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그리고 이 세상

<캐롤> - 토드 헤인즈 감독

by 김진만
2fa3ec294f443b14934f94a6692933fc6ebdd052.jpg <캐롤>(Carol, 2015)


- 스포일러 있습니다 -


<브로크백 마운틴>,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같은 걸작 영화들이 속속 나와 그 해 혹은 영화사 전체 베스트 리스트에 꼽히면서 '동성애 영화'를 규정짓는 것은 사실상 그 의미가 없어졌다. 잘 만든 이들 영화들은 동성애를 사회적 특수성에서 바라보거나 제도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서 규정하기보다 보편적인 멜로영화 속 사랑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과 사람이 때마침 남자와 남자이거나 여자와 여자일 뿐인 것이다. 감정과 행위의 본질로 들어가기도 전에 배경 분석부터 요란하게 하는 것이 아닌, 감정과 행위의 본질 자체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자연히 그 배경의 양상까지 둘러보게 만드는 것이 이들 영화의 공통적인 지향점이라면 지향점이었고, 성 정체성을 막론하고 수많은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며 이들은 다행히 그 지향점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동성애를 주제로 삼은 또 하나의 걸작 영화 <캐롤>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앞서 나온 영화들이 '감정의 보편성'을 주제로 삼았다면, <캐롤>은 거기에 '모양새의 보편성'까지 더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여느 로맨스물도 좀처럼 갖지 못했던 시각적, 정서적 우아함을 완전하게 갖춤으로써 같은 성별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영화가 으레 가지고 있을 거라는 어두움, 비주류적 정서에 대한 선입견을 일찌감치 날려버린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는 우아함은, 허세나 오만의 차원이 아닌 인물들과 그들이 품은 감정의 존엄함을 끝까지 지키려는 차원의 숭고한 우아함으로서 기능하고, 결국 고유한 분위기와 보편적 감정을 함께 지닌 이 러브스토리는 성별과 취향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감정적으로 굴복시킬 카리스마를 전면에 퍼뜨리고야 만다.


8d8a582bca20e1193bf533a712afeba291a11097.jpg <캐롤>(Carol, 2015)


1950년대 미국 뉴욕에 두 여인이 있다.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생활을 영위하지만 개인적인 일로 인해 ㄴ남편과의 이혼을 앞두고 있는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 그리고 넉넉치 않은 경제사정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백화점 점원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맨해튼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난다. 캐롤이 실수로 놓고 간 장갑을 테레즈가 돌려주면서 시작된 둘의 만남은 점심 시간을 빌려 식사를 하면서, 캐롤의 집을 테레즈가 방문하면서 점차 잦아진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 함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매달리는 남편의 시선에 답답해 하던 캐롤과, 뭐든지 해줄 기세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그런 남자친구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테레즈에게 서로는 흥미롭고도 호감어린 대상으로 다가온다. 어느날 캐롤이 떠나는 여행길에 테레즈가 동행하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급진전되고, 서로가 진정한 사랑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이 서로와의 사랑으로 만든 성역을 끊임없이 침범하려 들고, 확신에 차 있던 둘의 미래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벨벳 골드마인>,<파 프롬 헤븐>, <아임 낫 데어> 등 내놓는 영화들마다 광범위한 호평을 받아 왔지만 워낙에 과작인 감독이다 보니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이번 <캐롤>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 영화 만으로도 그가 사회적 함의니 메시지니 이야기하기 이전에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다운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드는 감독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우선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당시 나온 영화가 보여줬을 법한 질감과 운치를 멋지게 구현한다. 슈퍼 16mm 필름으로 촬영한 만큼 디지털 버전으로 관람하더라도 필름 특유의 노이즈가 화면을 전체적으로 뒤덮고 있는데, 이게 보면서 거슬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1950년대 미국의 고전미와 낭만을 구현하는 데 확실히 일조하고 있다. 21세기에나 가능한 기술로 1950년대를 재현하는 식의 이질적인 표현이 아닌, 1950년대의 기억을 살짝 들춰보는 듯한 분위기 조성이 탁월하다. 여기에 격정과 품격을 동시에 담아내는 카터 버웰의 음악, 시대의 아련한 공기와 인물의 감정을 모두 섬세하게 포착하는 에드워드 러취맨의 촬영까지 더해 <캐롤>은 두 여인의 사랑이 휘몰아치는 1950년대 미국으로의 '거절하지 못할 초대장'을 관객에게 보낸다. 두 여인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세계로 빠져들지 못하게 할 장애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6e15674906dc1f4ba7df80eeb85505392f4244e6.jpg <캐롤>(Carol, 2015)


여기에 품위와 총명함을 두루 갖춘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또렷한 개성의 캐릭터를 그려가면서, <캐롤>은 멜로드라마로의 여정을 성큼성큼 밟아나간다. 두 배우의 고결한 매력과 품격 있는 연기는 성별이 어떻고를 떠나서 뜨겁게 형성되는 케미에 매료될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이는, 그래서 내면의 상처를 애써 끌어안으며 강인한 우아함을 뿜어내는 캐롤. 그리고 차마 버릴 수 없는 꿈(사진작가)에 대한 열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해 남몰래 심리적 방황을 겪는 테레즈. 계층적 차이를 떠나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있는 두 여인의 만남은 멜로드라마적 측면으로만 봐도 충분히 파괴력 있는 스토리다. 영화는 사회적 함의를 덧붙이기 이전에 이러한 두 사람의 만남과 교감, 그 자체에서 뜨거운 로맨스적 정서를 끌어올린다. 일반적인 멜로드라마들이 다른 배경 설명은 우선 제쳐둔 채 두 사람 사이의 화학작용을 통해 우러나는 사랑의 감정부터 첫째로 주목하듯이 말이다. 처음 마주칠 때 우연히 부딪치는 두 사람의 눈빛, 두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미묘한 성적 긴장감, 가까이 다가가 있을 때 느껴지는 옆사람의 피부, 온기, 솜털에 대한 묘사까지. <캐롤>이 그리는 사랑의 세심함은 여느 로맨스 무비와 비교해도 우위에 설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자고로 멜로드라마라 하면 주인공들의 사랑을 위협하는 장애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장애물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사랑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캐롤>도 예외를 두지 않고 그런 장애물을 마련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분위기를 품은 주변 인물들의 태도이다. 먼저 캐롤의 주변을 살펴보자. 캐롤은 이미 오랜 친구와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남편이 의심의 눈초리를 잔뜩 보내왔던 차다. 그러나 비록 남편에 대한 사랑은 떠났다 한들 모성애는 여전히 절박하게 남아있는 입장에서, 사랑과 모성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남편과 사회의 시선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사랑에 대한 일방적인 기대 혹은 캐롤이 더 이상 정상적인 모성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로운 길을 떠나는 캐롤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테레즈는 어떤가. 현실의 벽 앞에서 사진작가가 되고픈 꿈을 접어두고 생계 유지에 몰두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다 배부른 소리다. 결혼하자, 해외여행 가자, 나는 너를 위해서 직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데 넌 왜 이러느냐 같은 남자친구의 하소연은 당장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테레즈에게 허황된 메아리로 다가올 뿐이다.


004b7983f5e8a0ef107878c7ba28430d672b95db.jpg <캐롤>(Carol, 2015)


이렇게 캐롤과 테레즈의 욕망은, 그것이 모성애든 자아실현이든 주변의 남성들로 인해 섣불리 '이러할 것이다'라고 재단되고 판단된다. 두 사람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속된 구성원이기에 그런 재단과 판단의 시선은 더욱 혹독하다. 이렇게 남성들이 앞서서 여성들의 삶을 미리 정해놓고는 그 정해진 삶을 일방적으로 호출해버리는 사회에서, 캐롤과 테레즈는 정해진 역할과 일생이 아닌 스스로의 이름을,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진실한 감정이 불려지길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사회가 퍼붓는 무언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속에서 둘의 사랑이 피어났을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과 덜컥 부딪혔는데 그게 때마침 서로였다'는 식으로 영화를 순수한 로맨스물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만 보기엔 이처럼 두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사회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다. 그렇기에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은 어쩌면 누구의 판단으로도 아닌, 오직 자신들의 의지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치열한 시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캐롤>은 장애물에 굴하지 않고 사랑을 꽃피우는 러브스토리 자체로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랑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선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사회극으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보여준다. 러브스토리와 사회극, 두 가지 면모의 구획을 따로 나누지 않고 시대의 공기와 사랑이 자연스런 작용-반작용 효과를 일으키며 한몸으로 어우러진다. 오랜 각자의 방황을 지나 마침내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는 캐롤과 테레즈의 모습처럼 말이다. 서로에게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둘의 사랑은 간절하고, 둘의 사랑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숨통을 조이며 들어오니 영화는 멜로영화지만 긴장감을 늦추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멜로영화가 긴장감만 부각된다면 그 추구하는 정서도 자칫 음지의 것, 위험한 것으로 전달될 수 있을 터. 영화는 두 사람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결한 음악과 카메라로 부드럽지만 느슨하지 않게 따라감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위험한 도피가 아닌 치열하고도 신성하기까지 한 자아실현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위태로운 시대에 둘러싸인 그들만의 성채는 불가피하게 웅크렸지만 그 빛은 찬란하다.


e3af919144fd909648682133da6ead379f730af6.jpg <캐롤>(Carol, 2015)


캐롤 역의 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 역의 루니 마라는 그 찬란한 성채로 우리를 이끄는 등불과도 같다. 케이트 블란쳇은 가뜩이나 홀로 있어도 우아함이 흘러넘치는 배우이거늘, 우아함을 극대화시키는 갖가지 영화적 장치 위에 서니 '우아함'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온전히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테레즈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꼴이 엉망이라서.."라며 손사래치는 장면이 혹시 개그인건가, 싶을 정도로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순간은 우아한 품격이 풍성하게 들어차 있다. 그러나 그 우아함은 단지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그녀가 정면을 응시할 적에는 관객의 심장마저 철렁할 만큼 그녀는 갑갑한 사회 환경 속에서도 또렷하고 고매한 자의식으로 보는 이를 감화시킨다. 그녀가 테레즈를 부를 때 "터뢰즈~"라고 발음하는 모습은 영화가 품은 하나의 주요 펀치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루니 마라는 또 어떤가. 안개가 가득했던 미래로 불안해하다가 캐롤을 만나면서 점점 총명한 눈빛을 찾아가는 여인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감정 변화를 표정으로 곧바로 드러내진 않으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냉기가 혈기로, 연약함에서 강인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두 배우의 연기는 세상과 자아를 넓게 포용하는 카리스마와 그런 포용력을 끊임없이 찾아헤매는 시선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궁합을 선보인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마따나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그런 공동체 속에서,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일생의 반려자 한 사람을 찾아헤맨다. 때론 사회가 뿜어내는 공기가, 때론 개인의 내적 갈등이 그런 고독을 낳고 관계에 대한 갈증을 낳는다.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기에, 어쩌면 멜로드라마는 개인의 감정 안에만 머문다고 볼 수 없이 사회와 맞닿음으로써 완성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캐롤>의 마지막,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내내 흔들리던 두 여인이 비로소 어디로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꽃피우면 서로와 만날 때. 영화는 내밀한 감정이 세상 속에서 날개를 펼칠 때에야 완성되는 멜로드라마의 존재 가치를 전례 없이 선명하게 보여준다. 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식상하고 진부하다고 손사래 칠 법도 한 사랑이라는 주제에 인간은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지를 몸소 증명한다. 멜로드라마의 완성형, 사랑이야기의 모범답안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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