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버킷리스트 달성기
이 글은 작년 6월에 작성했던 <남편의 버킷리스트 응원해줘야 할까요?>에 대한 후기이다. 그는 당시에 1억이 넘는 차를 내 허락하에 계약했다. 6개월이 지난 작년 11월 그 차를 샀고, 지금도 애지중지 아끼며 잘 타고 다닌다.
당시에 저 글을 올렸을 때 폭발적인 조회수와 반응에 적잖이 놀랐다. 남편이 고가의 차량을 구매하는 것을 응원한다는 내용 때문인지 자동차 커뮤니티 혹은 남편들의 커뮤니티에 내 글이 소개된 듯했다. 상당수의 남편분들이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오거나, 인생 선배의 관점에서 나이가 많아지면 점점 더 책임져야 할 것들도 많아지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 거금을 투자할 수 없으니 젊을 때 버킷리스트 달성을 추천한다는 분도 있었다.
축하와 응원의 댓글만큼이나 비난과 조롱도 많았다. 브런치를 단순히 나와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공간으로 여겼는데 많은 악플이 달려서 놀란 마음에 댓글들을 삭제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이런 내용이었다. "전형적인 카푸어 아니냐" 혹은 '보여주기 식', '허세' 등등의 내용들. 나는 단지 내 남편의 행복을 응원할 뿐 우리 부부는 카푸어가 될 정도로 가난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큰 결정을 할 만큼 자존감이 낮지도 않아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의 드림카가 출고되던 날 새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오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해 대리점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도 도착해서도 연신 싱글벙글했다. 간단한 서류 몇 가지를 더 작성하고 출고식이 시작됐다. 그는 아이처럼 "우와~ 우와~"를 연발하더니 사진 찍자는 내 제안에 싫은척하며 슬쩍 차 옆에 가서 섰다. 이날 남편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는 승용차뿐만 아니라, 덤프트럭, 포클레인 같은 모든 종류의 차를 흥미롭게 관찰한다. 어떤 날에는 문득 '덤프트럭 옆 자리에 꼭 타보고 싶다'며 주변에 덤프트럭 운전하는 분 계시면 소개 좀 시켜 달라고 하는 자동차 덕후이다. 나는 살짝 어이가 없다가도 그가 '자신이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알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고가의 차를 사는 게 철없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차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살면서 타인의 남편과 아내로 아이의 엄마와 아빠로의 역할에 개인의 행복이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이 매번 희생해야 하는 구조는 가능하다면 우리 세대에서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물론 두 가지가 늘 양립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충분히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고 싶고 그 역시 나를 대할 때 같은 마음인 것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고민 끝에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남편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우리는 개인과 가족 사이 행복의 밸런스를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기로 했다. 그의 드림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남편은 다 내덕이라고 하고, 나는 다 당신이 열심히 일한 덕이라고 하고 훈훈한 귀갓길이었다.
그 후로 4개월이 지났다. 이 차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맹렬했던 고민이 무색하게 우리 부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종종 나를 회사까지 태워다 주며 '턱 넘는 게 이렇게 부드럽다'거나 '커브 도는 게 하나도 안 느껴진다'는 식의 귀여운 자랑을 한다. 나는 턱 넘는 것도 느껴지고 커브길인 것도 느껴지지만 "응, 진짜 좋네"라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