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름의 시각 '푼크툼'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느낌으로

by 염진용

같은 모습을 달리 보는 안목을 길러보자



불교 용어로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교관겸수(敎觀兼修)'와 더불어 수행하는 방법의 차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돈오점수는 '문득 깨닫고 이에 따라 수행을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골물을 마시고 당나라로 수행을 하려던 길에 되돌아온 신라 고승 원효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연구를 하여 깨달음을 터득하기도 하지만 어떤 찰나의 느낌과 감동이 전율이 되어 다가와 이에 관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이론의 틀을 정립하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론이 있다. 바로 '푼크툼'과 '스투디움'이다.


사진학을 공부한 분들에게는 친숙한 용어인 듯 하나 아마도 대게 사람들은 모르는 용어 일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찌름」을 뜻하는 라틴어 「punctionem」을 말한다. 요즘은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에도 이 뜻이 적용되어 미학적 해석에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어머니를 잃고 상실감에 빠졌던 바르트는 어머니의 옛 사진들을 보고 기호학적 비평으로 이미지의 신비성을 벗겨내려던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품고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바로 '돈오점수(頓悟漸修)'였던 것이다.


'푼크툼'은 작가가 의도한 바를 비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주관적, 개인적이거나 하찮은 것 같은 것에서 폐부를 찌르는 감동 내지 영감을 받고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개인의 경험, 무의식을 배경으로 능동적으로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강렬함으로 더 이상 기호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스투디움'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시각이라 하여 사진이나 영상을 감상하는데 공통되게 느끼는 '사람의 의도를 그냥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귀의 모습.jpg


얼굴은 얼굴이나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이 다르다. 특히 잘 보지 않는 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참으로 이상한 모양새의 신체 부위구나라고 느끼면 '찌름'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노란 신호등.jpg


길거리 신호등의 노란색이 '잠시 쉬었다 가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면 경고의 노랑이 아니라 푼크툼의 노랑인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찾아내는 독특한 취미를 갖은 분들이 있다. '어 저런 장면도 있었어?'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독특함 이 또한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푼크툼'과 '스푸티움'을 이분법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체험적 욕구가 반영된 이미지와 영상을 머금고 있는 인터넷상의 많은 이미지와 영상들만 보아도 이 두 가지 시각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체험적 욕구가 확장되어 다양해져 이 둘은 충돌과 조화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삶 속에서 '푼크툼'을 같이 찾아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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