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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들

퓨전 국악의 이정표

by 염진용

퓨전국악의 흐름에 방점을 찍은 노래들


'김덕수의 사물놀이'와 김수철로 대표되는 시기


1970~1980년대 : 실험적 시작기


서구 대중음악의 확산과 산업화로 전통음악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국악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특히 국내 대중가요보다는 서양 팝송 가사를 다 외우고 다니는 시기이기도 했다.


국악기와 서양 악기의 기초적 결합이 시도되었는데 주로 영화음악, 방송음악에서 국악적 요소를 활용하는 시기였다.


김덕수 중심의 사물놀이패(1978)의 등장은 농악을 무대예술로 발전시켜 국악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김덕수 예인인생 60주년을 기념공연 [신명]


대중음악으로 번 돈을 국악에 쏟아부은 입지적전 뮤지션. 작은거인 김 수철


김수철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전통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록은 서양의 소리지만, 나에게는 한국의 리듬이 몸에 배어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한국적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국악계에서는 김수철을 ‘퓨전 국악의 선구자’, 대중음악계에서는 ‘장르의 경계를 허문 음악인’으로 이후 이날치, 잠비나이, 서도밴드 등 현대 퓨전국악 뮤지션들에게 큰 영감을 준 인물이다. 1990년대 이후 국악 대중화의 문을 연 결정적 인물로 영화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등 다수의 영화음악을 맡았다.


2023년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라는 타이틀로 동·서양 악기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을 펼쳤다. 또 2023년 말에는 불후의 명곡 스페셜로 “김수철과 친구들 특집” 무대가 방송되었으며, 이 무대에서도 국악 중심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주요 기획이었다.

김수철 - 기타 산조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로 대표되는 시기


1990년대 : 본격적인 퓨전화 시기


대중음악 산업 성장과 함께 '우리 음악의 현대화' 요구가 늘어났다. 서양의 재즈, 록, 뉴에이지와의 결합이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전통악기 중심의 국악밴드형 구성이 이루어졌다. 대표적 음악가로 노름마치, 공명, 푸리, Sori 등을 들 수 있다. 국악이 ‘전통 보존’에서 ‘창조적 변용’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의미심장한 시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1993)는 전자음악과 태평소 샘플링을 결합해 대중음악에서 퓨전국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Seotaiji and Boys) - 하여가(Anyhow Song)


잠비나이, 두번째달, 이희문, 고래야, 씽씽밴드 등이 판치던 시기. 얼쑤~


잠비나이-온다(ONDA) 2019

2000년대~2010년대 : 다양화와 세계화


한류 확산과 함께 “K-Music”으로서 국악의 세계적 가능성 탐색한 시기이다. 그 특징으로 크로스오버 장르 확대되어 힙합, 일렉트로닉, 락, 월드뮤직 등과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공연예술, 영상, 패션 등과 융합한 멀티미디어형 공연 등장했다. 이는 아이돌 음악의 영향으로 패션과 화장 및 분장 기술까지 동원되는 힘들인 국악인들의 몸부림이었다.




국악인 듯 록인 듯 국악 아닌 록도 아닌 퓨전 국악의 대표 '잠비나이'


이들의 음악은 국악이라는 우리의 소리에 팝, 재즈, 록, 힙합 등을 섞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어떠한 음악 장르보다 시간과 노력이 참으로 많이 들어가는 영역이다. 전통을 연마하여 우리만의 독특함에 대중적 음악과 합을 맞추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퓨전 국악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재즈와의 조합 중 보사노바에 신나는 국악 리듬이 잘 어우러진 곡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레게 리듬에 국악을 덧씌운 곡들도 마찬가지다. 좋기도 하나 조금 듣다 보면 비슷한 전개 방식에 질리기도 한다. 그런데 질리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은 퓨전 국악 뮤지션이 '잠비나이'다.


잠비나이를 퓨전국악의 대표주자로 꼽은 이유는 가장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국악과 다른 장르의 크로스오버가 기존의 것이었다면 이들은 유니크하여 어떠한 장르에 포섭되지 않는다. 아방가르드. 실험적. 프로그래시브. 그 뭐라 해도 잘 어울리는 접두 수식어를 가진 새로운 장르를 국악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북유럽의 포크 음악을 들으면서 그들만의 음악에 매료되어 한동안 듣던 때가 있었다. 우리의 뮤지션들도 북유럽풍의 음악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이를 부러워하던 때도 있었는데 잠비나이가 이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JAMBINAI잠비나이 - ONDA 온다


레게(Reggae)와 국악(國樂)을 퓨전 한 뮤지션

김반장(Kim Ban‑jang) : 레게 밴드 Windy City의 리더이자 보컬·드러머였고, 또 퓨전 국악 레게 밴드 I&I Djangdan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노선택과 소울소스(NST & The Soul Sauce) : 2014년 결성된 한국의 밴드로, 레게(Reggae), 덥(Dub), 아프로비트(Afrobeat), 재즈(Jazz), 펑크(Funk), 소울(Soul) 등의 장르와 판소리·국악 요소를 결합한 음악을 하고 있다.

라틴음악과 국악을 퓨전 한 뮤지션

고래야(Coreyah) : 고래야는 2010년대 초반부터 활동해 온 한국의 퓨전국악 그룹으로, 전통악기(대금·거문고·장구 등)와 기타, 드럼, 퍼커션 등을 혼합하여 ‘월드뮤직(보사노바) + 국악’ 스타일을 개척해 왔다. ‘고래야’는 “크게 노래하자”는 뜻이자, 바다의 고래처럼 국경을 넘어 울림을 전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희문

이희문의 말을 빌려보면 "대중들은 국악인들을 금방 잊는다." 이를 막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은 데이비드 보위가 만들어 낸 글램 록의 예술적 가치를 국악에 적용함으로 대중에게서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굳어졌다.


이후 추다혜 차지스, 악단광칠, 최근 ‘GRANADA(그라나다)’까지 단정한 한복을 입은 국악인이 아닌 가죽 재킷에 갓을 쓴 국악인으로 변모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SsingSsing: NPR Music Tiny Desk Concert 2017

유명한 프로그램인 줄도 모르고 출연했다가 졸지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BTS 보다 3년 빨리 출연했다.


추다혜차지스-오늘 밤 당산나무 아래서 2020

이 시기의 대표적 국악인으로 잠비나이(Jambinai)는 해금·거문고·태평소 + 록 사운드로 세계적 주목을 이끌어 냈다. '얼음 연못'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춰주는 두번째달, 스스로를 경기민요를 퍼뜨리는 자라 말하는 이희문 X프렐류드, 그리고 고래야, 씽씽밴드, 제나(GENA) 등을 들 수 있다.


이때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Arirang Fantasia' 등 현대적 편곡을 시도하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시기는 전통을 세계 음악 언어로 재해석한 ‘한국형 월드뮤직’의 발전기였다. 어쩌면 퓨전 국악의 극성기라는 생각도 해본다.


추다혜차지스(CHUDAHYE CHAGIS) - 리츄얼댄스(Ritual Dance)


두번째달-두번째 달 1집 2005

두번째달


곡 대부분이 보컬 없는 연주 중심으로 가사보다 선율, 화성, 리듬의 조화로 감정을 전달한다. 특히 전통적 리듬보다는 멜로디 중심의 감성 표현에 강하다.

특정 국악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아일랜드 포크, 남미 리듬, 재즈 코드 등을 섞는다. 국악을 '민족음악'이라기보다 세계 공용 감성 언어로 사용한다. 국악의 정서-한, 여운, 즉흥성-를 유지하면서도 월드뮤직과 같은 서정성을 강조한다.



두번째달(2nd Moon) - 얼음연못(Ice Pond) [OST of Goong]


그리고 이 시기 전우치전의 OST로 유명한 궁중악사(2009)를 빼놓을 수 없다. 장영규 음악감독의 작품으로 이전에도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등의 작업에서 이미 유명했다. 장영규는 전통음악을 현대화하는 감각이 뛰어나며, '전우치'에서도 국악 리듬과 현대 영화음악의 접목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주로 왕실, 궁중, 양반 계층의 연향(宴享, 잔치)이나 의례(祭禮)에서 연주되던 품격의 음악인 정악(正樂)을 현대 음악의 훅(Hook)으로 탈바꿈시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유행했던 말로 이 곡은 '수능금지곡'의 반열에 올라있었다.


궁중악사 - 전우치 ost


이날치, 악단광칠, 아마씨, 서도밴드, 누모리 등 새로운 인물들이 설치는 시기. 절쑤~


이날치-범 내려온다 2020

2020년대~현재 : 대중화·융복합의 확산기


유튜브,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세계적 노출이 증가했다. 대중음악계와의 협업 활발(아이돌, 래퍼, EDM 등)해졌다. 드라마 OST, 게임음악, 광고음악 등 국악 기반 콘텐츠 산업화에 힘을 쏟는 시기이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2020)로 글로벌 대중에 국악의 리듬감을 알린 시기다.




이날치 - 범 내려온다(with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악단광칠-악단광칠 2017

전자악기를 쓰지 않고 보컬과 국악기만으로 공연을 하는 '악단광칠', 부드러움으로 국악을 대변하는 '서도밴드', 아마씨(AMA) 등 젊은 세대 중심의 국악밴드 활동이 두드러졌다.


BTS, LE SSERAFIM, NCT 등 K-pop 아티스트들이 국악 리듬·소리를 빌려 썼다. 국악이 '전통음악'에서 '트렌디한 콘텐츠'로 변신했다. 공연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패션쇼, AI 음악 생성 등으로 확장 중이다. 이희문의 Tiny Desk Concert 출연 이후 퓨전 국악인으로는 2번째의 영광을 차지했다. 지금은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닌다. 지화자~ 좋다.



ADG7: Tiny Desk Concert


서도밴드(sEODo BAND)


이름 그대로 서도 민요에 기반한 밴드다. ‘서도소리’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의 민요로, 굵고 떠는 창법과 감정이 진한 시김새가 특징이다. 서도밴드는 이 창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를 밴드 사운드 위에 얹었다. 전통 창법의 권위와 호소력이 대중음악과 만나 독특한 긴장감 만들어낸다.

보컬 중심의 퓨전 록 밴드로 현대적이고 웅장한 사운드스케이프로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이루었다. 지명도에 비해서 정규앨범이 없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서도밴드 - 뱃노래


누모리 (nuMori)-구나구나 (GunaGuna) 2016

누모리(nuMori)


‘새로운(뉴, new)’와 ‘모리(장단의 단위)’를 합친 '새로운 리듬'을 뜻하는 밴드 이름이다. “국악을 낯설지 않게, 그러나 새롭게”라는 풍악을 울리며 자진모리·중모리 등 전통 장단 구조를 유지한다. 또한 드럼, 베이스,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팝과 재즈의 리듬감도 같이 버무린다. 누모리는 퓨전국악 밴드 중에서도 보컬 비중이 높은 편으로 '국악 발성의 부드러운 현대화'를 추구한다. 전통악기의 음색을 과하지 않게 섞어 '편안한 국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누모리(nuMori) - 흥보


퓨전국악은 “보존에서 창조로, 전통에서 세계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단순한 국악의 현대화가 아니라, 세계 음악 속 한국 정체성을 표현하는 예술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다 적지 못한 퓨전국악 뮤지션들

프로젝트 락, 별마루, 소리애, 비단, 미인, 시아, 풍류, 이상, 화월, 여량, 정은지, 이어랑, 정효은, 임상숙, 김연경, 김보라, 신소을, 연(YUN), 미지(Miji), 비원, 조선블루스, 예결, 장단 DNA, 정가앙상블, 모던 판소리, 헤이야, 나무, 화양연화, 퀸, Melotic, 비나리, 국악인가요, 에이도스 인정, 앙상블 시나위, Moony, 이윤선, 바닥소리(Badaksori), 판소리제작소 소리담기, 고윤선, 투해금, 구자은, 한지수, 신동재, 오정민, 오병옥, 아기자기, 경성구락부, 고니아(GONIA), Haepaary(해파리), 국악전자유랑단(국전단), 비아트리오, 끌림, 국악클래식 앙상블 화수목, 가야금 앙상블 수, 퀸, 소소, 바람, 소유(soyou), 아리모리 앙상블, VSTAR, 다울소리, 시크릿코드


+ 덧붙여서 : 관심 가졌던 뮤지션과 관심 가져야 할 뮤지션


풍류대장 '최예림'의 등장은 힙합과 국악의 조합으로 유니크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를 잘 볶아 냈다. 에미넴의 랩과 국악인의 현실을 국악 + 랩의 라임과 플로우로 적절히 익혀 태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어 One Hit Wonder 아티스트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2024년 싱글 '어야라차'를 들으며... 정규앨범도 기대해 본다.


최예림 - Lose Yourself
Deep Blue (어야라차) (Inst.)


마지막으로 많은 이에게 주목받지는 못했으나 꼭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퓨전 국악 아티스트이다. 곡을 듣고 판단하시기 바라며... 임용주의 '울릴 굉轟'으로 글을 마칩니다.

'울릴 굉轟'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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