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 교차점 그리고 하나 됨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소리를 '우리 음악'이라 한다면 우제점(牛蹄占)으로 부족장을 저승길로 보내던 선사시대는 음악이란 제사장을 위하여 울리던 진혼곡이었으며 봄과 가을에 곡식을 심고 거두기 위해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울리퍼 지던 축제의 노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의 노래가 발생하게 되었고 당과 송과 여러 중국 부족과의 교류로 음악이 변형되면서도 토속적 색깔을 같이 띠면서 발전하게 된다.
고려시대는 불교 음악이 발달하였고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하는 쿠데타의 성공으로 조선이 세워지고 위에서 아래로의 질서를 강조하게 되며 유교 정신을 강요하게 된다. 이에 탄생한 음악이 바로 '예악(禮樂)'인 것이다. 이러한 질서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판소리'가 등장한 조선 후기는 수직적 질서를 수평으로 눕혀 놓으려는 민중의 '중꺽마' 정신은 노래에도 극단적 자유로움이 베어 있다.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다라 안자
것넌 산 (山) 바라보니 백송골 (白松骨)이 떠 잇거늘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 뛰여 내닫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날낸 낼싀망졍 에헐질 번하괘라.
개항기 이후에 기독교 즉 서학의 보급으로 찬송가가 보급되었고 일제치하에서 1929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우리에게 '대중가요'라는 말을 최초로 알리게 되었다. 우리 음악과 대중음악의 조우는 일본을 통하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 음악이 일본 음악인 엔카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아마도 법을 연구한 자들은 우리의 법체계가 '대륙법 체계'라는 것을 다 안다. 즉 독일과 일본을 통해서 수용된 이론을 근간으로 법을 만들었고 나중에 영국과 미국법이 도입되어 조화를 이루었다. 어쩌면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음악에도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 이후 미 8군에서 미국음악과 우리 음악의 만남은 현대 대중음악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남겼다 할 수 있다. 우리 음악과 팝의 가장 큰 만남은 미 8 군이라는 군영이었고 이곳에서 재즈와 국내 음악의 만남-루이 암스트롱과 윤복희의 만남(1963년)-이 그 결정체였고 이후 1970년대 포크 음악이 유행할 때는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번안곡이 유행하며 그 만남을 이어 나갔다.
우리 음악의 변화를 간략히 알아보았다. 한편 아프리카 토속음악으로 부터 출발하여 미국으로 노예로 끌려와 노동요(Call and Holler)로 변형되고 가스펠과 솔(Soul), 블루스와 재즈, 록과 포크, 하드록과 헤비메탈 그리고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로 진화된 현대 팝음악의 원류의 합일점 내지 교차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자 이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 우리 전통음악과 현대 대중음악이 만났는가?
처음 이 질문을 던졌을 때는 두 흐름에 하나로 어우러지는 소용돌이는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더 관련 서적을 읽어보고 합일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니 오히려 간단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피리"
"참으로 단순하다"
"나팔"
"그래, 단순하구나!" 특히 요즘 힙합과 전통의 매칭
그 시작은 악기의 매칭이다. 피리와 나팔처럼...
그럼, 이제부터 한 장면씩 끊어서 살펴보자!
용어 해설
팝 음악(Popular Music)
대중가요와 혼동되어 사용되며 팝 음악이란 단어는 1926년 "인기 있을만한 매력이 있는" 음악이란 의미에서 사용되어 1950년대 이후 로큰롤의 버전 중 하나로 여겨지며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매김하였다.
가스펠(Gospel)
흑인에게 교회음악은 1800년대 초반에 교회에 다니는 흑인에게 그들만의 방식의 가스펠을 만들어 내게 된다.
주된 변화는 2010년 이후에 많은 곡들에서 이의 교차점을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 음악과 팝의 만남의 시작은 영화음악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전우치전의 OST인 '궁중악사'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OST에서 신나는 사운드 디자인에 걸맞은 나팔과 피리 소리는 전통과 팝의 지극(至極)에 이르렀다.
넉넉하고 무난한 발라더 유열의 원곡을 국악 버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곡의 어레인지먼트는 많은 리스너의 귀를 사로잡았고 우리 음악과 팝의 조합이 편곡으로도 충분히 거듭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IDOL 아프리칸 리듬에 한국의 전통적인 가락들을 엮어낸 ‘IDOL’은 SOUTH AFRICA에서 유행하는 하우스 뮤직 장르인 Gqom 장르의 곡이다. 그간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없는 그루브의 곡이지만 방탄소년단만의 스타일이 덧붙여져 전 세계에서 방탄소년단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방탄소년단표 글로벌 음악이 탄생했다. 특히,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 같은 국악 추임새가 더해져서 가장 한국적인 것과 아프리칸 리듬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가 결합해 한국적이면서도 글로벌 한 음악이 나오게 됐다. - 소개글 그대로 그 느낌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음악과 힙합의 만남
국악과 메탈의 어우러짐이 일품인 잠비나이의 '그들은 말이 없다'(2016.6)를 시작으로 악단광칠의 영정거리( 2017.8), 림킴의 민족요(2019.10),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2020.5)등 판소리에 펑키한 사운드를 조합하거나 굿소리에 집단의식을 불어넣는 새로운 시도는 우리 음악에 팝의 흐름이 잘 어우러졌으며 퍼포먼스까지 더해져 한층 더 즐거운 조합으로 거듭났다.
뽕보다는 일렉의 향기가 더 깊게 베어있고 아마도 가장 성공적인 조합이라 할 수 있는 결정체는 김연자의 아모르파티(2013)이다. 물론 김연자 님의 가창력이 뽕과 일렉의 떨림 위에서 파동이 더욱더 크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크레용팝의 ‘어이’는 '하우스 일렉 뽕짝' 스타일을 내세우며 새로운 도전을 하였다. 하지만 큰 이정표를 만들어 내진 못했다. 그래도 그 시도만큼은 의미있다 할 것이다.
2022년 250은 길보드 차트의 진정한 뽕짝을 가져와 "아니 지금 이런 음악을 다시?"라는 의아함이 관심의 중심으로 우리를 이끌었고 이러한 관심은 아이돌 기획사에도 파장의 물결을 일으켜 걸크러쉬의 행보에 보탬이 되는 인물로 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음악과 팝의 어우러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그 자체가 목적이니 말이다.
선사시대부터 전해온 우리 음악은 대중가요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9)로 서양 음악과 만났고 미 8군에서 무대가 펼쳐지고(1963) 번안곡의 전성기(1970년대)로 서양 팝음악을 닮아 가려하였다. 그러한 흐름은 변하여 2010년을 전후로 우리 음악에 무게중심을 두고 새롭게 변모하려는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할 수 있으며 위에 앨범과 같이 드러낸 작품들은 이의 흐름에 큰 이정표라 할 수 있는 것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 음악과 팝의 만남이 흥행을 만들어내는 일시적 허구(虛構)는 아니어야 한다는 마지막 바람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