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링 팝송, 추억을 소환하다
책 값이 표시된 바코드를 내려받았다. 파일 형식은 PDF와 EPS,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선택에도 인쇄 방식에 대한 고민이 스며든다. 디지털 인쇄를 할 것인지, 옵셋 인쇄를 할 것인지에 따라 적합한 포맷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이렇게 작은 결정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바코드의 크기도 함부로 다룰 수 없다. 규정상 20%까지는 축소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괜히 비율을 임의로 건드렸다가는 서점 계산대에서 스캐너가 머뭇거릴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선과 간격, 검은 막대의 굵기 하나까지도 이미 계산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괜히 겸손해진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원본 그대로를 사용하기로 했다. 책의 마지막 얼굴이 될 작은 사각형 하나에도, 생각보다 많은 책임이 담겨 있으니까.
아래의 방식은 비교적 표준적인 표지 제작 과정이다. 앞면과 뒷면을 모두 완성했다면, 이제는 작업을 위해 남겨두었던 구분선들을 하나씩 지워 주어야 한다. 화면 위에서는 친절했던 선들이, 인쇄 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대신 책등, 그러니까 세네카의 크기를 위아래로 조금 더 또렷하게 잡아 주면 앞뒤의 구분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보이지 않게 정리하는 일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처럼 남아 있는 것이 파일 포맷이다. 인쇄소로 보낼 때는 왼쪽 그림처럼 PDF/A-1a 형식으로 변환해야 한다. 그래야 CMYK 인쇄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화면 속 선명한 RGB 색감은 종이 위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일 하나를 바꾸는 일 같지만, 사실은 종이 위의 결과를 예측하는 일에 가깝다.
알아두어야 할 점도 있다. 포맷을 바꾸면 용량이 거의 열 배 가까이 늘어나기도 한다. 사용한 폰트 역시 반드시 함께 포함시켜야 글자가 깨지지 않는다. 인쇄소와 출판사가 사용하는 PDF 버전이 서로 다르면, 인쇄 과정에서 폰트가 뭉개지거나 미세한 줄이 생기는 뜻밖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해상도 또한 최소 300dpi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종이 위에서는 작은 흐림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쇄 사고는 무지에서 오기도 하지만, 더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소통의 빈틈이다. “괜찮겠지”라는 한마디가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남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짚어 보는 것이 좋다. 파일 형식, 색상 모드, 해상도, 폰트 포함 여부, 재단선과 여백까지.
결국 표지 제작의 마지막 단계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인지도 모른다. 한 번 더 확인하고 또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집중. 책 한 권이 온전히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마음이 필요하다.
책의 표지는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아르떼 230g’. 내지로 ‘뉴플러스 100g’을 선택한 순간, 표지 역시 그에 걸맞은 옷을 입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종이는 결국 책의 첫인상이자, 독자가 가장 먼저 만지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샘플링을 통해 대중음악의 계보를 시각적으로 아카이빙 한 연구형 교양서”다. 단순히 읽히는 책이 아니라, 보고 넘기며 축적되는 책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미색지를 사용해 가독성을 높이고, 종이의 질감을 한 단계 올렸다. 잡지처럼 세련되면서도, 자료집처럼 신뢰가 가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올컬러에 두께도 제법 있는 편이라 비침이 적은 용지를 고르되, 책이 지나치게 둔해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려 했다. 종이는 두꺼운데 책은 과하게 두꺼워지지 않게. 그 미묘한 지점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책 넘김이 부드럽기를 바랐다. 자료를 모은 책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끝에서 걸리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페이지가 흐르듯 넘어가기를 원했다. 그 선택의 대가로 권당 약 2,000원의 비용이 추가되었다. 숫자로 보면 작지 않은 금액이다.
인쇄소 관계자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시나요?”라는 질문이 눈빛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종이의 질감은 곧 책의 태도라는 것을.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선택들이 결국 이 책의 밀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것을.
책을 만든다는 건, 어쩌면 보이지 않는 부분에 기꺼이 값을 지불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손익분기점은 37,000원이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금세 드러나는 숫자다. 하지만 나는 펀딩가를 27,000원으로 정했고, 정가는 35,000원으로 매겼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수익은 거의 없고, 어쩌면 손실이 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격을 택했다. 책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오랫동안 공들여 모은 자료와 문장들이 가격표 앞에서 멈춰 서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손익의 계산보다, 읽히는 가능성을 조금 더 앞에 두고 싶었다.
물론 현실은 냉정하다. 종이 값은 오르고, 인쇄비는 만만치 않다. 제작 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 ‘조금만 낮출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이 지닌 밀도와 완성도를 스스로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종이를 고르고, 인쇄 방식을 고민하고, 디자인을 다듬어 온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수익을 남기기 위한 프로젝트라기보다, 마음을 남기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손해가 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책이 되었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 바람 하나로, 나는 오늘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책등’의 두께를 계산하는 일은 생각보다 감각적이다. 숫자로 풀어내지만, 결국 손끝의 감각을 상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뉴플러스지의 두께가 0.1mm, 본문은 346쪽. 여기에 120g 면지와 삽지 3장이 더해지고, 풀칠로 인해 약간 더 두꺼워질 것을 감안해 +0.5mm를 더한다. 그렇게 계산해 보면 (346 ÷ 2) × 0.1 + 0.5 라는 공식이 나온다. 숫자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종이의 숨결과 제본의 압력이 함께 들어 있다.
물론 이 값은 절대적인 답이 아니다. 종이의 실제 평량 오차, 인쇄소의 제본 방식, 압착 강도에 따라 책등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계산은 기준일 뿐, 마지막 결정은 결국 확인과 소통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반드시 인쇄소와 다시 한 번 체크해야 한다. 책등 1mm의 차이가 제목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표지 파일의 가장자리 연두색 부분은 도련 3mm. 인쇄 후 재단 과정에서 잘려 나갈 영역이다. 화면에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완성된 책에서는 사라질 운명이다. 어쩌면 책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게 보일 것과 사라질 것을 구분하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책등의 두께를 계산하는 이 조용한 순간에도, 나는 한 권의 책이 물성을 갖추어 가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종이의 무게와, 재단 칼날이 지나갈 여백까지 생각하며. 그렇게 한 치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또 한 번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분은 어느 인쇄소의 전무님이다. 보통은 출판사가 인쇄소를 찾아가 인쇄를 의뢰하는 방식이 익숙한데, 이 회사는 조금 달랐다. 전무님이 직접 마케팅을 하며 “우리에게 맡겨 보라”고 손을 내민다. 그 적극적인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견적은 아는 곳을 포함해 서너 군데에 넣었다. 막상 받아 보니 가격은 거의 비슷했다. 인쇄 단가가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어서인지, 극적인 차이는 없었다. 결국 선택은 숫자보다 태도와 방식의 차이에서 갈릴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의 매력은 분명했다. 300부라는 비교적 소량임에도 불구하고 옵셋 인쇄와 후가공을 해 주겠다고 했다. 보통은 디지털 인쇄로 타협하기 쉬운 수량인데도 말이다. 가격은 거의 비슷한데 결과물의 방식이 달라진다면,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그 지점에서 마음이 기울었다. 전무님의 적극성도 다시 보였다. 단순한 영업이 아니라, 자기 회사의 공정과 결과물에 대한 확신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어딘가 단단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결국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기계와 종이 사이에도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태도가 결과물을 좌우한다. 그래서 나는 그 적극성을, 그만큼의 자신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고 편집은 MS 워드로 했다. 익숙한 도구였지만, 작업을 거듭할수록 한계를 또렷하게 느꼈다. 문단과 스타일을 정리하는 데는 충분했지만, 지면을 설계하고 미묘한 균형을 잡는 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 책은 ‘인디자인’으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책을 만든다는 건 결국 구조를 디자인하는 일이니까.
편집을 하다 보니 중간중간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가 필요하다는 순간도 많았다. 작은 이미지 하나, 도표 하나를 다듬는 일에서 책의 밀도가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표지를 제작할 때는 그 생각이 더 절실했다. 섬세함은 결국 도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조금은 배운 셈이다.
텀블벅 펀딩은 200%를 조금 넘겼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숫자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소량 출판을 해도 좋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른 계산을 요구한다. 물류와 보관을 맡는 북센, 출협, 날개물류는 거의 천 단위의 출판량을 전제로 움직인다. 날개물류는 한 달 보관료만 24만 원. 여기에 택배비는 출판사가 부담해야 한다. 북센은 가장 화려한 마케팅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대신 책값의 40%를 가져가고, 반품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출판사의 몫이다. 숫자를 들여다보면 숨이 조금 막힌다. 그럼에도 책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북센이 최적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약서를 받아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가고 있다. 결제는 어음이라고 한다.
사업자등록증을 떼고, 인감증명서도 발급받았다. 문서 한 장 한 장이 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다. 이제 나는 단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계약서를 검토하고 리스크를 계산해야 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사업가의 전선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시스템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또 한 번 계산기를 두드린다. 책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감수해야 할 무게를 조금씩 배워 가는 중이다.
콜론으로만 구분해 두었던 샘플링 곡과 원곡을, 이번에는 색으로 나누어 보았다. 작은 차이지만 화면 위의 인상이 달라졌다. 두 계보가 서로 얽히면서도 또렷하게 구분된다. 줄간도 조금 벌렸다. 숨이 막히지 않도록, 음악이 흐를 자리를 남겨 두고 싶었다.
화면은 크지 않다. 오히려 작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런데 막상 완성된 모습을 바라보니, 작지만 단정하고, 또 나름의 질서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잘난 체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고백에 가깝다. 한 줄의 색을 정하고, 간격을 조정하고, 다시 인쇄해 보고, 또 고치고.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화면을 만들었다.
조금은 뿌듯해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차이를 안다. 열심히 만든 흔적은 스스로에게는 분명하게 보이니까.
본문이 시작되기 전, 나는 과감하게 노란 삽지를 한 장 넣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색. 조용한 표지와는 달리, 그 한 장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마치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조명이 잠시 켜지는 순간처럼. 꽤 매력적이라고, 스스로도 느꼈다.
“삽지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인쇄소에서 이런 답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
인쇄 면적의 60~70% 이상을 잉크(망점 100%)로 꽉 채워 배경색을 진하게 인쇄하는 방식을 ‘빼다(베다, ベた)’라고 한다는 것. 바탕을 진하게 채워 색을 단단히 깔아 두는 공법이라고 했다.
‘잘 빠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는 이제 조금 이해한다. 색이 고르게, 밀도 있게 올라오는 것. 종이 위에 잉크가 안정적으로 안착하는 것. 그 작은 차이가 완성도를 좌우한다. 노란 삽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다른 생각이 스쳤다. 예전에 건축 현장에서 일본어 용어를 순화하자는 움직임을 본 적이 있다. 출판과 인쇄 현장에도 아직 일본어가 많이 남아 있다. 누끼(ぬき), 세네카(せなか), 도비라(とびら), 베다(ベた). 익숙하게 쓰이지만, 어디선가 빌려온 말들이다. 베다는 결국 ‘바탕색’이라는 뜻일 텐데 말이다.
오래된 관습처럼 남아 있는 말들을 떠올리니, 조금은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당장 모두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만드는 책에서는 가능한 한 우리말로 설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란 삽지 한 장에서 시작된 생각이, 결국 언어의 자리까지 이어진다. 책을 만든다는 건 종이와 잉크만이 아니라, 말의 선택까지 함께 다루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을 쓴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는 기록이었고, 때로는 공부의 흔적이었으며, 어떤 날에는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었다. 행정과 법을 배우며 구조와 질서를 익혔고, 문학을 좋아하며 인간의 결을 배웠고, 음악을 사랑하며 감정의 깊이를 배웠다. 서로 다른 세계 같지만, 결국은 모두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제 인생의 후반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남은 시간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나는 글과 음악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계산과 성취의 언어가 아니라, 나누고 건네는 언어로.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울림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거창한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좋아해 온 것들로, 내가 쌓아 온 시간들로, 조용히 봉사하고 싶다. 글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음악 이야기를 통해 추억을 환기시키고, 기록을 통해 잊히는 것들을 붙잡아 두는 일.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한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 하나, 한 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 한 편이면 족하다. 그렇게 나는, 글과 음악으로 나의 시간을 정리해 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