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손끝의 온도

손끝에서 마음까지 데워지는 시간

by 밍뚜



아침과 저녁이 되면
냉장고 속 깊이 묻혀 있던 반찬들을 꺼내어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반찬은 늘 비슷한데도

“오늘은 뭘 먹어야 하지?”

그 고민을 전날 밤부터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희한하게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대부분 마트에서 세일하던 재료들로 냉장고를 채워두고,
그 안에서 무난한 것들만 골라 먹는 편이다.
그러다 2주에 한 번,
집에 짝꿍이 오는 날이 되면
식탁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묻고,
그걸 만들어주는 시간이
나에게는 작은 축제처럼 느껴진다.

요리는 좋아하지만
뒷정리는 조금 미루는 타입이라
혼자 있을 때는 늘 귀찮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이 함께 치우는 시간은
그 어떤 순간보다 가볍고 편안하다.


우리가 함께 먹는 요리는
대부분 고기류다.
찜갈비, 수육, 찜닭, 닭볶음탕…
웬만한 메인 요리는 한 번씩 만들어봤다.
그 옆에는 꼭 세 가지쯤의 반찬이 놓인다.
애호박볶음, 콩나물무침, 계란말이.
세 칸짜리 반찬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 있을 때
그 정돈된 모양새가 참 예뻐 보인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국을 거의 끓이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혼자 먹기엔 조금 과한 느낌도 있어서.
하지만 짝꿍은 국물요리를 좋아해서
소고기 뭇국이나 배추된장국을 자주 끓이게 된다.
겨울이 되면 더 맛있어지는 배추와 무를 자르는 동안
칼끝이 들어가는 감촉과
서늘한 채소의 냄새가
이상하게 마음을 차분히 만든다.


함께 먹는 식탁에서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후다닥 먹고 금세 치워버렸던 내가
이 시간 앞에서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오래 머무른다.

돌아보면 이건 단순히 요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한동안 우울이 깊게 내려앉았던 시절엔
밥을 챙겨 먹는 일조차 힘들었다.
어떤 날은 배가 고픈지도 몰랐고,
어떤 날은 끼니를 그냥 건너뛰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끝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면서
내 몸을 챙겨주는 사람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요리는 나에게 아주 작은 구조대였다.
불안을 잠시 식혀주고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를 남겨주는 일.


오늘도 식탁에 올라온 따뜻한 한 접시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아주 조용히,
그리고 아주 느리게 실감하고 있다.

이전 03화마음의 구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