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보시면 얼마나 기쁘실까
어제 아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왔다.
있는 휴가 없는 휴가 다 끌어서 다녀왔기에 담날인 오늘 바로 출근해야 한다면서도 녀석의 목소리에 피곤한 기색이 하나도 없다.
전화로 한참을 그곳에서 경험한 일들을 나누어 주는데 엄청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이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같이 간 멤버들이 앞으로도 삶을 동행할 좋은 친구들이 되어서 너무 좋다고도 했다. 아들은 자기와 뜻을 같이하며 맘이 통하는 친구들이 교회에 없어서 아쉬워했었다. 함께 봉사하면서 소중한 우정도 기를 수 있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책상 위에 마침 어제 시작한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우연일까 특별한 끌림이었을까. 왜 그 많은 사진 중에서 어머니가 갓 태어난 첫손주인, 너를 안고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을까. 그림 속의 울 어머니는 아름답고 생생하시네, 너는 너무 작은 아가이구.
' 엄마, 그렇게 이뻐하시고 안아주고 씻기셨던 첫 손주가 훌쩍 자라 청년이 되었어요. 할머니~ 하고 번쩍 안아드릴 수 있을 만큼 컸어요. 많이 보고 싶으시죠.'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늘 하셨던 말씀이 있다.
" 나는 내 자손들이 복음과 빵을 들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기도하고 있단다. "
기도의 힘일까.
엄마의 말씀대로 남편과 아이들은 기꺼이 휴가와 방학을 써서 해외로 나가고 있다. 현지 선교사님들을 돕거나 난민 사역을 둘러보며 돕고 와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전공을 고를 때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언젠가는 가족이 팀이 되어 휴가를 맞춰서 함께 가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누가 이렇게 해라 강요한 게 아니다. 직접 보고 느꼈기에 스스로 그렇게 결정하는 모습을 우리 부부는 지켜보았고 아이들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을 뿐이다.
"엄마, 다른 나라에 나가보니,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할머니의 기도도 생각이 났어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를 알 것 같아요. "
신기하게도 이런 경험들이 쌓인 두 아들들은 돌아와서의 모습도 신기하게 닮아 있다. 각자가 하는 일과 공부가 어느 곳에 가서든 잘 쓰이는 것이 되고 싶어 하고, 그게 현장실습이든, 이론이든 경영이든... 뭐든 잘 배워놓으려고 한다. "일단 할 줄 알면 다 써먹을 때가 있더라고요."
또 돌아와서는 다음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알기에 조금씩 모아놔야 된다는 경험치가 쌓여서 씀씀이의 중심이 잡힌 모양이다. 다녀온 곳 현지 사역자들과도 계속 소통하고, 함께 다녀온 사람들과도 만나며 현지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도 본다.
여태껏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작 나는 가족들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경험하는 게 전부였지만,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영역에만 갇혀있지 않고, 다른 세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사는 삶이 어떻게 아이들을 변화시키는지를 오랜 시간을 통해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 신이 기회를 주신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보세요. 어머니,
어머니의 오랜 기도가 열매가 맺히고 있어요. 직접 보시면 훨씬 더 좋으셨을 텐데... 제가 엄마의 기도들을 잘 알고 있으니 계속 이어서 기도할게요. 제게 신실하고 끈기 있는 기도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