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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Sep 28. 2022

삶의 매 순간이 한 편의 무대일테니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2020)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2020)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를 표방합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뮤지컬 장르 중에서도 기존 히트곡들을 모아 만든 뮤지컬을 가리키는데, 대표적으로 <맘마미아!>가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남녀노소 다 알 만한 인기 가요들이 무척 많기에 충분히 시도할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영화에서 뮤지컬 장르가 제대로 구현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던 것이 사실인데 다행히 비교적 만족스러웠습니다. 뮤지컬이 주는 엔터테인먼트적 쾌감보다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야기와 뮤지컬 장르를 자연스럽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노래와 연기, 이야기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케이스를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세연(염정아)은 고민 솔루션 TV 프로그램에 나와도 될 법한 태도의 남편 진봉(류승룡)과 한창 자라고 공부할 때라 자기 위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고등학생 아들 서진(하현상), 예진(김다인)을 살뜰하게 챙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입니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진봉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야야거리며 쏘아붙이기를 거듭합니다. 심지어 세연의 생일이라 끓인 미역국도 아들 수능 끝날 때까지 미역국 끓이지 말라고 타박하니 세연은 서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생일일텐데, 이번 생일마저 이렇게 보낼 수 없었던 세연은 자신의 생일 선물로 불쑥 첫사랑 정우(옹성우)를 찾아달라고 합니다. 노발대발하던 진봉은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는지 결국 세연의 첫사랑 찾기에 함께 나서지만, 학창시절 사진과 이름 밖에 모르니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전국투어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은 그 여정에서 잊고 있던 지난 날의 궤적들을 발견합니다. 과연 두 사람은 세연의 첫사랑 정우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쉽지 않은 작별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2020)


우선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가 표방하는 한국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서의 면모를 비교적 괜찮게 구현했습니다. 신중현, 이문세, 이승철, 유희열, 이적 등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션들의, 이 정도면 치트키 아닌가 싶게 누구나 알 만한 노래들이 줄지어 등장하는데 뮤지컬 넘버가 흘러나올 때 음향효과가 상당히 풍성해서 익숙한 노래들이면서도 흥과 낭만, 감동을 두루 이끌어냅니다. 동시에 이들 노래의 가사와 스토리가 적절한 시점에 오버랩되어 극의 흐름과도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주고요. 류승룡, 염정아 등 배우들의 노래는 전율을 일으킬 만큼의 절창은 아니어도 힘을 다해 부르는 열창까지는 이를 만합니다. (일상극을 표방한 만큼 가창력보다 연기력에 방점을 둔 캐스팅이 전략이었던 듯 하고, 그 전략은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주효했던 듯 합니다.) 다행히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몸을 잘 쓰는 데다 극장 앞이나 식당, 고속도로 휴게소 등 일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아기자기한 연출이 더해져 안무 퍼포먼스나 프로덕션 디자인은 화려하고 현란하지 않아도 보는 맛이 만족스럽습니다. 한편 이렇게 노래와 퍼포먼스에 많은 장면들을 양보한 만큼 이야기는 단출하고 전형적이며 예측 가능하지만,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노래와 춤은 물론 연기할 때 확실히 활약해 주는 덕에 관객은 그 빤한 감동을 기어이 받아들이게 되고야 맙니다. 여러 장면들이 눈물을 자아내지만 그 중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흐르는 장면의 눈물 타율이 아마 가장 높을 것입니다. "이래도 안 울래?"라기보다 "이걸 어떻게 안 울고 배기나" 싶게 무장해제시켜버리는 장면이었네요.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어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지난 삶을 돌아본다는 이야기는 사실 무척 구태의연합니다. 아내 생일에 생일 축하는커녕 수험생 아들 부정 타게 미역국 끓였다고 타박 주고 옷 덜 말랐다며 툭 던져대는 남편의 행태, 각자 자기들 일에 몰두하느라 엄마가 곁에서 뭘 챙겨주든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안 쓰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고전적(?)이죠. 하지만 영화가 익숙한 노래들을 활용해 80년대부터 훑고 내려오듯, 이는 시기를 한참 지난 고릿적 가족주의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렇게 오래된 가족주의 속에서 당연시되는 모성의 역할을 위해 꿈을 외면해야 했고 그 대가마저 인정받지 못한 어머니를 위한 위로에 가깝습니다. 무슨 꿈이든 꿀 수 있고 어떤 이야기든 쓸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날과 멀어져 전통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강요당해 온 삶이었대도, 그것이 허무하게 흘려 보낸 세월이 아니라 깊고 진하며 아름답게 채워진 세월이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죠. 어째서 누군가의 삶을 향한 이 예찬의 순간이 왜 마지막을 앞두고서야 찾아오는 건지 아쉬울 따름이지만, 영화는 세연과 진봉이 밟는 곳곳마다 마치 그곳의 주제곡처럼 노래들을 연주하며 그곳에 쏟아졌떤 지난날의 스포트라이트를 되새깁니다. '삶을 정리한다'는 표현은 무릇 슬프고 헛헛하게 들리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노래와 춤을 동반한 '삶의 총결산'은 흔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총결산'이 한바탕 축제이듯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축복하는 '잔치'로 귀결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2020)


<인생은 아름다워>는 뮤지컬 장르이면서도 화려한 쇼보다는 노래를 곁들인 일상극인 만큼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적격입니다. 두 주인공 진봉과 세연을 연기한 류승룡, 염정아 배우는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새로운 시도를 든든하게 이끌어주는 쌍두마차입니다. 본디 코미디 연기에 능한 류승룡 배우는 초반부 '진상 남편'의 모습을 얄밉게 보여주다가도 틱틱거리는 와중에 무심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그러다 비로소 아내의 소중함과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으며 진심으로 다가가는 진봉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그려냅니다. 한편 염정아 배우는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밝으려 애쓰는 세연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여주다가도,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슬픔과 아쉬움이 드러날 때에는 툭 감정선을 터뜨리며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 그 진가를 확인케 합니다. 세연의 학창 시절을 연기하는 박세완 배우는 염정아 배우와 똑닮은 외모와 털털한 연기로 학창 시절의 풋풋한 감성을 되살리고, 세연의 첫사랑 정우 역의 옹성우 배우 역시 화사한 비주얼과 함께 영화 속에서 빼어난 퍼포먼스 한 장면을 선보이며 청춘의 장면을 함께 합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밴드 '호피폴라'의 보컬인 하현상 배우는 이 영화에서 진봉과 세연의 아들 서진 역을 연기하며 빼어난 노래까지 선보입니다. 


한국 최초의 쥬크박스 뮤지컬 영화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그 외에 <인생은 아름다워>가 지닌 요소는 사실 무척 복고적입니다. 삶에 대한 긍정, 위로의 메시지는 언뜻 보면 복잡다단한 요즘 세상에서 매우 순진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이런 보통의 삶은 우리 혹은 우리가 함께 해 온 사람들이 살아왔거나 살고 있는 삶이고, 이런 삶을 애정하고 응원하는 태도는 냉정한 평가보다 살가운 다독임이 소중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겁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노래라는 매개로 아우르며 담고 있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하진 못할지라도 알고 있지만 그만큼 그리운 마음을 한껏 안고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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