴을 알린 사람으로서 이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꽤 빠삭한 듯 하죠. 어느날 남매는 하늘에서 괴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목장과 마을 일대는 커다란 혼란에 휩싸입니다. 비행접시 같이 생긴 물체가 나타나 벌이는 그 현상은 대단히 거대하여 공포스러운 한편 동시에 남매를 매혹시킵니다. 그 매혹이란 마치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자람으로 인한 본능과도 같아 보입니다. 이 '무엇'이 일으키는 재난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OJ와 에메랄드 남매, 마트의 가전 파트 점원인 엔젤(브랜든 페레아), 촬영감독 앤틀러스 홀스트(마이클 윈콧) 등이 모여 괴현상을 추적하고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놉>(Nope, 2022)


조던 필 감독이 호러 장르에 직접적으로 천착하면서도 평단의 찬사를 받음은 물론 호러 장르와 가장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는 아카데미상 수상까지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호러 장르적 작법을 미국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유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미국이 드러내길 꺼려했을 치부를 두려움이라는 정서로 치환하여 드러낼 때 임팩트는 사뭇 컸고, 예상을 비웃는 전개와 전형성을 벗어난 플롯으로 이런 메시지를 영화적으로도 훌륭하게 전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번 <놉>이 바라보는 것은, 아마 이 영화 자신도 속해 있을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입니다. 전세계의 대중을 매혹시켜 온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거대한 역사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그리고 그 역사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희생되어 왔는지를 되돌아 보고 있죠. '외계 존재의 습격'이라는 영화의 기본 컨셉에서 좀체 연상되기 어려울 주제이겠습니다만 영화는 이를 기어이 엮어 내고, 그 방식을 영화적으로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구현하면서 관객 또한 이런 영화의 '위험한 역사' 속 일부가 되게 만듭니다. 


영화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지만 경탄할 만한 볼거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때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영화의 역사 안에서 그런 '스펙터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만이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이용해 왔죠. (여기서 '스펙터클'은 단지 규모감 있는 볼거리만이 아닌 '영화적 볼거리'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놉>은 영화라는 매체가 숙명처럼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스펙터클'의 광기 아래 희생된 가치를 주목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말들을 조련하는 말 목장을 운영하는 남매와 아역 배우 출신의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눈에 띕니다. 영화의 시초가 되는 영상에서부터 등장한 말은 현대 할리우드에서도 영화 장면의 일부를 차지하는 동물이지만, 영화 초반 OJ의 인도로 촬영장에 온 말 '럭키'에 대한 제작진의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동원' 내지는 '착취'의 모습입니다. 백여 년에 걸친 영화 역사 속에서 말을 활용한 스펙터클의 연출이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 장엄한 영화적 스펙터클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좋게 말해 '동원'되고 막말로 '착취' 당했을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영화의 한 챕터를 이루는 이야기로 극중 주프가 아역배우 시절 겪었던 침팬지 '고디' 사건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평생의 트라우마일 고디 사건을 동시에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삼는 주프의 현재는, 비단 말하지 못하는 동물이 아니더라도 '진귀한 볼거리'를 쫓아 질주해 온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생겨난 숱한 희생양을 대표하는 듯 합니다.


<놉>(Nope, 2022)


카메라 프레임 안에 '연출'되는 스펙터클을 위해 통제할 수 없는, 통제하면 안되는 것임에도 통제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놉>은 스펙터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때로 침범당하기도 하는 그 통제 불가의 영역을 '눈'에 비유합니다. 영화 초반 말 럭키의 눈을 바라보지 말라던 OJ의 당부, 고디 사건 장면에서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고디의 눈, 마치 눈과 같은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는 순간 상대를 공격하는 괴비행체의 습성까지,

영화에서 눈이란 존재의 정수를 담고 있는, 따라서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으로 그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인물들이 그 '눈'을 좇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인 것도 같습니다. 공포스럽지만 목격해야만 하는 장관, 목격해야만 확인될 수 있는 그 공포는 스펙터클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에게 내려지는 징벌이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네마'의 제국을 존재케 하는 스펙터클 그 자체로서 아이러니한 존재 가치를 이룹니다. 영화가 영리한 점은 이런 스펙터클의 위력을 영화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함으로써,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영화 산업의 양면성을 관객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관객 또한 괴비행체에 위협 혹은 매혹되는 듯한 1.43:1의 풀 아이맥스 비율 화면, 위험한 매혹 앞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거나 쫓거나 유인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 브랜드 페레아 등 배우들의 연기가 그 기이한 체험을 완성하는 중요 요소가 됩니다.


영화 제목인 '놉'(Nope)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영화를 끝까지 봐도 명쾌하게 짚이지 않습니다. 다만 'Nope'의 원래 의미가 단호한 거절의 표현임을 상기한다면, 영화에서 이 단어는 어쩌면 착취와 희생을 감수하며 브레이크 없이 질주해 온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비윤리, 비도덕, 비인간적 단면에 대한 거부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높고 가열차게 '예스!'를 외치기보다 나지막하고 단호하게 '놉.'을 읊조리는 OJ의 모습을 통해, <놉>은 영화라는 역사적 대중예술에 매혹당한 사람들이 빚어낸 참극 혹은 절경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영화와 함께 관객 역시 이 산업에 대한 감시자이자 공모자로서 함께 하는 기묘한 경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놉>(Nop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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