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이방인

환상문학 단편선 『위험한 이방인』 수록작

by 김진

위험한 이방인



고향마을로 돌아오기는 근 7년 만이었다.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기억 속의 포근했던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적막감이 무겁게 감돌았다. 지난밤 내린 비로 축축해진 흙길이 발걸음을 무겁게 눌러왔다.

내 몸을 감은 무거운 쇠사슬, 바닥까지 늘어진 쇠사슬 자락은 땅을 그으며 치렁치렁 소리를 냈다.

7년간의 고행 끝에 한 달 전, 나는 마침내 내 과업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다섯 번의 사투 끝에 전목사를 쓰러뜨리고 마을로 돌아왔건만……

[탕!]

바람에 긴 머리칼이 휘날려 시야가 가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3시 27분 37.6초 방향으로 갑자기 날아오르는 까마귀를 향해 총을 쏘았다. 내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고, 총을 든 손만 까마귀를 향했을 뿐이었다.

-턱.

까마귀는 땅에서 떨어졌고, 울려진 총성은 마을에 내가 왔다는 신호탄이 되어주었다.

“살인 괴수 전목사를 쓰러뜨렸소, 여러분----”

기고만장한 나의 포효가 마을에 창창히 울려 퍼졌다.

그러나 현실은 내 기대와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은 마땅히 나를 환대하고 내 귀환을 축하해야 했지만, 마을의 기류는 심상치 않았다.

먼지 낀 창문들 뒤로 숨어있는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의 눈빛에서는 공포와 불신이 뚜렷했다. 이 시선은 7년 전 전목사를 바라보던 그 눈빛과 같았다.

나는 여전히 승리자임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사실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무언가 불안한 기분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탕!]

“너, 너! 어서 돌아가라!”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스티븐 윤이 나를 향해 총을 쏘았다! 나는 충격과 분노로 목소리가 갈라지면서 얼빠진 군중들에게 외쳤다.

“낯설고 위험한 이방인 스티븐 윤이 총을 쏘았단 말이다!”

“이방인은 바로 너야!”

그러나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몰아세운다. 그들은 모두 스티븐 윤의 제자 또는 추종자들인 듯했다. 나를 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전목사를 향했던 것과 같은 증오와 두려움이 보였다.

다시 스티븐 윤이 나섰다. 그가 마치 재판관처럼 준엄한 목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조나단 당신이…… 당신이 전목사를 죽이고 우리를 구했다고? 정신 나간 소리! 그는 우리의 성자였어!”

순간 멍해졌다. 성자라고? 전목사가? 그때 스티븐의 목에 걸린 전목사 특유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럴 수가……

[탕!]

이런 어이없이, 어이없이 스티븐 윤이 쏜 총알이 내 옆구리를 스쳤다. 그것도 하필 7년 전 내가 그에게 선물했던 총으로 나를 쏘다니…… 총신에 새겨진 내 이니셜 ‘J.C.’가 불빛에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대결과 전투를 겪으면서도 누군가의 총에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혈육처럼 여겼던 자에게 건넸던 선물이 이제는 내 목숨을 노리는 무기가 되었다.

“조나단, 당신이 내세우는 그 방식은 폭력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건 구원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악랄한 심판이지. 반면 전목사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셨다. 당신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오직 파괴와 혼란만을 초래했으며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렸을 뿐이다.”

나를 향하는 스티븐 윤의 적대적인 눈빛이 더 짙어갔다. 주변의 패거리도 그의 뒤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스티븐 윤이 비열한 웃음을 살짝 흘린 후 운을 뗐다.

“저 위험한 이방인을 지옥으로 보내자!”

그 말이 떨어진 직후 그의 제자 또는 추종자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들에게 꼼짝없이 붙들린 나는 거대한 쇠사슬을 몸에 그대로 건 채로 호수에 빠뜨려져 허우적댔다. 차가운 물 속에서 기억이 스쳐 갔다.

7년 전, 이 호숫가에서 제인과 나는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달빛이 호수를 은은하게 비추던 그날 밤, 마을의 마스코트이자 선망의 대상인 제인은 나에게도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의 순수함과 우리 사이의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그녀에게 내 몸에 묶인 쇠사슬을 풀 수 있을 열쇠를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제인, 이 열쇠는 내 몸의 쇠사슬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너만 믿을 수 있어서 맡기는 거야.”

“조나단 오빠, 걱정 마세요.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꼭 보관할게요. 열쇠가 필요하면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제인은 한동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달빛이 은은하게 빛났고,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결심한 듯 천천히 내 손을 살며시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길에는 떨림이 있었지만, 그 움직임은 의외로 확신에 차 있었다.

“여기, 제 심장 소리가 들리나요? 제 맥박을 느껴보세요.”

그녀의 심장은 마치 작은 새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렇게 뛰는 제 심장이,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이 열쇠를 지킬 거예요. 약속해요…… 꼭 돌아와요.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

달빛 아래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그녀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쇠사슬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온기가 아직도 생생했다.

호수에서 겨우 탈출한 나는 마을 외곽의 폐허로 몸을 이끌었다. 축축한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때, 어릴 적부터 알던 김 노인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낡은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시계의 유리면에는 가는 금이 그물처럼 새겨져 있었다. 시곗바늘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시곗줄에는 녹슨 청동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네 할배 물건여, 이거.”

김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을의 시간을 지키신 양반이시지, 허허.”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깊어졌다.

“세월이 참 덧없구먼, 허허……” 그는 목이 쉰 듯 말했다. “네 아버지가 평생 모은 것들이 빗물처럼 다 흘러가 버렸어.”

노인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전목사 힘을 빌려 갖고 법이라는 칼날을 휘두르는 통에…… 땅이고 소며 돼지며…… 종이 한 장에 훌러덩 갈취 당했제. 너희 집만 그런 게 아니여. 마을 십여 집이 다 그 꼴이 되고 말았으……”

그는 이를 악물며 덧붙였다.

“말이 되는가 말여. 조상 대대로 지켜온 땅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다니.”

노인의 말은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한밤중에 들리던 비명소리……” 노인의 목소리가 바람 새는 문틈처럼 가늘어졌다. “전목사 나쁜 짓 알고 입 열었던 사람들, 스티븐 놈 비리 캤던 사람들…… 하나둘 결국은 싸늘한 시체로 나타났지 뭐여.”

김 노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손이 마른 나뭇잎처럼 떨리며 시계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어딘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희미한 시계 소리가 들렸다.

틱, 톡.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심장 소리를 되찾은 듯 의미심장한 소리를 냈다.

“잃어버린 시간이…… 여기 담겨 있는 게야.”

노인은 시계와 함께 달린 청동 열쇠를 주름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이 시계가 미친 듯이 울어대는 때가 올 것이구먼. 그때가 바로 네한테 천금 같은 기회가 오는 때니, 잘 알아두더라고. 그런 기회는 천 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것이여……”

노인의 목소리가 낙엽처럼 바람에 흩어지듯 희미해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어……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여……”

노인은 한 번 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이 저녁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이 광기 어린 마을에 아직 제정신이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또 한 명 내가 기대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나는 저물녘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조심스레 걸어갔다. 창문마다 켜진 불빛들이 나를 감시하는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목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제인……”

바람결에 사그라드는 속삭임.

“제인 버킨!”

잠시 숨죽이는 시간, 드디어 마을의 마스코트인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 문을 열고 나오지 않고, 높다란 담벼락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느냐! 난, 너처럼 더러운 이방인은 알지 못해!”

제인만큼은 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와 적대적인 태도는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인, 왜 그래? 너는 나를 좋아했잖아?”

“좋아했다고? 웃기지 마! 과거 같은 건 없어. 이제 난 너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단다.”

제인의 말에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제인 버킨, 그녀가 나 말고 다른 사랑에 빠질 수는 있는 노릇이었지마는,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녀가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잘 알아두거라. 난…… 난 전목사님의 아이를 임신했어!”

제인의 충격적인 선언에 나의 이성이 무너졌다. 희미한 빛 속 그녀의 모습에서 낯선 변화를 발견했다. 불룩한 배. 저건 임신한 모습이 분명했다. 내 입에서 진노의 말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넌 강제로 임신을 당한 거야! 그 악마 같은 살인괴수가…… 내가 그를 처단하기 직전까지도 마을을 공포로 물들이던 그 괴물이……”

제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눈에서 차가운 증오가 번뜩였다.

“입 닥쳐, 더러운 자식! 감히 네 더러운 주둥이로 전목사님을 모욕해?” 그녀가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 “그분은 악마가 아니라 원래부터 구원자였어. 당신 같은 태생적 무뢰배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지. 이 아이는 그분의 거룩한 축복이야. 우리는 진작부터 성스러운 결혼식을 올렸다구!”

제인이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가리켰다.

“이거 보이냐? 전목사님이 나에게 주신 거란다.”

그녀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받던 날, 그분이 내게 말했어. ' 너는 이제 영원히 나의 것이다.' 히히.”

나만은 알고 있었다. 저 반지의 진정한 의미를. 전목사가 자신의 소유물로 삼은 이들에게 주는 표식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굴복시킨 이들에게 주는 특별한 상징이었다. 그들의 육체와 영혼을 속박하는 사슬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그런데 결국 제인마저……

“거짓말이야…… 이건 분명 거짓말이야! 제인, 제발…… 그때 네 심장 소리를 기억해! 내 손끝으로 느꼈던 그 떨림을……”

“그래, 그때 난 떨렸어. 하지만 이젠 달라. 전목사님은 나를 온전히 감싸 안아주셨고, 나는 그분의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됐어. 당신은 떠났지만, 그분은 항상 내 곁에 계셨으니까……”

그 차가운 목소리 속에서 예전의 제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나의 간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인…… 제발 그때 그 열쇠만이라도……”

나는 쇠사슬에 묶인 채로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가 보관하기로 한 열쇠…… 아직 가지고 있잖아? 그때 네 심장 소리와 함께 약속했잖아……”

제인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비굴한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구원자님께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제발…… 제발 제인…… 네 심장 소리가 아직도 내 손끝에 생생해. 그때 그 떨림이……”

나는 간절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 열쇠만 있으면…… 이 쇠사슬만 풀 수 있으면……”

“열쇠? 하!”

제인이 차갑게 웃었다.

“그런 쓸모없는 것, 버린 지 오래지. 당신이 떠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전목사님이 펼쳐주신 진정한 자유 앞에서, 그런 열쇠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어?”

“제인…… 제발……”

제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그녀는 낑낑대면서 무언가 시커먼 물체를 담벼락 위로 끌어 올렸다.

“자…… 이게 비굴한 구원자에 대한 내 대답이란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며 내게 무자비하게 총탄을 쏟아부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이 어둠을 가르며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 순간적인 빛 속에서 나는 그녀의 눈빛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거기엔 광기가 아닌, 전목사에 대한 강렬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제인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 전목사의 ‘평화’를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마을은 내가 없는 동안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전목사는 평화와 구원이라는 달콤한 약속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나는 이 영향력을 간과했고, 단순한 공포가 아닌 사람들의 충성심을 얻는 그의 전략을 파악하지 못했다. 더구나 애착의 대상이던 제인마저 돌아선 마당에, 이 마을에서 내게 남은 희망은 없었다.

-------------------도망쳐, 어서 도망쳐!

공포와 생존본능이 뒤섞인 외침이 내 머릿속을 울렸다. 마치 내면의 또 다른 자아가 위험을 감지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이성은 이미 마비되고, 오직 생존만이 남아있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빗발처럼 난사되는 총알 세례를 피해 나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발바닥을 땅에 붙일 때마다 전해지는 충격이 옆구리 상처를 자극해 피가 흘러내렸다. 스티븐 윤이 쏜 총알이 스친 자리였다. 쇠사슬이 땅을 긁으며 내는 소리가 이제는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도망가자 그녀는 자기보다 크고 무거운 총을 끌지 못해 나를 잡기를 포기했다.

그때였다.

“하! 하하하! 저 도망가는 꼴을 보시오! 조나단, 위대한 구원자님께서 도망가시나?”

스티븐 윤의 웃음소리가 가을 저녁의 썩은 낙엽처럼 귓가에 쌓여갔다.

“뭐가 어째? 가당치 않은 도전으로 그분을 이겼다고? 천진하기도 하지! 그분은 당신이 상상도 못 할 힘을 가지고 계셨소! 그분은 영원 불사란 말이오. 하하하!”

스티븐 윤의 비웃음을 신호로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들었다. 이제는 마을의 모든 사람이 각기 무기를 챙겨 들고 나타나 나를 뒤쫓기 시작했다.

[더러운 이방인을 지옥으로-----------]

그들의 얼굴에는 확신에 찬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여기서 저들에게 잡히면 끝장이다! 마을에 와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이제 마지막 도주가 필요하다.

나는 계속 도망치고 있었지만, 호흡은 거칠어지고 발걸음은 점점 더뎌졌다. 등 뒤로 무수히 울리는 광기 어린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땅을 밟는 발걸음마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도망치던 중, 길가에 쓰러진 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김 노인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총알 자국, 피가 낭자했다. 그의 눈은 아직도 나를 향해 열려 있었다.

스티븐 윤이 내가 김 노인과 대화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미리 제거했음이 분명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하나뿐인 조력자마저 없애버린 것이다. 분노와 슬픔이 치밀었지만, 생존이 먼저였다. 나는 그를 애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내 달렸다. 얼마나 도망쳤을까. 입안에서 쓴 단내가 올라왔다. 폐 속으로 들이마시는 공기가 마치 녹슨 못처럼 날카로웠다. 곧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스티븐 윤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의 웃음소리만은 마치 독이 든 꿀처럼 달콤하고 끈적하게 내 귓가에 매달려 있었다. 쇠사슬 소리에 섞여 들리는 그 비웃음, 멀어진 것 같다가도 다시 선명해지는 그 조롱……

“하하하! 되지도 않는 무력으로 우리를 구원하려 했던 위대한 영도자님! 하하하!”

귀를 틀어막아도 소용없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이제 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괴이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조금씩 변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한 떨림이었다. 스티븐 윤의 경멸 섞인 비웃음이 점점 깊어지더니, 어느새 나지막하고 기름진, 내 뼛속까지 스며들었던 그 목소리로 천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 하하하……”

전목사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소리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우며 울려 퍼졌다. 태산보다 거대한 종소리처럼 온 천지를 울리는 그 소리는 대기를 진동시키며 모든 존재의 근원을 흔들어놓았다.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웃음소리가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전목사 특유의 무겁고 기괴한 목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지며 나를 짓눌렀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에 꽉 잡힌 것처럼.

전목사의 힘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그는 교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그의 영향력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의 눈빛은 돌이킬 수 없는 광기 그 자체였다.

제인의 배를 본 순간, 충격과 함께 깨달음이 밀려왔다. 내가 7년간 지키려 했던 것은 이미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날 밤 내 손끝으로 느꼈던 떨리는 심장은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있었다. 이제 전목사의 피는 마을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는 어느덧 환각의 세상에 접어들어 읊조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지옥의 폐부 속에 흩어진 나의 말들을 더듬어 주워 담았다. 한때는 의미 있게 존재했던 단어들, 폭풍에 흩날린 잎사귀처럼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파편들이 천천히 모여들어 소리가 되었다. 그 말들은 숨죽인 아우성처럼, 잊혀지기를 거부하는 기억처럼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난 고독했어, 지독히도 외로웠어.

올곧게 세우려 했던 세상은 외려 거꾸로 처박혀갔지.

손아귀에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진실.

나는 다만 쫓겨난 자,

뜨겁고 건조한 황야를 홀로 걷는 자,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삶의 비참한 환영이 그려지고

줄기차게 흘러내리는 땀줄기는 내 몸을 빠르게 증발시키고 있어.

천근 같은 쇠사슬을 벗어내고 싶지만,

그럴 기력이 없고 내 의지는 희미해져가고 있어.

잠시만…… 잠시만 앉아 쉬자.

잠시 쉴 뿐이야. 잠시……

들짐승들아, 하이에나들아, 대머리독수리들아,

나에게 다가오지 마라.

어서 도망가라, 어서……

‘나는 너희의 사냥꾼이란 말이야—————’

황야에 쓰러진 내게 몰려드는 온갖 짐승들의 위협은 섬뜩했다. 반면 그것은 내가 환각에서 빠져나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늘 기세등등했지만 실은 누군가를 사냥할 처지가 아니었다. 줄곧 나는 전목사가 놓은 덫에 걸린 사냥감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마치 늪의 수면을 흔드는 바람결처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그 웃음소리는 하늘과 땅, 심지어 내 몸속 깊은 곳까지 완전히 채워갔다.

“하하하하하!”

그때였다. 물 한 톨 없던 바싹 메마른 황야에 거대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와 함께 땅을 때리는 빗줄기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와 똑같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와 함께 갑자기 땅이 울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의 근원은 다름 아닌 내 주머니였다. 처음엔 잔잔하던 회중시계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온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냈다. 시곗줄에 매달린 청동 열쇠가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처음엔 희미한 붉은 기운이었지만,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대장간의 불꽃 속에서 달군 쇳덩이처럼 타오르는 열쇠를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이것이 바로 내 쇠사슬을 풀 수 있는 그 열쇠라는 것을 깨우쳤다!

깨진 유리면에 맺힌 빗방울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시곗바늘이 미친 듯이 돌아가는 가운데, 번개가 번쩍였다. 열쇠는 이제 하얗게 달아올라 손바닥을 파고들 듯 뜨거웠다. 하늘을 가득 메운 전목사의 종말적인 웃음소리와 땅을 뒤흔드는 시계의 굉음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마치 두 개의 거대한 파도가 부딪치듯, 두 소리는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천지를 진동시켰다. 위에서는 전목사의 광기 어린 웃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아래에서는 시계의 천둥 같은 울림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손바닥을 파고드는 열쇠의 고통을 견디며 서 있었다.

시계의 울림이 더욱 거세졌다.

틱! 톡! 틱! 톡!

그 소리는 이제만치 대형 종을 내리치는 소리처럼 귓전을 때렸다. 제인의 심장, 김 노인의 심장, 그리고 마을의 모든 잃어버린 영혼들의 심장이 하나로 뭉쳐 울리는 소리 같았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참으며,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자물쇠에 가져갔다. 이를 악물었다. 살을 파고드는 열기에 눈앞이 하얘졌지만,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열쇠를 밀어 넣었다.

카직-

쇠사슬이 풀리는 순간, 전목사의 웃음소리가 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한 변화였다. 곧 그의 종말적인 웃음소리는 마치 시간의 막이 거꾸로 재생되듯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귓가를 파고들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내가 도망치던 길을 되감듯이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반대로 돌아가는 듯, 그의 웃음소리는 과거의 지점으로 되돌아가 점차 사라졌다.

빗줄기 사이로, 녹슨 쇠사슬이 땅에 떨어졌다.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열쇠는 다시 청동빛을 되찾았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새빨갛게 익은 내 손바닥뿐이었다.

순간 내 몸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막혀있던 샘물이 솟구치듯, 억눌려있던 힘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였구나. 쇠사슬은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진정한 힘을 봉인하고 있었던 것을 깨쳤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어……”

김 노인의 마지막 말이 선명하게 귓가에 울렸다. 이제야 그 깊은 의미가 명료하게 다가왔다. 시간을 지킨다, 그것은 단순히 시계라는 물리적 도구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었다. 마을이 잃어버린 진정한 시간, 그 훼손된 진실을 지키는 숭고한 사명이었다. 내가 열쇠로 쇠사슬을 풀어낸 순간, 나는 전목사의 존재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시간의 장벽을 넘어, 그때를 찾아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숙명적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나는 풀어낸 쇠사슬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이제 진정한 구원의 시간이 시작된 거야.”

비는 그치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전목사의 웃음소리는 이제 그저 희미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내 발걸음은 이제 자유로웠고, 삭제된 시간은 다시 회복되고 있었다. 그 틈에서 나는 7년 전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환상문학 단편선 『위험한 이방인』에 수록된 11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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