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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Mar 06. 2022

남편이 밥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밥 세끼를 챙겨주는 존재에 대하여

 제목 그대로다. 그가 밥을 하기 시작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이전에도 종종 서로 밥을 해주었지만, 이제는 드디어 그가 먼저 밥시간을 챙기게 된 것이다. 이유는 우리 부부에게도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누워있는 나를 대신해, 그리고 길고 긴 입덧이 끝날 때까지 그는 성실히 밥시간을 챙겼다.

 

  연애 때는 그가 밥시간 관념이 없는 사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밖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거나,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해보니 그는 아무 때나 배가 고플 , 하루에 먹는 끼니 수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먹는 사람이었다. 어떤 주말에는 오후 2-3시까지 늦잠을 자고 저녁 5시가 되어서야 그날의  끼니이자 마지막 끼니를 먹기도 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불규칙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는데,  사람이 바로  남편이 되었다.


  그랬던 그가 아내의 임신을 이유로 밥을 챙겨야  사람이 본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자 실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대략의 스케줄은 이렇다. 그가 해준 저녁밥을 먹고 TV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내일  먹고 싶어?"라고 묻는 그의 질문에 답을 하면,   있는 메뉴는 직접 장을 봐서 해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  메뉴의 맛집을 물색해 포장해온다. 그렇게 다음날 점심까지 해결한 , " 점심은 됐고, 저녁은?"하고  다음 식사 플랜을 짠다.


외출할 때에도 김치찌개를 끓이고 후식 키위까지 깎아두고 나갔다.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하자 금방 만들어줬다.



 이렇게 빡빡한 식사 플랜을 소화해낸 남편은 입덧이 끝나가던 임신 16 무렵 나에게 고백을 해왔다. 그동안 밥을 챙기는  너무 힘들었다는 거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루  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존재가 되다니, 너무 힘들어서 어른이 되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느꼈을 무게감이 말뿐만 아니라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허물을 벗고  단계  성장한다. 그렇게 보면 아내와 아기에게 밥을 챙겨주며 예기치 못하게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그가  귀여웠다. “여보, 이제 아기 태어나면 하루 3번보다 훨씬  많이 챙겨야  텐데 미리 연습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자, 동의하면서도 낯빛이 어두워지는 그였다.


 입덧이 끝나고 이제는 더 다양한 메뉴를 먹을 수 있고, 음식 냄새도 역하지 않아서 내가 하는 요리가 더 많아졌다. 하지만, 지난 16주의 경험을 통해 그에게 아빠 자격을 주기로 했다. 물론 생물학적 아빠인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토리는 엄마가 해주는 이유식을 엄청 좋아할 것 같아

-아닌데, 아빠가 해준걸 더 좋아할걸?


오늘도 칭찬인지 강요인지 알 수 없는 투닥거림을 계속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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