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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an 07. 2023

개인적인 2022년 영화 베스트 10 - 한국영화 부문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2023년 계묘년, 호랑이의 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는 본격적으로 '위드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면서 할리우드는 물론 웅크렸던 국내 영화계도 비로소 기지개를 켜며 예전 극장가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 충분한 한 해였습니다. 비록 관람료 인상, 영화 관람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참재미를 새삼 상기시키며 큰 즐거움을 준 영화들 또한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를 토대로 2022년에도 개인적인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완성도와 별개로 보지 않은 영화들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한국영화 베스트 10입니다.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국내 정식 개봉된 한국영화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아래는 그 리스트이며, 간단평도 함께 싣습니다.




10위 <카시오페아>


출연 : 안성기, 서현진, 주예림

감독 : 신연식


일찍 알츠하이머 증세를 앓게 된 딸과 그를 보살피는 아버지는 있는대로 눈물을 쥐어짜낼 수 있는 소재였지만, 영화는 이 소재를 관객을 울리기 위함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사랑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활용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사이라 해도 마음의 빚이 쌓일 수 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 그럼에도 그 빚으로 인해 때로는 서로를 위해 기꺼이 빛이 되어주기로 결심하게 되기도 하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비극 속에서도 담담한 통찰을 통해 발견됩니다. 보는 이의 가슴마저 쥐어뜯게 만드는 서현진 배우와 애써 고요한 얼굴아래 깊은 후회와 근심을 느끼게 하는 안성기 배우의 열연이 더해져, 영화는 비극을 예정하는 이야기임에도 짜디짠 눈물 이전에 눈부신 감동을 안깁니다.




9위 <한산: 용의 출현>


출연 :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규, 김성균, 김향기, 옥택연, 공명, 박지환, 조재윤

감독 : 김한민


이 영화에 이르러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에 대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적 탐구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편 <명량>이 신파와 주입식 메시지를 곁들여 그려내는 이순신에 대한 감성적 설득이라면, 이번 <한산: 용의 출현>은 철저히 전술 대 전술, 장수 대 장수의 대결을 통해 이순신을 말 그대로 '증명'합니다.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전장의 안과 밖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결실을 본 끝에, 극의 최종 격전지인 한산도에서 베일에 싸여 있던 전략이 구사되고 이순신이 마음 속에 품어 왔던 영감이 비로소 실현될 때의 쾌감은 구체적이고 진정성 어리기에 더 짜릿합니다. 야만적으로 분노를 자극하는 대신 전의에 불타는 적으로서 상대할 뿐인 왜구의 존재,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이순신의 신념과 오버랩된 이 전술과 전략은 민족주의를 넘어선 인본주의의 명분을 갖추고, 군의 역량과 승리의 카타르시스를 더욱 당당히 만끽할 수 있게 합니다. 황혼기의 혼돈과 각성으로 대표되었던 <명량> 속 이순신부터, 과묵한 관록의 신념으로 표현된 <한산: 영의 출현> 속 이순신까지, 다음 이순신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8위 <성덕>


출연, 감독 : 오세연


생태계나 자연 현상, 사회적 사건이 아닌 개인적인 소회에서 출발하는 이 개성 넘치는 대중문화 다큐멘터리 영화는 MZ세대의 실행력과 통찰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형사 범죄의 가해자가 되어 쇠고랑을 찬 연예인을 한때는 '오빠'로 칭송했던 이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종의 사적인 '테라피'에서 출발한 영화는, 개인의 영달과 몰락에 자신의 성장기 또한 빛나거나 외면하게 되는 팬덤 문화의 기이한 유대감을 경험적 측면에서 추적하는 일종의 '탐구'가 되어 갑니다. 그리고 카메라라는 수단을 통해 그 속에서 힘겨워 하는 서로를 위로하고 각자의 심경을 토로함으로써 그럼에도 빛났던 우리의 청춘 시절은 부정당할 수 없다는 따뜻한 다독임에 이르죠. 유려하진 않더라도 통렬한 풍자와 해학의 타고난 감각을 곳곳에서 뽐내고, 함께 겪어 봤기에 가능한 너른 포옹까지 잊지 않는 기특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7위 <범죄도시 2>


출연 : 마동석, 손석구, 최귀화, 박지환, 허동원, 하준, 정재광

감독 : 이상용


<범죄도시 2>는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적인 장기 프랜차이즈가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드문 경우입니다. 사실 전편의 성공은 '깜짝 히트'에 가까울텐데도, 이번 2편은 오히려 전편보다도 더 노련하게 구축되고 전략적으로 내다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압도적인 능력치와 더 풍부해진 유머로 등장만 하면 편안해지는 히어로의 신뢰감이 더 두터워진 마동석 배우의 활약, 그럼에도 어느 한쪽이 싱겁게 밀리지 않고 팽팽한 밸런스를 형성하는 히어로와 빌런의 구도, 영화 내내 느슨해질 줄 모르고 유지되는 속도감과 더욱 힘있고 유려하게 뽑아져 나온 액션 신까지. 그 모든 완성도를 위한 노력을 오직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위해 기울인 끝에 보여준 결실은 앞으로 예정된 수 편의 속편에 대한 자신감을 결과물로 입증합니다. 인생영화로 언급되긴 힘들어도, 극장을 가는 즐거움을 끊임없이 상기시킬 프랜차이즈가 우리나라에서도 버젓한 모습으로 탄생했다는 성과를 보여준 영화입니다.




6위 <올빼미>


출연 : 유해진, 류준열, 최무성, 조성하, 박명훈, 김성철, 안은진, 조윤서

감독 : 안태진


개봉 전 시장의 기대치가 그리 크진 않았던 <올빼미>는 팩션 사극, 장르물 사극의 모범을 보여주며 올해의 대표적인 '슬리퍼 히트' 사례가 되었습니다. 상상력을 떨치기 위해 함부로 건드려선 안될 역사의 마지노선까지 건드는 팩션 사극의 과오를 숱하게 봐 온 대중에게, 역사 속 기록을 명확히 짚어내면서 그 사이 공백만을 파고 들어가 장르적 상상력으로 채우는 이 영화의 신중함과 대담함은 무척 반가웠습니다. 주맹증이라는 신선한 설정은 극적 변수를 이끌어내는 수단이자 봐도 못 본 척 해야 하는 힘없는 계층의 처지에 대한 적절한 메타포로 기능하고, 단 하룻밤이라는 시간적 설정은 장르물로서의 긴장감을 배가하는 훌륭한 장치가 됩니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전복시키면서도 역사물로서의 사실성과 위엄을 잃지 않는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 <올빼미>는 역사가 스포일러임에도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장르적 뚝심과 메시지의 핵심을 모두 성취한 영화입니다.




5위 <헌트>


출연 : 이정재,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김종수, 정만식

감독 : 이정재


한때는 배우의 감독 데뷔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봐 왔었다가 이제는 기대감을 더 크게 품고 지켜보게 되었는데, <헌트>도 그에 걸맞는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언더커버 스파이'라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가져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과감히 교차하는 것은 물론, 그 소용돌이 속 인물들에게는 스파이물의 낭만보다 격랑의 시대에 휩쓸린 개인의 요동치는 내면을 부여함으로써 진정성 또한 획득합니다. 여기에 배우이기에 절감할 수 밖에 없는 현장의 격렬한 공기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액션 연출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정재라는 입지전적 커리어를 쌓은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특수한 전제를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영화 만드는 이의 뚝심으로 첩보 액션물로서의 활력과 현대사물로서의 통찰력을 모두 잃지 않는 야심과 성과는 올해의 데뷔작 중 한 편으로 꼽기에 손색 없게 합니다.




4위 <소설가의 영화>


출연 : 이혜영, 김민희, 서영화, 박미소,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기주봉, 이은미

감독 : 홍상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곱씹어 볼 여지가 많아지는 듯 하고, 그래서 보고 난 뒤의 감흥 또한 풍성해집니다. 그의 영화는 때로 넋두리로 느껴지고 때로 사색처럼 다가오는데, <소설가의 영화>는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습니다. 한 영화감독이 여러 사람과 만나며 여러 방식으로 소통하는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며, 영화는 '예술적 표현'이 아닌 '인간적 소통'으로서 영화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듯 합니다. 때로 설명되지 않는 인물의 태도나 카메라의 포커스가 등장함에도, 이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거는 수수께끼라기보다 '나의 이런 표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홍상수 감독이 곧잘 그려내던 개인의 시시콜콜한 욕망의 단상보다 그런 모든 감정들을 표현하는 영화라는 예술적 수단에 대한 고찰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새삼 새로웠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 정서적 영향을 진하게 남겼습니다.




3위 <성적표의 김민영>


출연 : 김주아, 윤아정, 손다현, 임종민

감독 : 이재은


<성적표의 김민영>은 처음 마주할 때 당혹스럽지만 돌이켜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누구나가 겪는 우정의 전환기를 다룹니다. 제도적 제약에 의해 한 공간에 묶여 있으면서 자연히 늘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의 우정이 어른이 되면서 비로소 제약을 털어내고 자율권을 획득할 때, 그리하여 결국 서로의 지향점이 달랐다는 걸 확인할 때 흔들리는 우정을 영화는 극적인 전개 대신 미묘하게 어긋나는 상황과 삐걱거리는 감정선으로 사실감 있게 그러나 너무 불편하지 않게 그려냅니다. 버퍼링 걸리는 감정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친구들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과 이를 애정어리게 포착하는 감독의 시선을 통해, 영화는 어떤 우정이 끝을 맺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과정을 흐뭇하게 보여줍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비애와 긍정할 수 밖에 없는 희망 속에서 진짜 우정을 발견하게 되는 인상적인 성장물이기도 하겠습니다.




2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출연 : 임지호, 양말복, 정보람, 양흥주

감독 : 김세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가 보여주는 가족 관계는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관용적 표현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파국으로 간다기보다 그저 계속 파괴적인 듯한 이 관계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관계의 현주소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기에 서로를 더 공격적으로 미워합니다. 사랑에 대한 표현은 더 인색해지고 미움에 대한 표현은 더 모질어질 수 있는 가족이라는 관계는 그렇다고 바깥에다가 토로한다고 이해받을 수 없는 고유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소할 수도 없이 그저 사그라들지 않는 앙금에 마음이 들끓으면서도 그것을 토로하는 것조차도 서로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 답답한 관계를 영화는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한편, 그 서글프고 얄궂은 가족의 어떤 얼굴을 끝내 분노와 증오를 넘어 울적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게 합니다. 스크린을 잡아먹을 듯한 배우들의 연기와 이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집요한 연출이 어우러져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차갑고도 뜨거운 가족영화가 되었습니다.




1위 <헤어질 결심>


출연 :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감독 : 박찬욱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멜로라는 색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물론 멜로 장르의 역사 위에 독보적인 성취를 새겼습니다. 그의 영화가 지닌 트레이드마크나 다름 없었던 자극적 표현을 일절 배제한 채 '느와르' 장르의 조용한 긴장감을 '멜로' 장르의 절절한 감정선과 완벽하게 결합한 솜씨는 또 볼수록 달리 보이게 하고 곱씹을수록 풍성한 맛을 느끼게 합니다. 강하게 부정할수록 더욱 짙어지는 혐의처럼, 멀어질수록 더 강렬하게 원하고 찾아 헤맬수록 더 선명하게 자리하는 사랑의 짖궂은 역설을 박찬욱 감독은 마치 춤처럼, 시처럼, 소설처럼 대담한 필치와 은은한 운치를 넘나들며 그려냅니다. 안갯속에 진실을 둔 사건마저도 가뿐히 집어삼키는 사랑의 파도는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고서도 정교하게 그려나가는 말과 표정을 통해 사무치게 보여줍니다. 사랑에 동요하게 만들고 사랑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해도 좋을 사랑 영화의 역작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개인적으로 꼽아 본 2022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2022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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