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모든 영혼은 외롭다.

엄마 하시겠습니까

by 스윗퍼시먼

나는 내 왼손으로 꼭 아이의 오른손을 잡고 길을 거닌다. 그래서 길을 나서면 아이는 어느새 내 왼쪽에 와서 자신의 손을 내밀며 준비가 되었다고 나를 쳐다본다. 세상이 익숙해지기까지 홀로 나아가기까지 내 왼쪽은 언제나 아이를 위해 내어 줄 것이다. 손을 잡고 한참 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내 손을 뿌리치고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러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혼자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면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 이내 엄마를 발견하곤 다시 마음 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외로운 혼자가 두려운 순간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다.


방학이면 큰딸아이를 데리고 일하러 간 적이 있다. 홀로 있게 될 아이가 외로울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혼자 집에 있겠다고 했다. 자기 일이나 공부를 하면서 엄마를 기다리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외롭지 않기 위해 자신이 겪어야 할 어색함과 엄마의 불편함을 아이가 알아버린 것일까? 몇 번을 권유했지만 아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아이가 머리가 커져서이기도 하지만 엄마와 떨어져 있는 외로움의 크기가 견딜 만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 마음의 견딤이 다 되어 가면 나에게 전화가 온다. 수화기 너머에 “엄마 언제 와요?”가 “저 이제 외로워요”로 들렸다.


나는 일을 할 때 몸은 너무 바빴지만 마음 한편은 늘 외로웠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듯했지만 언제나 혼자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의 잔상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스멀스멀 올라와 혼자 있고 싶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혼자가 되면 그 마음의 잔상이 전부인 듯 젖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들 때 그런 음악은 다 내 얘기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은 누구나 그러한 지 그 음악은 꼭 유행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넘쳐나고 다들 비슷한 외로움을 안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외로움은 어쩌면 당연한 거라 새삼스럽거나 놀라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 외로움은 단짝이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딸과 나는 언제나 외로운 각자를 위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딸이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가 늦게 오면 혼자 외롭지?”

“어… 어떨 때는….” 들킨 마음 때문인지 말꼬리를 흐렸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심심하다가 좀 외롭다가….” 먹다 말고 엄마 안색을 살핀다.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후후.” 놀란 딸이 눈을 동그랗게해서 나를 쳐다본다.

“엄마는 사람은 때때로 외롭다고 생각해. 그게 나쁜 감정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여서 왜 그럴까 하고 너무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 해탈한 말투로 다른 어른처럼 말했다.

“외로워서 보고 싶은 게 아니고 엄마는 언제나 보고 싶어.”

딸은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나를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는 자꾸 ‘외롭다’로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아는지 제대로 뜻이 전달되었는지 딸아이의 속을 또 다 알고 싶은 어리석은 엄마처럼 굴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라도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원래 외로운 길이니 외로운 것으로 너무 감정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가 언제나 보고 싶은 우리는 어쩌면 너무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클럽하우스의 모더레이터로 현진영 씨가 방을 열었다. 클럽하우스는 음성만을 이용해 이용자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소셜 네트워크다. 나와 이름이 같아 손을 번쩍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아주 친절하고 편하게 아는 체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부산에서 공연하신 이야기나 특별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부산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라는 노래 가사의 초안을 쓴 곳이었다. 그 곡으로 자신이 다시 재기하게 되어서 아주 특별한 곳이라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찍 엄마를 여읜 자신은 엄마에 대한 아련함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힘이 들때 저 멀리 바다를 보면서 엄마가 기억났다고 그래서 그런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흐려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노래한 것이었다. ‘안개비 조명은’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랫말에 안개비는 부산 해운대 바다의 해무였고 조명은 수평선에 걸쳐있는 오징어 배 불빛이었다. ‘초라한 나의 모습 변화된 생활 속에 나만의 너는, 너는, 너는 잊혀 간다는∼’ 것은 엄마를 잃고 방황하는 자신과 커가면서 변화되는 일상에서 엄마의 기억도 흐릿해져 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누구라도 들썩일 정도로 빠른 비트에 몸을 절로 맡기게 되는 곡이었는데 이런 엄마에 대한 아련함이 묻어있었다. 가만히 가사를 되짚어 보고 그 느낌이 전해져 깜짝 놀랐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는 엄마만의 이야기가 있다. 오늘 하루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 엄마’, 혹은 ‘엄마가 된 나’도 가끔 엄마가 보고 싶고 가끔 외롭고 또 가끔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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