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잃은 인간과 인간미를 풍기는 인공지능
휴머니티를 위협하는 존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는 인간의 발전이자, 인간미의 후퇴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영역은 항상 작품 안에 시대를 반영하고, 제작 단계에서 비판적 시선을 거둘 수 없는데 <타우>는 현시대를 보는 제작자의 방향성이 여실히 보이는 작품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는 어떤 의미에서 색달랐으나 영상의 색채가 줄곧 일관되고 너무 어두컴컴하다 보니, 사실 집중해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집중 지속 시간이 짧은 사람이라면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니 참고.
작품의 묘미는 중후반부에 몰아서 나오는데, 뭘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개발자에게 끌려온 여자 주인공 줄리아가 타우와 교감하면서부터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의 공통적인 단점을 꼽으라면 촘촘하지 못한 플롯이라고 생각하는 바, 이 작품 역시 스토리가 대단히 치밀하지는 않다. 초반부 줄리아에게 하는 이상한 실험 장면 몇 씬을 빼곤 개발자는 그저 터치스크린으로 뇌 모양의 그래픽을 보는 게 전부다. 앞서 나온 몇 명의 인물들도 소모적으로만 그려져서 이게 맞나? (내가 배운 시나리오 이론과 다른데?) 하는 의심이 들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개발자 집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타우가 훌륭한 인공지능임에도 본인을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단히 훌륭하다고 하면서도 줄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겨 개발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본인의 창조자를 배신한다는 점이다. 앞선 줄거리를 모두 패스하고 타우가 인간인 줄리아에게 창조자를 배신할 수 있냐고 되묻는 장면은 꽤 인간미가 느껴졌다. 인간은 인간미를 잃고 인공지능은 인간미를 풍기는 이상하고 재밌는 부분.
또한, 타우가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마다 데이터 베이스를 지우겠다며 협박하는 개발자와 그런 개발자의 고문(?)을 당하면서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는 부분은 여타 다른 인공지능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설정이니 인공지능물(?) 혹은 sf나 디스토피아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킬링타임용으로(만)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청불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만큼 선정적 장면은 없는 듯하고. 차라리 그런 관람 제한을 둘 거라면 주제의식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임팩트 있는 씬이 몇 개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타우는 동명의 다른 뜻으로 십자가를 의미한다. 타우가 창조자를 몇 차례 언급한 것도 제작자가 작품 안에 탄생과 자아 발견 등의 의미를 담고자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만, 그러기엔 이미 말했듯 스토리의 치밀함이 너무 아쉽다.
타우는 창조자의 죽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잡이인 줄리아와 개발자의 집에서 탈출한다. 코딱지만 한 드론에 자신의 데이터를 옮긴 채로. 마치 <설국열차>에서 망가진 열차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두 아이들처럼. 그래서 둘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 다 보고 나니, 어쩐지 대사 한 줄만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자라서 우리 자신의 창조자가 되는 거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