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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ers May 10. 2024

내 동생

[나의 이야기]

제게는 4살 터울에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족보를 꼬이게 만든다는 빠른 생이라 학년은 3학년 차이가 나고요.


어렴풋이 이제 갓 태어난 동생을 보러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제 눈에 동생이 너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항상 안아주고 챙겨주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제가 뭐에 홀렸는지 질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싫었나 봅니다.


자고 있는 동생을 깨우기도 하고,


어머니 몰래 남동생을 꼬집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형이 처음이라 어떻게 형을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덩치가 더 크다고 힘이 더 세다고 동생을 부려 먹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못된 것인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1.


우리 둘 모두 경상도 남자라 그런지 서로에게 별다른 연락을 잘 안 합니다.


1년에 5번 정도 연락하는데요.


‘어머니 생신 좀 잘 챙겨드려라.’


‘형 생일 축하한다.’


‘동생 생일 축하한다.’


‘설과 추석에 집에 내려가서 집 현관 비밀번호 뭐고?’


적고 보니 우리 형제는 참 무뚝뚝하네요.



그런 동생이 12년 전쯤 어느 날 밤에 전화를 했습니다.


술이 많이 취한 목소리로 울면서 얘기했습니다.


“햄아, 어릴 때 내를 왜 그렇게 괴롭혔는데? 그때 진짜 햄이 진짜 미웠다.”


머리를 크게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어릴 때 제게 당했던 것이 얼마나 가슴에 한으로 맺혔을까 싶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도 엉엉 울면서 동생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물론 그 한 번의 사과로 동생의 마음이 달래졌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동생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2.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기침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결석, 조퇴는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인식했기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았습니다.


집에 가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평소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그날은 1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100미터만 걸어도 힘이 없어서 10분가량 앉아서 쉬었습니다.


그렇게 걷고 쉬고를 반복하다 보니 한참 걸렸습니다.



집에 도착했는데 어머니가 외출하셔서 안 계셨습니다.


1학년이라서 일찍 집에 온 동생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어머니께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저는 그냥 방에 힘없이 누워있었습니다.


동생이 저를 보고는 왜 그러냐며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습니다.


그리고는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와서는 수건을 거기에 넣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그걸 짜서 제 머리에 얹어줬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사경을 헤매었습니다.


병원에 가니 숨실 수 있는 폐의 공간이 10%도 채 남지 않았다며,


오늘 밤이 고비일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고 하니까요.



천만다행으로 그 고비를 넘고 살아났습니다.


그 뒤로 30년 넘게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그때 제 동생의 초동 대처 덕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데 그걸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네요.




3.


2년 전 어느 날 밤늦게 동생이 전화가 왔습니다.


술이 많이 취한 동생이 울면서 말합니다.


“햄아,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 가?”


“그게 무슨 말이고?”


“아니, 우리 현장 소장이 내를 너무 갈군다.


너무 모욕적으로 말하고 인격적으로 너무 힘들게 한다.”


“아니, 네가 잘못한 거 없다.”


“일은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상급자가 보기에 하급자가 일을 잘 못하면 조언해줘야 하는데,


조언을 핑계로 모욕적으로 말하거나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다.”



동생이 일을 잘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힘든 내색을 잘 안 하고 무뚝뚝한 동생이 힘들다고 전화가 온 것은


정말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냥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시간가량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니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살갑게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동생이 힘든 순간에 연락이 오면 항상 들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조금이나마 제 마음이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며칠 전에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출근은 27일이고, 처우까지 최종 협상을 마무리했습니다.



올해 여러 가지 일들이 꼬여서 고향을 한 번도 못 갔는데요.


이번에 일이 좀 풀렸기에 내려가려고 합니다.



오늘 동생과 둘이서 야구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둘이서 뭔가를 하는 게 다소 어색하지만

앞으로 종종 그런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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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

당신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사세요.


유캔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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