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수습노무사 수련기

1. 귀국, 두 달간의 구직

by 지무

1년 전 이맘때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 2년 살이를 마치고 8개의 이민 가방과 함께 귀국했다. '심심한 천국'과 이별하고 '재밌는 지옥'과 조우한 것이다.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던가. 이국만리 꿈속에서 그러던 전 직장 동료와 드디어 회식을 할 수 있게 됐다.


20년 넘게 동고동락한 전 직장 동료들이 귀국 환영 술자리를 마련해 줬다. 너무나 반가워 눈물이 핑 돌았다. 회식이 그리웠는지, 사람이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회사 이야기, 캐나다 이야기가 뒤섞이며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분위기에 취한 탓일까. 인생 2막을 노무사로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동지 같은 동료들의 노후에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잘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후 일상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애들도 어른도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시금 네모난 학교로 돌아가야 했고, 실업자인 어른에겐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했다. 뉴스에서는 IMF 때만큼 취업 시장이 어렵다고 했다.

공인노무사회 홈페이지 채용정보와 다음 카페 '노무사의 길을 걷는 사람들' 구인구직 코너를 매일 같이 방문했지만, 수습노무사를 구하는 곳은 없었다.


통상 공인노무사 2차 합격자 발표(11월) 이후 수습노무사를 모집한다. 7월에 수습노무사를 구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곧바로 경력 노무사를 구하는 노무법인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20통 넘게 보냈지만, 면접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노무사 자격증을 너무 믿었던 탓일까. 취업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이도 문제였을 것이다. 장유유서의 나라이지 않은가. 노무법인 대표보다 나이 많은 수습 노무사를 누가 반기겠는가.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연령에 따른 취업 장벽이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레스토랑 서버로 일할 땐 나이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채용 정보를 검색하고, 새롭게 올라오는 채용 공고마다 이력서를 넣고,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다. 이러다간 내년 초 노무사 집체 교육 이후 수습처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도 우려되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이전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몇몇 노무사에게 연락해 봤지만, 그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8월 무더위와 함께 불러만 주면 무조건 가겠다는 생각이 불타오를 무렵, 한 노무법인에서 연락이 왔다. 과거 정부지원금 관련 출판 경력이 눈길을 끈 모양이다. 면접 후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며칠 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드디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노무사로서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