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인가

by 스윗퍼시먼

피해자는 왜 늘 조용해야 합니까?

왜 피해자가 슬퍼해야만 믿음이 생깁니까?
왜 분노하면 “예민하다”, “과하다”는 평가가 돌아옵니까?

저는 스스로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세상은 피해자의 고통보다 피해자의 태도를 더 집요하게 심문한다는 사실을.



성추행을 당한 뒤 저는 법정에서, 경찰서에서, 심지어 상담실에서조차
“좀 더 침착하게 말해 달라”는 요청을 들었습니다.

그 말은 곧, 피해자가 되려면 조용하고 점잖아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이한 모순 아닙니까?
침범당한 사람이 왜 더 차분해야 합니까?
분노가 아니라 침묵을 택해야만 믿을 수 있다니,
그건 피해를 두 번 강요하는 셈이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피해자는 종종 과잉각성(hyperarousal) 상태에 놓입니다.

쉽게 놀라고, 사소한 접촉에도 몸이 반응합니다.
이건 ‘예민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본능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이 자연스러운 반응을 ‘비이성적’이라 부릅니다.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면 “연약하다”라고,
화를 내면 “극성이다”라고,
침착하면 또 “진심이 맞냐”라고 묻습니다.

피해자가 어떤 얼굴을 보여도 낙인이 찍히는 구조,
이게 바로 피해자다움의 함정, ‘피해자다움’이라는 낡은 틀입니다.



법정은 ‘객관적 증거’를 중시합니다.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는 증거보다 감정의 흔적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도는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질문들은 모두 피해자의 ‘행동 방식’을 검열합니다.

“왜 그때?”

마치 피해자의 반응이 피해자답지 않으면,
그 피해 자체도 덜 진실한 것처럼 여기는 구조입니다.



피해자가 진짜 원하는 건 복수가 아닙니다.

피해자는 정의가 아니라 회복을 원합니다.
그저 안전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정의를 말하면서도 피해자에게
끝없는 설명, 끝없는 증명, 끝없는 참음을 요구합니다.

회복은 뒤로 밀리고,
피해자는 결국 제도 안에서조차 또 한 번 소외되는 피해를 알 수 없이 당하게 됩니다.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정말 피해자는 조용해야 합니까?
정말 피해자는 점잖아야 합니까?

정말 피해자는 어떠해야 합니까?

저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피해자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노하는 피해자, 침묵하는 피해자, 울부짖는 피해자, 웃으면서 견디는 피해자.
그 얼굴 모두가 피해자답습니다.

그러니 피해자의 모습에 규격을 덧씌우는 사회는
결국 피해자의 입을 막는 사회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존엄입니다.
그리고 그 존엄은, 침묵이 아니라 말할 권리에서 시작됩니다.


#피해자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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