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특별히 하는 일 없어도 그냥 친구를 만납니다.
혼자 노는 것도 재밌지만, 함께 놀면 더 재밌으니까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친구 전화가 왔습니다.
“뭐 하니?”
“그냥 집에 있는데.”
“나오너라.”
“알겠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샤워하고 머리 툭툭 말리고,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나갑니다.
군대 간다고 주고 간 친구의 중고 CD 플레이어를 꺼내서
음악을 듣습니다.
CD 플레이어라고 하니,
완전 고조선 유물을 말하는 것 같긴 하네요…
지누션의 A YO! 였던 것 같은데,
혼자 흥얼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갑니다.
요즘엔 기부 러닝으로 유명한 션님이
그때는 힙합 가수로 열심히 활동할 때였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 갈 수 있습니다.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딘데?”
“버스 타러 간다.”
“얼마나 걸리니?”
“한 30분쯤 걸리겠지? 근데 니 어딘데?”
“아까 거기.”
“아까 거기? 거기가 어딘데.”
“아까 거기라고.”
“그래 아까 거기가 어디냐고.”
“부대 1번 출구 근처에 만화방 있다. 거기 이름이 아까 거기다.”
“그래 말해줘야지. 아까 거기라면 내가 아나.”
“빨리 오너라.”
버스는 내가 맘대로 속도를 조절할 수 없으나,
우리는 항상 빨리 오라며 재촉하며 통화를 마칩니다.
통화를 끝내며 정면을 본 저는 뛰기 시작합니다.
제가 타야 하는 버스가 버스정류장에 서있고,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가 깜빡거렸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를 탔습니다.
교통카드를 집에 두고 온 저는 뒷 주머니에서 지폐 하나를 꺼내서 요금통에 넣었습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살짝 소름이 끼치는 게 요금통을 봐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본 요금통을 보고 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요금통에 실수로 만 원짜리를 넣은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만 원짜리가 완전히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손을 넣어서 꺼내려고 하는데,
둔탁한 나의 손가락이 만 원짜리를 친절하게 더 밀어 넣어줬습니다.
그렇게 요금통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만원 지폐를
반갑게 맞이한 요금통은 덜컹하며 입을 벌리더니,
한입에 집어삼켰습니다.
제 당황한 얼굴을 본 버스 기사 아저씨가 친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 요기 앞에 앉아보소. 내가 가다가 지폐 받으면 주는구먼.”
“네, 감사합니다.”
거스름돈을 지폐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제 바보 같은 실수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니, 위로가 될 줄 알았습니다.
제가 탄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부대 앞까지는 21개 정도의 정거장이 있었습니다.
그중 9개 정거장에서 1 명씩만 천 원 지폐를 내면
저는 기분 좋게 거스름돈을 받고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1개 정거장을 지나가는 동안,
단 1 명도 지폐를 내지 않고 교통카드로 버스를 탑승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기사님, 저 다음에 내려요.”
“에헤이, 어쩌지. 그럼 동전으로라도 받아가소.”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딸칵…
계속해서 쏟아지는 동전을 흘리지 않게
손에 잘 쥐고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 당시 버스요금이 성인 기준 700원이었습니다.
저는 93개의 100원짜리 동전을 호주머니 양쪽에 불룩하게 넣고 내렸습니다.
아까 거기에서 만난 제 친구들은
저를 보며 미친 듯이 웃었습니다.
“이 xx, 또 레전드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고,
뭐든지 행동할 때 한번 더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