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들의 주선으로 한 남자를 만났다.
선하게 생긴 남자였다.
아주 성실하고 집안도 좋다고 했다.
나는 아직 혼인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싶다며 혼인을 말씀하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와 혼인을 했다.
하루종일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을 돌 본 나는 밤마다 온 몸과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 일 끝나고 오기를 기다렸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으니까.
경상도 남자라서 그런지 말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주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뱉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났다.
나를 닮은 아들을 안는데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끝내 첫 손주를 보지 못하셨다.
시부모님은 집안에 장손이 태어났다고 좋아하신다.
내게 고생했다고 하신다.
결혼하고 처음 듣는 말이다.
조금은 야속하지만 그래도 이 말이라도 들은게 어딘가 싶다.
그렇게 그와 나 사이에 6남매가 태어났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쳤던 남편은 큰 돈을 벌겠다며 중동으로 갔다.
몇년은 있어야 한단다.
나 혼자 어떻게 시부모님을 모시고 6남매를 키우라는 말인가.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가족이 조금 더 잘 살려면 필요한 일이니까.
편지 자주 하시라고, 몸 건강 잘 챙기라고 말하며 남편을 보냈다.
정말 악착같이 살았다.
남편이 매달 보내주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말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바르고 성실하게 잘 커줬다.
남편이 돌아왔다.
얼굴이 새까맣게 탄 남편이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너무 고생 많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표현이 서툰 그가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과 내 희생을 알아준다는 것 때문이다.
남편이 열심히 일하고,
나는 악착같이 모은 덕분에 제법 여유가 생겼다.
자식들을 하나 둘씩 출가시키다보니 어느새 우리 둘만 남았다.
이제는 우리도 남들처럼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다.
뇌출혈이란다.
오른쪽을 쓸 수 없다고 한다.
눈물이 계속 흐른다. 스
무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악착같이 열심히 살았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염없이 우는 내 손을 남편이 잡았다.
“걱정마라. 내가 니 어떻게든 걷게 만들거다.
내가 니 옆에서 꼭 붙어 있을테니까.
알았제?”
남편과 나는 그날부터 항상 붙어다녔다.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약과 치료법을 알려고 했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어느날 공원 주변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매일 걷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 나아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내랑 매일 아침마다 공원가서 걷고 쉬다가 오자.”
그렇게 나는 매일 그와 아침마다 공원에서 걷는다.
더운 여름에 내 휠체어를 끌며 내게 손 선풍기를 해주는 우리 남편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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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하루, 의-하!!
Who can do it?
It’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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