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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Dec 18. 2022

보고 왔습니다, 아니 다녀왔습니다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아바타: 물의 길>

<아바타: 물의 길>(Avatar: The Way of Water, 2022)


<타이타닉> 이후 <아바타>가 나오기까지도 12년이 걸렸던 전적이 있어서인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3년 만에 내놓은 이번 <아바타: 물의 길>도 '과연 나오기는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피어오르게 할 만큼 긴 시간을 두고 작업하여 내놓았는데, 결과물은 그럼에도 놀랍습니다. 감독이 전편에서부터 보여 온, 이야기를 전하는 걸 넘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하려는 영화적 야심은 빈틈을 찾을 수 없는 기술적 진보 위에서 이번에도 대단히 성공적으로 구현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만큼 해낼 줄 아는, 해내고야 마는 마스터의 손길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격하게 되는 시네마의 또 다른 정의를 증명합니다.


전편에서 비로소 나비족이 된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네이티리(조 샐다나)와 아이 넷을 둔 가족의 일원으로서, 혼돈에 휩싸이려던 나비족에 안정을 가져 온 지도자 '토루크 막토'로서 단란하고도 평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파괴의 손길을 뻗치던 인간들을 판도라 밖으로 몰아내고, 자연의 섭리와 함께 하는 이 평화롭고도 경이로운 행복은 그러나 끝난 줄 알았던 위협이 다시 시작되며 유한한 것이 됩니다. 인간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편에서 판도라의 자원을 개발하려던 인간들은 탐욕을 키워 판도라를 아예 인간의 새로운 터전으로 삼으려 하고, 그 선두에는 전편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나 기억과 기술을 이식하여 나비족 아바타로 거듭난 쿼리치(스티븐 랭)가 있습니다. 사명감보다 더 큰 복수심으로 제이크를 악착같이 쫓는 쿼리치의 추적에 설리 가족은 위기에 봉착하고, 결국 그들을 품어주었던 숲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멧케이나 족이 살고 있는 판도라의 바다에 당도하고, 그곳에서 다시 이방인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아바타: 물의 길>(Avatar: The Way of Water, 2022)


전편이 충격적인 3D 효과를 선보이며 영화 산업을 놀라게 했지만 이후 3D 기술은 영화 산업에서 점점 매력을 잃어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아바타: 물의 길>은 그것이 그저 1편이 보여준 3D CG 기술력의 최대치가 여지껏 갱신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그 자신이 비로소 3D CG 기술력의 최대치를 경신했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부응하는 3D CG의 놀라운 가치를 입증하면서요. <아바타: 물의 길>에서도 3D 효과는 그저 일시적으로 입체감을 돋보이게 하려 구현되는 기술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3D 프린터가 사용되는 이유가 그러하듯, 입체감을 넘어 실존한다는 느낌을 부여하고자 구현되는 것이죠. 기존 영화의 2배 수준인 초당 48 프레임으로 구현되는 3D 화면 안 판도라는 만들어졌다기보다 차라리 어딘가에 원래 존재하던 곳입니다. 이번 편은 주요 배경이 바다인 만큼, CG로 가장 구현이 어렵다고 소문난 물 CG가 가장 발전된 형태로 원없이 구현되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바다는 이질감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이 그저 세상에서 가장 생생하게 보존된 듯한 맑고 푸른 바다를 보는 듯 합니다. 어둡고 두려운 곳이 아니라 신비롭고 따사로운 곳, 그 어떤 생명이든 포근히 안아주고 품어줄 어머니 같은 바다와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진 정밀한 3D 효과는 공간감과 질감을 촘촘히 구현하며 스크린 너머 바다의 규모감과 깊이감, 생동감을 관객이 체감하게 하고, 관객은 가만 앉아서 영화를 보고만 있어도 일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기며 바다를 누비는 체험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한번 뛰어들면 나오기 싫을 만큼 황홀한 판도라의 바다에서, 비로소 판도라 속 생명들의 삶과 그 삶이 영위되는 하나의 세계와 만납니다.


이처럼 시각적 진보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기술적 성취와 비교한다면, 그 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너무나 낯익고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족이 우리의 요새'라는 영화 속 제이크의 말로 대표되는 가족으로서의 연대에 관한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성장중인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고단함과 새로운 부족과 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이해, 다시 찾아온 적과의 대결 등 가족애와 대의가 얽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일반적 서사를 그리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가 그것도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판도라의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하고 있으면 이 정도 이야기가 적절하고 또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사건보다는 삶에 관한 것이고, 삶이 전개되는 곳으로서 비로소 판도라를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누군가의 상상력에서 탄생한 생소한 세계, 생소한 종족의 이야기를 몰입하려면 수많은 장벽들을 거쳐야 하는데, <아바타: 물의 길>은 사람의 피부만큼 캐릭터를 생생히 움직이게 하는 퍼포먼스 캡처 기술로 시각적 노력을 다함은 물론 별다를 것 없지만 실은 누구나 저항 없이 받아들일 보편적인 이야기를 그 캐릭터들에게 입힘으로써 관객이 판도라라는 세계로 진입하게끔 합니다. 덕분에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판도라를 보는 행위는 신기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구경', '관람'을 넘어 이해할 수 있는 존재와 함께 하는 '체험'의 경지에 이르고, 목격하는 광경 자체가 드라마가 되며 한 편의 영화로서 성립하게 됩니다. 


<아바타: 물의 길>(Avatar: The Way of Water, 2022)


그러나 <아바타: 물의 길>은 이처럼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시대에 걸맞은 진취적이고도 근원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탐험하는 이의 숙명적인 환희와 공포, 좌절과 깨달음, 그리고 그 모든것이 가져다 주는 거스를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향후에 나올 속편들을 통해 판도라의 다채로운 세계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그렇다면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를 필두로 한 설리 가족은 그 다양한 세계를 차례차례 누비는 탐험가 역할을 할 것입니다. 탐험가라면 필연적으로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게 될 것이고, 이번 편 또한 새로운 세계에 다다르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렇듯 영화는 다시 새로운 세계에서 적응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함께 해왔고 함께 해나갈 가족들을 지켜야 하는 설리 가족의 분투기를 통해 유한한 머무름을 사이사이에 두고서 무한한 탐험을 반복해야 하는 존재의 숙명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만물을 품고 나아가는 바다에게 이러한 존재의 삶은 잠시라는 표현도 길게 느껴질 '찰나'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찰나가 의미없이 흩어지지 않고 세상에 족적을 남길 수 있는 건 가족으로 인하여 얻은 무게추로 비로소 '삶'으로 승화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자연 앞의 인간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이를 일차원적인 구호로 외치기보다, 설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비로소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해답으로 승화시킵니다.


<아바타: 물의 길>의 3시간 1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은 어쩌면 판도라를 탐험하기에 괘념치 않게 되는, 아니 오히려 빠듯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 안에서 판도라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를, 긴 시간동안 구축되어 온 설리 가족의 역사와 유대를, 그리하여 그들이 판도라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사랑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품은 하나의 온전한 세상과 만나는 것이 시네마의 또 다른 정의일 수 있다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말하는 듯 합니다. 당장 이 영화가 보고 난 후 또 생각나는 게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 '판도라에 또 가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운 느낌이라 무섭습니다. 영화가 3시간이 넘는다면 무척 길겠지만, 여행이 3시간이라면 언제든지 또 선뜻 갈 수 있는 무척 짧은 시간일테니까요. 최근 몇 년동안 많은 이들이 의심했을 영화관의 미래는 이 영화로 확실해진 듯 합니다. 영화관이 사라질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아바타: 물의 길>(Avatar: The Way of Wate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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