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연기가 하고 싶어서 극단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다. 합숙을 하며 같이 밥을 해먹고 살았는데, 한 단원이 찌개에 들어갈 호박을 어떻게 써는지 모른다고 했다. 당시 연륜있던 선생님이 얘기하기를 ‘살면서 찌개를 얼마나 많이 먹어 봤는데 호박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냐고, 그럼 네가 지금껏 먹어온 것은 무엇이었으며, 먹을 줄만 알고 만들 줄은 모르냐고’. 호된 농담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된장찌개 맛을 낼 줄은 몰라도 충분한 관찰만 있었다면 호박을 썰 줄은 아는게 맞다.
그 이후로 뭔가 하고 싶을 때에는 늘 관찰을 먼저 시작했다. 글이 쓰고 싶어 졌을 때, 무조건 많이 읽었다. 글이 쓰고 싶을 때 마다 책을 읽었다. 서점에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글을 잘 쓰고 싶지만, 내가 쓰는 글은 쓸모없는 글이면 좋겠다고.
서점에 가면, 이 책을 읽으면 영어를 엄청 잘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 마케팅 천재가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인간 관계가 놀랍도록 쉬워집니다. 책만 읽으면 세상 만사가 다 해결될 것만 같다. 오죽하면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 '댄스를 책으로 배웠어요' 라는 말이 유행이 되었을까.
쓸모없는 글을 쓰고 싶다. 이 책을 읽어도 당신의 삶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아요. 내 글은 당신을 천재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삶은 언제나 힘들고 이 글을 읽는다고 해서 결코 쉬워지지 않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글.
덧붙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은 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가 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