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안전한 졸음과 행복

연애시절 기록 한 장

by 진이수

졸음이 쏟아진다, 행복이다.


반년 전, 온 신경을 일에 몰두한 채 사람을 얻었다가 잃어도 보고, 둘러싼 환경에서도 변화가 생기면서 불안장애와 마주했다. 꽉 막힌 공간에 들어서면 모르는 사이 식은땀이 나거나 심장이 뛰고,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봐야 하는 일. 그런 지경에 이르면 나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데, 과정이 퍽 괴롭다. 손을 꾹꾹 눌러 신경을 분산하거나, 심호흡을 크게 크게 내뱉거나, 아니면 화장실에 가서 뭐든 비워내야 한다. 꽉 막힌 도로 위, 창문이 열리지 않는 좌석버스 속 나를 상상하면 아직도 숨이 막힌다.


즉흥적으로 B와 여행계획을 세웠다. MBTI를 신봉하는 바, 파워 J인 나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는 비행기 표를 끊었고 짐을 쌌다. 여행을 앞두니 일이 고돼도 딱히 힘들지 않았다. 탑승 전까지 화상회의를 해야 했지만, 그것 역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제는 좀 잠잠할 줄 알았던 불안장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탑승구 앞에서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또다시 심장이 뛰었다. 울고 싶었다.


겨우겨우 스스로를 달래고 좌석에 앉자, B는 내 손을 꾹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에 대해 나열해 주었다. 비행기 사고가 얼마나 드문지, 그것과 비교했을 때 자동차 사고는 얼마나 빈번한지, 그러니까 비행기가 얼마나 안전한지. 비행기 안전에 대해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나는, B의 어설프게 엇나간 위로에 정말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그 애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본인의 이어폰을 끼워주었고, 나는 바깥세상 소리가 차단된 순간에서 점차 줄어드는 심박수를 느꼈다.


문득 내가 찾아다녔던 행복에 대해서 떠올렸다. 나는 얼마나 거대한, 허상과 같은 행복을 바란 걸까? 그 애의 손이 나를 잡아주었을 때, 상공 구름의 아름다움을 덤덤히 받아들였을 때, 나는 더 이상 끝이 두렵지 않았다. 옆에 B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자, 잠이 쏟아졌다.


아, 알겠다. 나에게 행복이란 안전한 졸음이라는 걸. 그 애가 운전을 할 때도, 나는 딱 그런 기분이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당장 졸음에 못 이겨 눈을 감는대도, 어쨌든 B가 곁에 있을 거라는 사실. 그 애가 옆에 있으면 뭐든 괜찮을 거라는 생각.


여행지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날씨 같은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옆에 B가 있고 심장은 제 박동수를 찾았고, 나는 꽤 즉흥의 묘미도 알게 되었으며 그 애의 손은 커서 언제든 나를 붙잡아주면 나는 무서울 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 문이다. 렌트한 낯선 차를 타면서도 나는 B의 옆에서 몇 번이나 쏟아지는 잠을 참아야 했다.


B는 아주 자주, 내 앞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나는 나 역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애는 다시, 자기 덕분에 행복하다고 하는 날 보니 행복하다고 말해준다.


행복은 전염될까? 학습도 될까? 어쩌면 그런 것 같다.

나는 더 쉽게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_안전한 졸음과 행복 [24년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05. 필요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