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 기록 한 장
가끔 B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마디마디를 기억해 두었다가 일기에 써먹곤 했는데, 최근에는 참을 수 없어 그 애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건 까먹기 전에 기록해 놔야겠다, 하면서.
마음은 뭘까? 오늘은 모두에게 있는 무형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본디 생존에 유리한대로 살아가기 마련인데, 누군가에게 마음이 쏠리게 되면 기꺼이 손해도 본다. B와 나는 서로에게 손해 보겠다고 다짐한 사람처럼 서로의 편의를 더듬는다. (그렇지만 아마 더 많이 손해 보는 쪽은 그 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애매하게 다른 입맛을 지니고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걸 B는 못 먹고, 또 그 애가 좋아하는 걸 나는 기피할 때가 있다. 그러면 서로 적당히 타협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보다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좋아하는 음식을 찾는다.
그 일을 반복하다가 최근에선 상대가 원하는 걸 먹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서로 덜 좋아하는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먹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관련해서 최근에 내가 참을 수 없이 메모했던 그 애의 말은, '나는 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꽃이 펴! 였다.
나는 B와 마주 앉아 밥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맞은편 그 애가 나를 보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나는 맛 좋다고 소문난 어떤 식당의 인기메뉴!' 멘트가 붙어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기분이 든다. 함께 식사하는 동안 나는 평범한 음식도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그 애는 마음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능력을 얻은 걸까?
이제 정말 봄이다. 길 어디에 눈을 놔도 드문드문 산수유 꽃들이 보인다. 요 며칠 그런 진짜 꽃을 보는대도, 나는 계속 B의 마음속에서 폈다던 그 꽃을 생각한다. 마음은 신기해.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데 제일 터무니없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요즘은 B와 대화하게 되면 또 어떤 말을 메모하게 될까 기대하게 된다. 건너 건너 들었다던 엉뚱한 한국말을 할 때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는 일도 생긴다. 이것 역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만, 그 애의 부끄러움을 감춰주기 위해 나 만 알고 있어야지. 벚꽃을 함께 볼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또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예쁘고 깜찍한 말들을 놓치지 않도록 메모앱은 항상 켜둬야겠다.
_꽃과 대화와 메모 [23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