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절 기록 한 장
'신은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준다'는 말은 무신론자인 B가 유일하게 믿는 메시지다.
그 애가 무신론자인 것과 달리, 나는 일요일 아침 엄마와 함께 비대면 예배를 드렸다. 갈팡질팡 대는 얕은 신앙심은 그나마 집에서 편한 상태로 티비 시청을 해야만 반짝 피어오른다. 그래서 정말 제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실 건가요? 묻고 싶은 나날이다.
22년과 23년 3월 사이에 많은 것이 오고 갔다. 무너지고 일어서며 생채기가 난 자리에 딱지가 들어앉을 때쯤, B를 만났다. 그리고 그 애는 이미 지친 내게 다시 넘어질지도 모를 이벤트들을 내밀었다. 20여 년을 겁쟁이로 산 내게 새로운 이벤트는 흥미롭다기보단 도전에 가까운 압박이었는데, 어째서인지 평소 같았으면 한사코 거절했을 법한 일들도 어렵지 않게 뛰어들 수 있었다. 뭐든 B의 옆에선 쉬웠다.
내게 심각한 일도, 그 애가 옆에 있으면 단순한 일이 된다. '도전해 봐' 라던지 '그렇게 해보면 좋겠는데?' 라던지 '안 굶어 죽어' 라던지. 그런 말들을 착실하게 주워 담다 보니 양양에서 난생처음 30여 명이 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초, 중, 고 입학과 졸업식을 제외하면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난 날이다. 늘 관계 안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관찰하기 좋아하던 나는, 다양한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얼마나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지 몸소 느꼈다. 내게 필요한 것은. B와 같은 리듬을 가진 사람들.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 불안해도 걱정이 앞서도 일단 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
회사와 회사로의 여정에 지칠 때면 지금 대각선에 앉아 있는 B를 떠올리거나,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연락하게 된다. 그러면 마법처럼 불안 함은 온데간데없이 지금 살아 있는 즐거움과 감사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내가 여기 있어서 그 애를 만날 수 있었구나, 어쩌면 신은 내게 가장 필요한 B를 주었구나.
B는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고 하면 따라오는 말 없이 겉옷을 걸쳐 입거나 시동을 걸어준다. 올해는 더 여러 곳들을, 더 많은 사람을 겪어내겠구나. 그래서 문득문득 불안에 떨겠지만 그마저도 재미를 느끼는 내가 될 거란 예감이 든다. 서른이 되기 전에.
_신이 내게 줄 것들에 대한 이야기 [23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