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대중문화와 지금
대중문화의 겉과 속 - 멋진 표현들
대중문화의 겉과 속 - 멋진 표현들
지금의 대중문화는 '포노 사피엔스' '메타버스' 'MZ세대'로 특징 지워지고 Wi-Fi욕구, 배터리 충전 욕구의 시대이며 궁금증을 풀기 위한 검색은 예전의 포털 사이트에서 활자로 검색하는 것이 아닌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미디어 검색이 대세가 되었다.
TV를 시청하기보단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유튜브 채널을 검색하여 감상하고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면 1인 미디어 시대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1999년에 출판된 '대중문화의 겉과 속'(저자 강준만)의 책을 읽고 글 속에 서 20년여 전의 대중문화의 이슈를 살펴보고 22년이 지난 지금의 대중문화에 대하여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려다 보니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때론 이런 글도 쓸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훑어 대강을 살펴보고 주요한 표현 위주로 비표해 보려 한다.
Popular Culture(파퓰러 컬처)
Mass Culture(대중문화)는 Mob으로 지향점이 없는 단순 집단의 문화로 휘발성이 강한 반면 Popular Culture(파퓰러 컬처)는 지성적 측면을 강조하여 대중문화가 나아갈 바를 밝히려 하였다.
관객의 죽음 : 복잡한 건 싫어요... 핵심만 간단히
오케스트라와 같은 고급문화가 대중문화에 짓눌려 죽어가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고급문화가 죽지 않기 위하여 대중문화와 타협한 예술 장르가 '팝 아트(Pop Art)'이며 '앤디 워 홀'을 작품들을 예로 들고 있고 더 나아가 퓨전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퓨전 재즈를 언급한다.
이에 대하여도 20년이 지난 지금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고급문화에 대한 접근성과 고가성은 모바일을 활용한 예술 문화를 접하는 세대에게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마골로기(imagologie)의 시대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인간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논리적 사상체계가 아니라 단지 일련의 이미지와 암시라는 것을 창조하기 휘해 '이데올로기'라는 말 대신 '이마골로기'(imagologie)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 표현을 TV 세대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것은 역시 지금도 같다. 하지만 TV 안에 갇혀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친근의 환상(illusion of intimacy)
TV를 보면서 스타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청소년들의 경우 그 환상을 해소할 수 있는 통로가 별로 없어 극단적인 경우 X-Japan의 기타리스트 '히데'가 자살을 하자 3명의 여학생이 동반 자살을 하고 장례식장에서 120명이 실신을 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환상 자살'이라 한다.
아직도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면 이승을 버리고 떠나가는 동료 연예인들이 있다. '베르테르 현상'이라 지적하고 있다. 팬들이 아니라 그들만의 삶에서 오는 동질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그 동료들이 자살을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소아 주의
TV시정자의 정신 연령은 중학생으로 시청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아 주의'에 빠져있다.
'30초 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
'젊은이에 의한 지배'(filiarchy) 광고 속의 젊은이들의 유치함은 청춘이라는 후광을 얻어 미화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중음악에서도 일명 훅(Hook)이라 하여 반복적 리듬으로 무장하고 인트로-빌드업의 공식이 깨진 지 오래이다. 쉽고 빠르고 간편한 것이 좋다는 세대의 반영이다.
매체는 메시지다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
테크놀로지 결정론 = 매체는 메시지다.
활자매체의 포로들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과학은 개념(concept)이 아니라 지각(percept)이다
'뜨거운 매체'(책)와 '차가운 매체'(TV)
매체는 '인간의 연장'이다.
마샬 맥루한의 이론은 심오하여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 간단히 짚어 보면 내용적 측면보다 미디어 자체에서 메시지가 결정된다고 하는 바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요강 안에 맛있는 사탕이 담겨 있다면 누가 먹겠는가!
카피 레프트(Copyleft) 운동
"하늘 아래 새 것 없다."
"진리는 결코 독점될 수 없다."
1983년 미국 MIT 인공지능연구소 컴퓨터 학자였던 리처드 스톨만의 'GNU 프로젝트'로 본격화
이 때문에 생겨난 OS가 Linux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모니카' 프로젝트이다.
'쓰레기통의 평등'을 넘어서
현대인은 왜 유행에 민감한가
올더스 헉스리 <멋진 신세계> 청년들을 지배하고 있는 구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즐길 수 있는 것을 절대로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에이리 프롬 <건전한 사회>에서 인용, 현대인의 과소비는 병리적 강박감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당신이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봐요.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쓰레기통의 사회학'은 쓰레기통에 담을 수 없는 '이미지 소비'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쓰레기통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우리 사회는 적어도 중산층 이상에선 '쓰레기통의 평등' 만큼은 실현된 게 아닐까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마트에서 장 볼 때 다른 이들의 장바구니를 슬쩍 쳐다본다. 그리고 그 물건을 구매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결국 내 쓰레기통에도 같은 쓰레기가 담길 것이다.
시청자의 이중성
앙케트 조사는 교양프로를 늘려달라고 하지만 정작 시청률 조사는 오락프로그램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한국의 시청자와 방송 제작자는 서로가 서로의 속셈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대중문화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중문화를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교육적인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이 책의 결론인 듯하다. 결국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대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 할 것이며 '놀이학습'으로 대중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지향해야 할 바라 생각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전반의 이야기이지만 대중음악으로 나의 견해를 밝히며 글을 마친다.
스웨덴을 예로 들고 싶다. 학교 안에서 록그룹을 만들고 이를 평가한다.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굳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동요, 가곡, 클래식으로 연결되는 우리 보통교육 시스템은 군부 독재 시절에 내가 나라를 끌고 갈 테니 너희들은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어라'라는 수동적인 국민상을 음악에 주입시켜 지금껏 교육시켜 온 것이다. 하루빨리 바꾸어야 한다.
갑자기 떠오른다. 반공 웅변대회 "이 연사, 이 연사 힘주어 외칩니다!"
정말 어떤 시대에 살고 지내 왔는지 참으로 억울하기까지 하다.
정말 음악 교육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K-Pop'이 대세가 되고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될 거라는 연구 보고서는 보고 있나 몰라?
"이 연사 다시 한번 더 힘주어 외칩니다!"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 시스템 바뀌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