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펴고 달려라

"쟤는 왜 허리를 꾸부리고 뛴대."

by 김진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일이다. 달리기경주를 위해 출발선에 섰을 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준비 자세를 취하며 허리를 숙이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을 단단히 쥐었다.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었지만, 실상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앞 흙바닥뿐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승부에 대한 간절함으로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준비— 탕!"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죽어라 달렸다. 주위로 학부형들과 구경꾼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들 무난히 달리는 틈에서 순위가 오락가락했다.


전투적인 눈초리로 한참 달리는 내 귀에, 우리 동네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는 왜 허리를 꾸부리고 뛴대."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를 밖에서 바라보았다. 나는 출발 자세 그대로,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힌 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손은 여전히 주먹을 쥐고 몸 앞쪽에서 작게 움직이고 있었고, 고개는 바닥만 향한 채 발끝 몇 걸음 앞의 흙만 바라보며 달렸다. 다른 아이들이 등을 곧게 세우고 팔을 크게 흔들며 하늘을 향해 달리는 동안, 나 혼자만 마치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허리를 푹 숙이고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낯선 당황스러움과 함께, 오랫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곧장 허리를 세웠다. 갑자기 넓어진 시야 속으로 푸른 하늘과 응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세상이 탁 트여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달릴 때마다 몸을 뒤로 젖히고 달렸다. 오랫동안 숙여왔던 시간들을 조심스럽게 되돌리듯, 가슴을 활짝 펴고 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주머니의 한 마디는 단순히 달리기 자세를 교정해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온 모든 전제들을 조심스럽게 의심해보라는 작은 신호였을 것이다.


문득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얼마나 자주 고개를 숙인 채 달리고 있을까.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혹시 내 시야를 가리고 있지는 않을까.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야 비로소 보이는 내 모습들이 있고, 그 순간의 당황과 각성이 때로는 전혀 다른 풍경을 천천히 열어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경험,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구부러진 시선을 조심스럽게 곧게 세우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내일에는 아직 달려보지 않은 길들이 천천히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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