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같은 빌런이 없어도 서사는 완성된다
나에겐 백번 자랑해도 입 아프지 않을 동생이 있다. 같은 배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다른, 법대생 내 동생. 그런 동생이 죽어도 보지 않는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법정물이다. 현실과 너무 다른,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 질색하거나 미리 냉혹한 현실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두 가지가 충돌하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그런가 하면 나는 어떤가. 나는 글 쓰는 때를 제외하곤 모든 데서 지속시간이 짧은 사람이다. 금방 흥미를 잃거나 식어서, 어릴 때를 제외하곤 드라마 정주행이나 완주행을 해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그것도 저-엉말 마음에 들지 않고선 배속재생을 안 할 수가 없다. 영상에 한해선 정말 인내심이 짧고도 짧은 사람인 것.
이렇게 전혀 다른 우리 자매가 유일하게 정주행, 정속으로 보는 드라마가 있었으니 이미 현시점 드라마계를 평정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동생이 법정물을 본다는 것에 한번, 내가 기다리는 드라마가 생겼다는 것에 또 한 번. 우영우는 우리에게 있어 더 대단한 드라마인데,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송곳 같은 빌런이 없어도 서사가 된다는 점이다. 어느 날은 동생이 우영우를 보다가 문득 나에게 말했다. "언니, 드라마 참 담백하지 않아?"
맞다. 우영우는 참 담백하다. 몸이 불편한 이를 대하는 시선에 지나친 애잔함이 없는 것도, 그런 주인공을 악질적으로 대하는 송곳 같은 빌런이 없는 것도, 그렇다고 냉혹한 현실을 완벽히 외면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가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자비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복장 터지는 빌런들만 가득한 것만도 아니다.
그걸 우영우는 잘 보여준다.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은 인물들도 저마다 이유가 있어 보이고 저 사람은 오죽했겠어, 라는 공감이 먼저 나온다. 흔히 법정 드라마라고 하면 등장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처참한 인격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도 드라마는 나와 동생을, 그리고 우영우를 바라보는 모든 이를 매료시킨다.
언젠가, 대학에 다닐 때 시나리오 수업에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비극보다, 희극이 쓰기 더 힘들어. 자극적인 것보다 잔잔한 이야기로 사람을 끌어오는 게 진짜 고수야."
(우영우팀..당신들은 고수야!)
우영우를 볼 때마다 팍팍한 삶에서도 우리가, 개인이, 한 명 한 명이 착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비뚤어짐에 절여 있다가도 영우의 해맑음에 금방 희석된다. 담백함. 그것이야 말로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힘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모든 영우가, 그리고 영우를 보는 우리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힘낼 수 있기를.
이제 이틀만 지나면, 영우하는 날이다. (월요일 기준) 오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