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너의 소속은 뭥미?
나라마다 팝 음악의 이름을 달리한다. P-Pop(Philippine Pop, Filipino Pop), C-Pop(Chinese Pop), J-Pop(Japanese Pop) 등등 영미권 음악 이외의 나라에 붙여진 팝 음악에 대한 현재 진행형의 정의다. 이는 영미 중심의 사고로 '제3세계 음악'에서도 알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제국주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그래미(Grammy)는 글로벌 뮤직(Global Music)으로 '제3세계 음악'의 정의를 바꾸었다.
우리나라 바깥에서 바라본 K-Pop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본 K-Pop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한국 대중음악(Korean Popular Music)이 줄여서 K-Pop은 맞다. 언어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적어도 그렇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따르면 '해외에서 인기가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K-Pop'이라 하며 'K-Pop은 보통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 정도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지만, 현재 K-Pop으로 불리는 노래가 한국의 댄스음악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K-Pop은 글로벌 시장에서 대중적 인기가 있는 한국의 댄스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990년대 전후로 한국형 기획사들이 만들어지고 아이돌 뮤지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를 K-Pop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K-Pop의 정의는 나라마다 붙여지고 있는 영미 중심 사고로 음악 스타일을 편하게 부르고자 하는 단순화한 용어다. 그들이 우리의 대중음악의 속 사정을 잘 모르니 뭉뚱그려 K-Pop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진출에 성공한 뮤지션들을 일본에서 K-Pop뮤지션이라 하기도 했다. 모두 우리가 정한 K-Pop이 아니라 일본과 영미에서 우리의 음악과 뮤지션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편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에 국내 뮤지션과 학계의 갈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국내 헤비메탈 밴드, 하드락 밴드, 민중가수, 인디 밴드는 K-Pop이 아닌가? 더 나아가 전통가요를 부른 가수들은 K-Pop의 카테고리에 포섭되지 않는가?
물론 현재적 시점에서 국제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아이돌 뮤지션들의 국제무대 진출로 이들을 K-Pop의 중심으로 놓고 보자는 당위성은 있을 듯하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음악 현상들을 분석하여 그래도 이들을 한국형 음악의 중심에 놓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는 집단 지성의 결과물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반문(反問)하고자 한다. 남인수 '이별의 부산 정거장', 김세레나 '갑돌이와 갑순이', 조용필의 '단발머리', 윤수일 '갈대', 이선희 'J에게' 곡들처럼 50년대부터 80년까지 한국의 대중음악을 이끌던 대표곡들은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 이 이외의 많은 대중가요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러한 곡들은 "한국 대중음악이지만 K-Pop은 아니다"라고 정의된 것이다. 그런데 K-Pop을 한국 대중음악이라 해석하고 있는 언어의 유희에 빠지지 않았는가?
"음악을 즐기면 그만이지 뭐 그런 걸 따지느냐?" 하는 무관심이 국책기관이나 석박사 과정에 있는 음학 논문과 음악 전문인(저술가 및 방송인)들의 학술적 정의가 우리 대중음악의 프레임을 일방적으로 정해도 합당한가? 하는 의구심을 낳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의 스타일과 장르의 정의는 음악 하는 사람 즉 창작자의 몫이다. 소위 비평가나 음악 방송인 및 학자들이 하는 역할은 노래를 소개하고 보다 좋은 음악을 만들게 하기 위한 중간자(Media)의 역할이자 그 들의 역할을 잘 정리해서 음악사에 남겨놓아 또 다른 세대에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려 하는 매개자 내지 인도자(a guide)로서의 역할 이리라.
무엇이 음악인지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의하고 '이게 음악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비평가들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이고 K-Pop의 정의 또한 뮤지션들과 갈등을 빚는 빌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 더 지적하자면 '비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Kant의 이론을 빌려 보면 예술은 비논리로 일관된다. 즉 감정의 표현이자 전달이다. 이에 비평이라는 '논리의 자'를 들이대는 것은 오히려 비논리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비평은 존재하지 않고 '비판(批判)'과 '찬사(讚辭)'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음악에 관련된 정의를 음학(音學)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학문적 권위에 맡겨 일방적 재단을 하게 만드는 것은 뮤지션들과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비칠 수도 있다. 뮤지션들이 새롭게 이를 반박하는 성명서라도 발표해야 하는 것인가?
K-Pop이라는 언어적 정의에 들어가고자 인디밴드와 메탈 밴드와 옛 노래를 불렀던 노장 가수 내지 중견가수들이 애쓰지 않는 이유이다. 예술가들의 학술적으로 능했다면 음학(音學)을 했지 음악(音樂)을 했겠는가! 그러나 학술적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의 프레임과 스타일, 장르의 정의를 내릴 때 정말로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하고 보다 예술적, 철학적 접근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상을 정리하고 그 현상들의 한계를 구분 짓는 것은 일부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들이 정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K-Pop이 이런 것이다' 하고 누군가는 정해 놓았다. 물론 그 규범적 기록은 바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이 Korean Idol Pop(Kid Pop)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못 마땅하다.
K-Pop이 'Korean Idol Pop'이라고 불리는 한 스스로 '나는 K-Pop 뮤지션이 아니다'라고 극구 부인하는 인디 뮤지션들도 있다. 그러니 K-Pop이라 정의한 음학적 정의에 범주를 어디까지 할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질문 말고 우리 대중음악을 'K-Pop'이라 부르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정의를 재정의 해야 하는 당위성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는 것이다.
대중음악은 현인, 남진, 김세레나, 나훈아, 남진, 조용필, 이선희를 포함하는데 이들은 K-Pop뮤지션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정의를 재정의 하라!
개인적으로 K-Pop을 '광의의 K-Pop'과 '협의의 K-Pop'으로 나누어 정의하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광의의 K-Pop'은 아이돌 뮤지션을 포함한 한국 대중음악 전반의 아우르는 음악을 말한다. 이를 'K-Pop'이라 한다.
'협의의 K-Pop'은 90년 이후의 아이돌 뮤지션 중심의 쇼와 음악이 곁들여진 국제무대를 겨냥한 한국 대중음악을 말한다. 이를 Korean Idol Pop이니 'Kid Pop'이라 한다.
이렇게 정의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이야기할 것은 기록하는 자의 학문적 권위나 시장 중심에 따른 돈이 되는 음악을 K-Pop으로 정의해 놓은 것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대선 정국에 설문 조사를 몇백 번은 본 것 같다. K-Pop이 뭐라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는 아직까지 대국민 여론조사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진정 우리의 대중음악이 발전하려면 이런 여론조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저작권 문제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오면 관심 갖는 숫자는 만 명을 넘지 못한다. 20만 명은 넘어야 제도권에서 응답을 하는데 묵묵부답이다. 잘못되어 있어도 수적으로 관심밖에 있으니 하릴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도만 탓할 수 없으니 글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음악 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음학(音學) 하는 사람들의 '먹거리'로 전락해서는 아니 될 노릇이다.
음악은 음악인의 정신으로 정의해야지 시장논리로 정의해서는 안된다.
도대체 K-Pop이 뭐냐고?
1990년 이전에 먹던 비빔밥은 한류가 아니고 90년 이후에 먹은 비빔밥은 한류라는 이야기하고 똑같다.
비빔밥은 밥의 종류이다 이를 뚝배기에 담을 것인가, 유기그릇에 담을 것인가, 아니면 함바 식당의 플라스틱 그릇에 담을 것인가의 논쟁과도 같을 것이다. 밥맛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뮤지션들은 정신적으로 봉기하라!
이 글은 현재의 K-Pop의 정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담기 위함이고 10년 후 아니 20~30년 후 새롭게 K-Pop이 정의될 때 0.000001의 가능성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기록으로 남기려는 의도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