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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

[나의 이야기]

by Changers

지난 5월 27일 밤, 전화기가 울렸다.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다.

지난 1년동안 밤에 어머니께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했다.

아흔이 넘으신 외할머니와의 헤어짐을 어머니께서 말하실까봐 말이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바로 받지 못했다.

정말로 헤어짐이면 어쩌나 싶어서다.

2년이 넘은 시간동안 병원에 계셨고 연세가 많으시지만, 아직 내겐 받아드릴 용기가 없었다.

아니면 나보다 더 슬퍼하실 어머니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할지 몰라서일지도…


흐느끼는 목소리의 어머니는 숨을 가다듬고 말씀하신다.

조금전에 할머니 돌아가셨거든. 내려올래?

네, 내일 오전에 내려갈께요.

옆에 있던 짝꿍에게는 덤덤한 척했지만, 마음으로 울었다.

할머니 가시는 길에 외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존중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3일장동안 곁을 지켜드리고 다시 한줌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지켜보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짝꿍이 동행해주었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그것도 당일치기로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뜻에 따라준 짝꿍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녀 덕분에 올 2월의 할머니를 뵙고, 할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뚝뚝한 아들 둘만 있는 어머니께 말동무와 위로를 해주는 딸 역할을 해줬다.


입관하시기 전 마지막 할머니를 뵈었다.

예전에 비해 너무 수척해지신 모습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이마를 쓰다듬고, 관에 들어가시는 마지막 모습을 보며 묵념을 했다.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했고,

암으로 먼저가 할머니의 친손자, 내 사촌동생과 함께 좋은 날들을 보내시길 바랐다.


오늘 아침 할머니는 우리와의 영원한 작별을 하시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셨다.

사촌동생과 같은 곳으로.


할머니께서는 내가 서울에 올라온 다음부터 1년에 2~3번 전화하셨다.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내가 건강한지가 제일 중요하셨다.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부디 평안하시길 바란다.


할머니를 찍었던 사진과 영상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때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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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결론


내가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후회가 남지 않도록.


Who can do it?

It’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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