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전하고픈 어른들 이야기

<주토피아> -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감독

by 김진만
399fb1e41aef8b9859e8118154337c18c7a9d555.jpg <주토피아> (Zootopia, 2016)


딱 10년 전에 디즈니에서 <와일드>라는 애니메이션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때는 픽사와 드림웍스가 열어젖힌 3D 애니메이션 시장이 신흥이 아닌 주류로 자리를 잡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던 때였고, 2D 애니메이션의 끝자락에 서 있던 디즈니가 그 어느 때보다도 어중간한 위치에 서 있던 때였다. 드림웍스는 <슈렉>, <마다가스카> 같은 영화들을, 픽사는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같은 영화들을 내세우며 자웅을 겨루는 사이 디즈니는 2D 애니메이션 때의 황금기가 무색하게 그들 다음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나온 이 <와일드>라는 애니메이션은 미국 도심 한복판에 입성한 아프리카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마침 전년도에 드림웍스의 <마다가스카>가 나왔던 터라 제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따라하기의 의혹을 지울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디즈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개그 욕심은 오히려 관객에게 씁쓸한 미소만을 안겨주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을 보자. 픽사 출신의 존 라세터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총괄 자리에 앉으면서 디즈니는 드림웍스는 물론 심지어 픽사보다도 안정된 라인업을 요 몇년 간 이어가고 있다. <라푼젤>-<주먹왕 랄프>-<겨울왕국>-<빅 히어로>로 이어지는 최근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인업에서 흠을 발견하긴 어렵다. 디즈니가 이처럼 다시 톱클래스로 올라선 데에는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지키면서 그것을 현대의 기술과 가치에 적용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오랜 브랜드의 역사가 쌓아온 신뢰감은 물론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늘 갖게 되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이번 신작 <주토피아>가 선택한 것은 또 다시 '동물의 의인화'다. 애니메이션의 너무 전형적인 상상력이 아니냐는 의심은 오산이다. '동물이 말을 하네?' 같은 얕은 호기심에서 결코 머물지 않은 채, <주토피아>는 동물의 세계를 사람의 그것에 완벽하게 적용시킴으로써 그야말로 '완전한 의인화'를 보여준다. 그 결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영리하고 통렬한 결과물로 완성되었다.


73c8694a1adea5dc83a26855c2a901154fb0bdb7.jpg <주토피아> (Zootopia, 2016)


토끼 주디 홉스(지니퍼 굿윈)는 어려서부터 경찰을 꿈꿔 왔다. 육식동물이 나라의 요직을 차지하고 초식동물은 조용히 사는 게 편하다는 선입견이 팽배한 터라, 그녀의 부모도 당근이나 파는 게 어떻겠냐고 늘상 얘기하지만 주디는 경찰을 향한 꿈을 굽힌 적이 없다. 노력 끝에 그녀는 중심 도시인 주토피아에 있는 경찰학교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한다. 당당히 경찰관이 된 주디는 초식과 육식을 막론하고 모든 포유류들이 한 데 어울려 살게 하는 '포유류 통합 정책'이 적용중인 주토피아 한복판으로 입성한다. 그러나 동료들에 비해 덩치가 턱없이 작은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사건 수사도, 방범 순찰도 아닌 주차 단속. 그러나 좌절도 잠시, 주디는 특유의 낙천성과 열정으로 기왕에 주차 단속할 거 '열혈 주차 단속원'으로 거듭난다. 한편 도시는 육식동물의 연이은 실종으로 뒤숭숭하고, 주디도 우연찮게 그 실종 사건 중 하나를 맡게 된다. 주디가 영 마뜩찮은 경찰서장 보고(이드리스 엘바)는 48시간 안에 실종 사건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주디는 고심 끝에 주차 단속 중 만났던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제이슨 베이트먼)가 단서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이른다. 주디는 자기를 얕잡아 보면서 수시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능글맞은 닉과 무사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주토피아>는 관객이 원했던 것을 훌륭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객이 예기치 못했던 것을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다. '관객이 원했던 것'의 첫번째는 주토피아의 섬세한 묘사다.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 동물들만 출연하는 이 영화의 중심 배경인 주토피아는 도시 외곽에 종별로 형성된 다양한 마을이 하나로 통합된 것과 같은, 육식과 초식을 막론한 각양각색의 종들이 어우러져 사는 하나의 도시다. 손톱만한 햄스터부터 까마득한 키의 기린까지 이 하나의 도시에서 함께 산다. 영화는 초반부 주디의 경찰 입성과 함께 주토피아의 생태계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열대우림 기후, 툰드라 기후, 사막기후 등 기후에 따라 분류된 지역들이나 개체의 크기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작동되는 편의시설들의 모습은 어른들도 입을 벌리고 보기 충분할 만큼 신선하고 또 디테일하다. 권역과 권역 사이를 이동하면서 기후나 시설의 규모가 어떻게 변화하고, 서로 다른 크기의 동물들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곳의 작동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는 볼거리 중 하나이다.


d0604a67100f3d743e795b0a4094bfe9a5f65e2e.jpg <주토피아> (Zootopia, 2016)


'관객이 원했던 것'의 두번째는 동물 캐릭터의 재치 있는 묘사다. 영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러 동물들에서 떠올릴 법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고스란히 활용하거나 뒤틀면서 큰 웃음을 유발한다. 캐릭터 네이밍에부터 동물들의 명칭이나 특성을 깨알같이 새겨넣었다. 주디 홉스의 'Hopps'에 'hop'(깡총깡총 뛰다)이 들어있는 것, 수달(otter) 캐릭터에 '어터튼'(otterton)이란 성을 붙이고 사자(lion) 캐릭터에 '라이언하트'(lionheart)라는 성을 붙인 것 등이 그 예다. 커다란 눈망울과 복실복실한 털, 풍부한 표정 묘사로 애니메이션 속 동물 캐릭터들로부터 기대하는 귀여움, 깜찍함, 사랑스러움 같은 이미지들 또한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한편 차량국의 직원으로 배정되어 있는 나무늘보들의 모습에서는 밑도끝도 없이 느린 리액션이 폭소를 일으키면서도 민원인이 급하든 말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듯도 해 신랄하다. 한편 비주얼은 심쿵스럽기 그지없는 귀염상 아기여우의 반전 목소리나, 베일에 싸인 조직 보스의 예상치 못한 실체와 같이 크기나 생김새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능청스럽게 비트는 유머도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인 주디와 닉의 케미 향상에 상당한 공을 들인 느낌이다. 넘치는 의욕과 비상한 두뇌를 지닌 주디와 그런 주디를 귀찮아하는 듯 하다가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닉의 호흡은, 둘이 남녀 캐릭터라 그런지 여우와 토끼라는 지극히 만화적인 조합임에도 보는 사람을 언뜻언뜻 설레게 할 정도다. 이렇듯 <주토피아>는 디즈니가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어떤 것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를 다양하고 충만하게 충족시켜준다.

일단 이렇게 관객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게 원했을 것들을 알차게 보여주는 가운데 <주토피아>는 슬슬 생각지 못했던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들 중에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이라 할 수 있었던 디즈니의 선택이라 더욱 의외스럽다. 첫번째는 장르 선택이다. <주토피아>의 장르는 엄밀히 말하면 '호쾌한 어드벤처'라기보다는 '필름 누아르'에 가깝다. 범죄가 발생하고 이것을 수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하나의 범죄 뒤에 더 거대한 진실이 숨어있음이 드러나는 식이다. 액션 장면들이 중간중간 펼쳐지긴 하나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소동보다는 드러난 진실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 나타나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사람이 나오는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어린이는 볼 수 없는 영화로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를 디즈니는 왜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일까. 그것은 때로 아이들이 꼭 들어야 할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bab43694033e3076473a5dfd9472958f94a574be.jpg <주토피아> (Zootopia, 2016)


앞서 말했듯 <주토피아>가 인간 세계를 동물 세계로 옮기는 수준은 단지 동물들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외형 묘사에만 지나지 않는다. 인기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팬덤 문화, 스마트폰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윗분들 눈치 볼 수 밖에 없는 공공기관의 구조와 같은 일상의 디테일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은 물론,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보편화되어 있는 현대 미국의 모습 그 자체를 '포유류 통합정책'이 반영된 주토피아의 중심부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이것은 즉 동물들을 가지고 좋은 게 좋은 식의 꿈나라를 만들겠다다는 의도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트러블 또한 있는 그대로 옮기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세고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완화, 유화시키는 장치로서 '의인화'를 활용한 것이다. 이런 믿음직한 장치를 탄탄하게 구현해 놓고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인종갈등, 계급갈등과 같은 녹록치 않은 사회 문제를 주요 이슈로 가져온다.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고 범죄영화의 양식을 빌려왔기에 코믹하고 스릴 넘치게 펼쳐지지만 이 이슈는 때때로 생각보다 서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포유류 통합정책'이라는 거창한 기치를 내건 유토피아 안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종 간의 갈등은, 외부에서 보기에 다양한 인종들이 조화롭게 사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게 아닌 미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먹이'가 아닌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만 여전히 지역의 요직은 육식동물의 몫이다. 덩치가 크거나 육식인 동물들은 알아서 대접받고, 덩치가 작거나 초식인 동물들은 알아서 역할을 제한받는다. 그 결과 주토피아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외형적으로만 함께 지내고 있을 뿐 갈등의 가능성은 늘 지뢰처럼 밑바닥에 깔려있으며, 영화가 다루는 주요 사건도 그 지뢰 같은 갈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부터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선악의 이미지를 걷어낸 채,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차별과 갈등의 행태를 때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답지 않게 꽤 냉철한 손길로 그려낸다. 단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표현방식을 살짝 선회했을 뿐, 현실 속 인종갈등이나 계급갈등이 영화 속에 그려지는 것을 보면 직접 겪어 봤을 성인 관객들은 마음 한켠이 뜨끔하고 쓰라리게 되고, 아직 겪어 보지 못한 아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 것도 사실이다.


b47d7b17c369d1dfbebfd20e0c62d21a367e262c.jpg <주토피아> (Zootopia, 2016)


그러나 이처럼 냉엄한 현실을 반영하는 와중에도 <주토피아>는 아이들이 충분히 포용할 수 있고, 어른들도 새삼 무릎을 칠 유쾌하고 따뜻한 방향의 솔루션을 제시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여우에 대한 주변의 지적에 한 캐릭터가 "걔가 여우라서 나쁜 게 아니다. 그냥 성격이 안 좋은 애라 그런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영화는 종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낳은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대신 종의 차이로 인한 선입견을 걷어낸 결과를 보여주며 "알고보니 그렇지 않잖아"라고 선입견에 그저 경쾌하게 맞선다. 또한 자신의 신체적, 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경찰의 꿈을 펼치는 주디와 유년기의 상처를 안고 사기꾼이 된 닉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특정 종의 외양이나 그들의 행동 양태에 따라 캐릭터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수많은 동물들마다 떠오르는 행동, 성격의 특성이 당연히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닌 개성일 뿐, 선악이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비밀, 배신, 반전이 난무하는 필름 느와르의 특성을 충실히 그려냄으로써 '겉모습이나 행동을 본다고 당신이 그를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종과 식성을 초월하여 그들의 실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면, 배신이나 반전의 충격 같은 것도 없을테니 말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이 영화를 통해 어른들은 이미 겪었을 차별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걷어낼 때의 즐거움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세상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지만, 또 있는 그대로 전하기에는 너무 어둡고 무서운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다. <주토피아>는 남녀노소가 환호할 스케일과 디테일을 지닌 세계 위에 이런 어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얹음으로써 이 까다로운 과제를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보게 될 줄 몰랐던 장르물에 대한 존중, 디테일한 현실 묘사와 위트 넘치는 패러디로 어른들을 매혹시키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교훈까지 선사한다. 그 교훈은 이전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처럼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강압적인 교훈이 아니다.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세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하는 폭넓은 시선을 지닌 교훈인 것이다. 디즈니의 마음은 여전히 가족 관객들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가족 관객들이 옛날 그 자리 그대로가 아닌 더 넓고 큰 곳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전통이 시대의 공기를 입고 진보할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를 <주토피아>는 확연히 다른 클래스로 증명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 사랑 그리고 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