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가 아니라 흙의 문제였다.
한국산 백다다기 오이를 키워먹겠다고 호기롭게 씨를 심고 싹이 잘 틔운 모종을 여섯 개나 심었다. 꽃이 백송이도 넘게 피고 잎도 무성해서 풍작을 기대했다. 여름 내내 물 주고 정성스레 가꿨다.
꽃아래 달린 앙증맞은 오이들을 볼 때마다 기대감으로 두근두근 설렜다. 많이 수확해서 오이지도 담고, 이웃과도 아삭한 오이맛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들여다보며 얼마나 컸나 확인을 했다.
그런데 오이가 자라지 않고 계속 시들고 똑똑 떨어져 버렸다. 허탈하게도 먹어본 건 짜리몽땅한 오이 세 개가 전부다.
“에잇! 뭐야 이게…”
한아름이나 되는 줄기를 걷어내며 속이 쓰라렸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달리질 않는 오이 덩굴. 호박잎 같으면 쪄서라도 먹을 텐데, 오이잎은 그런 위안조차 안 된다. 이럴 거면 담부턴 오이는 절대 안 키운다, 결심했다가도 왠지 억울하고 미련이 남아 자료를 찾아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문제는 흙이었다. 거름을 너무 많이 줬다. 흙이 지나치게 비옥하니, 뿌리는 깊이 내려갈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잎만 무성하게 키워낸 것이다.
오늘 말씀을 읽는데 나의 실패한 오이농사가 떠올랐다. 농부인 하나님은 좋은 씨를 아낌없이 뿌리신다.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그리고 좋은 땅에도. 좋은 씨는 언제나 변함없이 뿌려지고 있다. 때로는 직접 손수 뿌리시고, 때로는 제자들의 손을 빌려서라도 그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문제는 씨가 아니라, 그 씨앗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밭, 흙의 상태가 문제였다.
내 삶에 좋은 열매를 기대했었는데 그렇지 못했을 때, 실패했을 때 자주 외부조건을 탓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밭의 상태를 체크했어야 했다. 시험이라는 바람이 스윽 불면 표면이 말라버리는 메마른 흙이 되는 땅, 세상적 사고와 기준으로 걱정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돌파할 생각이 없었던 가시밭, 말씀의 싹이 조금만 돋아도 이기심과 욕심이라는 돌멩이가 굴러와 자라지 못하게 하는 마음밭이었으니 열매가 제대로 맺힐 리 없었던 게 당연하지....
그런데도 하나님은 지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좋은 씨를 내 삶에 뿌리고 계신다. 교회와 텃밭에서, 일터에서.. 사람들을 통해, 영상을 통해, 성경말씀과 글을 통해서 말이다.
딸아, 뿌려진 씨가 자랄 수 있도록 마음밭을 가꾸는 건 이제 너의 몫임을 깨달았니? 네가 텃밭의 흙을 관리하듯이 네 마음밭도 좀 더 꼼꼼하게 돌본다면 다음 시즌에는 풍성한 오이들과 함께 다른 삶의 열매들도 많이 맛보게 될 거야.
한 여름 오이농사의 실패경험이 흙의 중요성을 이렇게 직접 깨닫게 될 줄 몰랐어요. 값진 수업료라 생각하니 속상함이 감사함으로 바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