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만 Jan 11. 2023

개인적인 2022년 영화 베스트 10 - 외국영화 부문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지난 한국영화 베스트 10에 이어서 이번에는 외국영화 부문에서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올해 외국영화 분야는 플랫폼, 국가, 규모를 막론하고 다양한 개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런 만큼 꼽아보니 참 다채롭게 보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듭니다. 아래는 그 리스트입니다.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정식 개봉(공개)작 중 제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0위 <놉>


출연 :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 마이클 윈콧, 브랜든 페레아

감독 : 조던 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참가자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다음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일 것입니다. 조던 필 감독은 그런 점에서는 적어도 전세계 영화계에서 손에 꼽을 인물일 것입니다. 사회 비판적 호러물로 연출 색깔을 굳혀 가려나 하던 예상 혹은 기대를 가차없이 배반하며 내놓은 이 초자연적 SF 호러 블록버스터(?)는 그래서 공개 후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절되어 있는 듯 실은 철저히 이어져 있는 과거와 현재의 재난을 통해 인간의 필연적인 감정인 두려움과 호기심, 그 감정을 흡혈귀처럼 빨아먹는 산업의 단면, 그 속에서 때로 눈부신 순간을 선사하는 영화의 성취까지를 아우르는 야심은 시청각적으로나 내러티브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김은 틀림없습니다. 이 영화가 어떤 인상을 남길지는 저마다 의견이 분분할 것이나, 인상에 남지 않았다고는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9위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


출연 : 주니어 N.T.R., 람 차란 테자, 알리아 바트

감독 : S.S. 라자몰리


우리나라는 인도영화의 불모지이지만서도 <세 얼간이>, <당갈> 같이 인도 영화계에서 주요한 방점을 찍은 영화들은 그래도 극장 개봉을 하곤 했는데,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가 넷플릭스 독점으로 공개되며 극장 개봉이 불발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영화는 흔히 '마살라'로 칭하는 인도영화 특유의 극도로 과장된 스펙터클이 이 정도면 하나의 독보적인 예술에 가깝다는 것을 몸소 증명합니다. 예상과 상식을 사정없이 깨뜨리는 스펙터클의 향연 속에서 '다음엔 무슨 장면이 나타날까'하는 기대감과 함께 증폭되는 것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간에 뜨겁게 부딪히는 에너지입니다. 인도의 실제 독립투사들을 모델로 한 그들의 초인적인 액션은, 영국의 식민 지배라는 인도의 어두운 근현대사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며 어느덧 그들의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우리의 가슴까지 뜨겁게 합니다. 오죽하며 <기생충>더러 지루하다고 했다던 감독의 과거 발언을 '이런 영화 만들 만하면 그런 말 할 만하다'고 납득할 정도였습니다.




8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출연 : 레나테 레인스베, 안데스 다니엘슨 리, 할버트 노르드룸

감독 : 요아킴 트리에


맺어지든 헤어지든 흔히 사랑 영화에는 마침표가 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이 사랑 영화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에는 사랑이 아닌 그 사랑을 겪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겐 사랑이 끝난다고 해서 삶이 엔딩을 맞이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대상과 만남과 이별을 거치는 가운데 무척 변덕스럽게도 이기적이게도 보일 수 있는 주인공에 우리가 끝내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녀에게 사랑이란 내가 누군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아래 무조건 하나가 되는 남녀를 예찬하지 않고, 그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처지와 입지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관계의 역학을 들여다 봅니다.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로맨스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는 이 유별난 영화는 그러나, 감각적이고 사실적으로 사랑의 숲에서 자신을 찾아 헤매는 개인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어느 로맨스 영화보다도 진하게 마음에 내려앉습니다.




7위 <레벤느망>


출연 :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감독 : 오드리 디완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영화화한 <레벤느망>은 낙태를 소재로 한 충격적인 영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야 할 충격은 낙태의 실상이 아니라 낙태로 향해야만 하는 여성의 공포에 향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았다간 사회에서의 경력이 끝나고, 아이를 지운 것이 들통났다간 범죄자가 되는 현실이 주인공에겐 영화의 제목처럼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지만, 그녀 외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개인의 선택'일 뿐입니다. 아이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주인공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관객은 그녀가 지켜야 하는 권리와 돌파해야만 하는 선택의 무게를 절절히 깨닫게 되고, 그런 만큼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권리와 선택을 한없이 가벼이 여기는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훌륭한 영화는 때로 내가 평생 느낄 일이 없는 감각과 감정을 간접체험하게 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한결 넓혀주는데, 이 영화가 그런 경우입니다.




6위 <서부전선 이상없다>


출연 : 펠릭스 카머러, 알브레이트 슈흐, 아론 힐머, 모리츠 클라우스, 에딘 하사노비치, 다니엘 브륄

감독 : 에드바르트 베르거


수차례 영상화된 바 있는 익숙한 제목의 고전 전쟁소설의 또 다른 영화화라고 하기에 기대치가 크지 않았던 이 영화의 결과치는 충격적일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베테랑 병사가 아니라 전쟁 영웅의 허상에 빠진 평범한 소년의 시점으로 들어서는 전장의 공기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영화는 일체의 미화없이 전장에서 펼쳐지는 인간 대 인간의 잔혹한 살육, 당대의 새로운 전쟁무기가 선사하는 불가항력적인 공포,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이 바스러져 가는 풍경을 건조하게 그러나 똑똑히 지켜봅니다. 총성조차 어렴풋이 들릴 정도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여유 넘치게 휴전 협정을 하거나 성질머리만 앞세워 혈전을 지시하는 사람들과 대비되며, 영화가 보여주는 전장의 참상은 오직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참혹한 비극의 무게를 실감케 합니다. 당시 세계에 전운을 드리우게 한 독일에서 만들어졌기에 더욱 냉엄할지 모를, 전쟁영화의 새로운 명작입니다.




5위 <아바타: 물의 길>


출연 :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스티븐 랭, 케이트 윈슬렛, 클리프 커티스

감독 :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메가히트를 친 전작에 이어 긴 공백을 거친 끝에 신작을 내놓는 몇번의 과정에서 누누이 우려를 보기 좋게 깨뜨려 왔습니다. 그래서 시청각 체험의 신기원을 연 <아바타>의 속편도 그 뒤를 이어주리라 기대는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 물의 길>의 기술적 성취는 믿기 어려울 수준입니다. '판도라 올로케이션 영화'라는 우스갯소리를 진정 의심케 할 만큼 실제에 근접하다 못해 실제라고 할 만한 시각적 구현은, 오롯이 감독의 머릿 속에서 나온 세계일 판도라를 더는 가상 세계로 믿지 않게 만듭니다. 전통적이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는 안일하다기보다 세계에 몰입하기에 가장 최적인 바탕으로서 그 역할을 하고, 그 위에서 관객은 3시간 10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고도 또 보고 싶다 아니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유례 없는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영화의 제왕'이 새롭게 정의하는 영화를 만난 올해의 영화적 이벤트라 할 만합니다.



4위 <우연과 상상>


출연 :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나카지마 아유무, 모리 카츠키, 시부카와 키요히코, 카이 쇼마, 우라베 후사코, 카와이 아오바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작년에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베스트에 올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연과 상상>은 그보다 한층 소소하면서도 실험적인 접근으로 또 한 편의 베스트 영화가 되었습니다. 우연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지를 순전히 인물간의 대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마음껏 상상해 보는 세 개의 에피소드는 일단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어서 놀라게 됩니다. 쉽고 생생하게 짜여진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것은 우연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아찔한 순간 혹은 뜻밖의 기쁨,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언어로 세계를 탐색하고 자아를 확인하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우연이라는 건 사실 이런 창작물에서 중시하는 개연성과 배치되는 요소일텐데도, 치열한 대화와 이를 통해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은 오히려 우연이 삶의 중요한 일부분임을 깨닫게 합니다. 기대치 않은 기쁨으로 마무리되는 세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면,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 차 있기에 비로소 우리의 삶이 자유롭다는 또 다른 응원을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3위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목소리 출연 : 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그레고리 만, 크리스토프 왈츠, 틸다 스윈튼, 핀 울프하드, 론 펄먼, 케이트 블란쳇

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마크 구스타프손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아마 익히 알려진 원작의 또 다른 해석이라고 하여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한 손에 꼽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크 구스타프손 감독과 함께 만들어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투박한 캐릭터와 매끄러운 움직임, 오랜 공이 들어간 그 시각적 성취로도 충분히 놀랍지만 그 안에 형식적, 장르적 시도에 아랑곳 않고 투영된 감독 고유의 세계관이 큰 감동을 줍니다.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이 가져온 전쟁의 그림자를 여과없이 극에 끌어들인 가운데, 아들의 '대체물' 혹은 떼돈을 벌어다줄 '광대' 혹은 무한히 재생 가능한 '슈퍼 솔져'로서 정체성을 강요받던 피노키오가 비로소 피노키오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죽음의 슬픔과 공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어리석은 세상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삶의 기쁨과 완벽히 조응합니다. 피노키오의 성장이라는 전통적 테마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폭력적 시대에 대한 풍자와 유한하기에 비로소 빛나는 삶에 대한 예찬을 응축해 담아낸 영락없는 델토로의 영화였습니다.





2위 <탑건: 매버릭>


출연 : 톰 크루즈, 마일즈 텔러, 제니퍼 코넬리, 글렌 포웰, 존 햄, 발 킬머, 에드 해리스

감독 : 조셉 코신스키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2년이나 미뤄진 뒤 왜 그렇게 해서라도 극장 개봉을 해야만 했는지 압도적으로 증명한 이 영화는, 장인의 집념이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를 영화란 매체에서 최상급의 결과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전편 이후 36년의 시간이 지나 베테랑 파일럿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방법은 고리타분한 충고가 아닌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톰 크루즈가 한계에 도전하며 배우로서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몸소 재현하는 가운데, 이런 와중에도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자취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포용함은 물론 새로운 세대의 활력과도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비로소 이 영화에는 최소 2대 이상의 세대가 함께 열광하게 됩니다. 40년 가까운 영화 인생을 걸어오며 톱배우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스타가 보여줄 수 있는 이 최상의 자기 증명은, 관객에겐 곧 이런 스타가 동시대에 함께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는 희열로 다가왔습니다. '탑건'의 세계가 처음 태어난 과거의 오리지널리티, 그로부터 현재까지 달려온 배우의 관록과 저력, 그렇게 도착한 현재의 기술적 성취가 모두 담긴 역작입니다.




1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출연 :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 커티스, 제임스 홍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마블이 멀티버스(다중우주)를 본격적으로 꺼내들며 대중의 눈에 익혔지만, 정작 멀티버스의 크기와 위력을 가장 와닿게 구현한 건 이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준 멀티버스의 임팩트가 그토록 컸던 것은 그 모든 우주가 다름 아닌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시에 여러 우주와 연결되는 어느 평범한 여성의 모험은 그간의 여정을 총망라한 듯한 양자경의 열연과 함께 대환장스러우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그러면서도 이 혼란스런 모험이 끝내 보는 이의 마음에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은 '우리가 이루지 못한 모든 가능성들'이라는 멀티버스의 흥미로우면서도 일면 가슴 저린 정체성 때문입니다. 가능성을 상상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지극히 짓궂은 설정과 세계에 때로 가닿는 와중에도 영화가 놓치지 않는 것은 이 가능성의 숲 속에서 지금 내 삶의 가치,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의 의미입니다. 가장 그럴싸한 세계와 가장 말도 안되는 세계가 한 사람의 삶으로부터 출발하듯, 가장 장난스러운 상상과 가장 따뜻한 마음이 놀랍게도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난장판인 줄 알고 휘젓고 다니다가 결국 하나의 절경임을 깨닫고 그 절경이 바로 우리의 삶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영화입니다.


이상 외국영화 부문까지 2022년 개인적인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다양한 플랫폼과 관람 환경 속에서 2023년에도 다채로운 수작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