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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14. 2022

당신의 신앙은 안녕하십니까 <수리남>

우리에게는 착한 사람이 필요하다

수리남, 이름만 들으면 어떤 걸 열심히 고치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나라 이름이다.

이토록 반전된 정체에도 작품이 '수리'해놓은 것이 있으니 바로 신앙에 대한 관점이다.

*이 글은 신성 모독 목적이 아님을 미리 밝힘.




모태 신앙은 (주관적 견해로) 선택지가 없는 믿음이다. 나 역시 모태 신앙으로 자라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신앙생활을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참으로 환경이 중요한 것이 신앙심 깊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 치고 정말 본받을 사람을 만나보질 못했다. 그래서인지 태어날 때부터 내 곁에 계시다고 믿었던 그를 위해 꼬박꼬박 교회로 출석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본질적 믿음보다 교회에서 주는 햄버거와 함께 만나 노는 친구들이 더 반가웠다. 한창 입시를 앞두고 글쓰기가 두려웠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녔으나, 그 마음도 금세 식었다. 지금도 정말 간절해서 쓰러지기 직전에만 알량한 신앙심이 피어오르곤 한다.


이런 간헐적 신앙심은 가끔 나를 치사하게 한다만, 솔직해져 보자 우리 모두 진짜 신앙심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나는 일주일에 하루치 믿음을 굳게 믿고 화살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그들은 자신과 조금만 다르면 화살로 사람들의 가슴팍과 등 허리를 쿡쿡 찌르면서, 주말이 되면 적은 믿음을 쏟아붓는다. 알 수 없는 신앙의 세계. 계속 의문을 품고 있던 도중 <수리남>이 공개됐다. "주님, 이 또한 주님의 계획이십니까?" 전요한의 대사였고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작품을 볼 때면, 자꾸 스크린 너머의 이야기와 지금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엮게 된다. 저 너머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을 이쪽으로 끌고 와 생각하는 습관인데 <수리남>을 볼 때도 마약 조직과 살인, 엄청난 범죄보다 오롯이 '신앙'을 이용하는 전요한에게 꽂혀 그 한 지점에서 생각이 늘어졌다. 물론 그가 하는 건 조직적 범죄를 위한 사이비 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그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살을 들고 쏘다니는 이들이 오버랩되었다. 


꾸준하고 건강한 신앙 대신, 간헐적이고 치사한 믿음을 선택한 나. 그러나 차라리 용감하게 약은 길을 선택하면 나머지 종교인들은 회의론자들로부터 공격받지 않을 수 있다. 종교인의 신앙을 의심받게 하는 것은 큰소리로 믿음을 외치나 화살을 들고 다니며, 주에 한 번씩 화살을 들고 다닌 과거를 용서받길 원하는 이들 때문이다. 화살로 표현했지만, 전요한이 저지르는 크나큰 범죄나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는 한 개의 화살이나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똑같다. 



마음이 힘들어서 가장 아래에 있을 때, 우리는 간절히 신을 찾는다. 그래서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들을 또한 굳게 믿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종교와 얽혀 있고, 대부분의 훌륭한 예술가들도 신과 그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마음이 바스러지지 않고 지탱하고 살려면 어떤 신을 막론하고서라도 어쩌면 종교는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종교의 긴 역사를 걸어오면서도 신의 존재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였으니 메신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겠다. 전요한처럼 범죄를 몰고 다니거나 화살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메신저로 곁에 두게 되면 찔려서 아프고 피 흘리는 것은 결국 내가 될지니. 반대로, 신앙을 갖고 있는 종교인이라면 자신의 신앙을 한 번쯤 다시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타인에게 일주일에 하루치 믿음으로 비친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거다. 본인의 손에 화살이 들려 있지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한다. 




엄마는 꾸준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서 주말마다 내게 같이 예배당에 가자고 꼬신다. 기분이 좋을 땐 몇 번 그 꼬임에 넘어가 주는데 그때마다 어린아이들이 유독 눈에 담긴다. 나는 비록 이토록 자유분방하고 간헐적인, 어쩔 때는 꽤 치사한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된 신앙을, 그런 메신저를 만났으면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수리남>은 에피소드가 6개나 되어서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번엔 '신앙'에 대해 기록하고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유지되려면 '착한'사람이 많아야 한다. 착함을 전파하는 메신저가 많아야 한다. 신앙심을 방어막으로 화살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 적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는 걸 봐선 나도 아직 신앙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여하튼, <수리남>은 너무 찰떡이라 오히려 우려했던 캐스팅을 비웃으며 성황리에 온에어 중이다. 트렌드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어서 완주하고 여러 관점에서 작품을 음미하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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