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밀려 나오는 붐비는 그 틈, 누군가는 은밀한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습니다.
순간, 제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손이 올라갔고, 그의 멱살을 붙잡았습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뭐 하시는 거냐고요?”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못 본 척했고, 공기만 무겁게 흘렀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소리쳤고, 저항했고, 결국 신고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용감한 시민’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 순간의 저는 두려운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는 단순히 진실을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세상은 ‘사실’보다 ‘입증’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검찰에게, 법정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완전히 편히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성장이 될 거다”라는 말을 상담사에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물었습니다.
무엇이 성장해야 합니까?
두려움이 내 삶을 잠식하는데,
그 위에 ‘성장’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건
어쩌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저는 정신과 약 대신 요가와 명상을 택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숨을 고르는 동안,
조금씩 나를 놓아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 감정은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사실이라는 것.
하지만 여전히 상상만으로도 몸은 얼어붙습니다.
우연히 다시 그를 마주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날의 필름 같은 기억은 제 신경계 어딘가에서 살아 있고,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밤을 깨어 지새워야 했습니다.
이번 재판은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판결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제가 견뎌야 했던 시간의 기록이었고,
내 존엄을 지키려 몸부림친 흔적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묻고 싶습니다.
정의는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정의가 됩니까?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서야
비로소 정당성을 인정받는 세상,
그건 정당합니까?
저는 이제 이 사건을 제 삶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기록이 끝나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저는 바라봅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판단이
이 사회가 피해자에게 보내는 존중의 표현이 되기를.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에게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이 글은 복수의 언어가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오늘은 저이기 때문입니다.
#지연된 정의 #지하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