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지된 시간의 시작
2024년 4월 6일 오후, 아무 일도 없어야 했다. 지하철 2호선 안,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이어폰 속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창밖으로 부산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그저 목적지만 바라보던 평범한 오후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멈췄다.
그의 손이 내 엉덩이를 스쳤다. 아니, 스친 게 아니었다. 만졌다. 너무 익숙한 손길이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듯한, 본능은 살아 있었다. 순간, 내 몸 전체가 얼어붙었다. 나는 무의적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물었다.
"지금 뭐 하신 거예요?"
그는 당황했다. 죄책감보다는 들킨 것에 대한 놀라움이 컸다.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의 목덜미를 잡고 싶었지만, 가슴을 덮고 있는 니트를 움켜쥐었다.
누군가는 이걸 '용감한 시민'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저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두려웠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손은 떨렸고, 다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런데도 놓을 수가 없었다. 놓는 순간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다.
"지금 뭐 하신 거냐고요! 왜 저를 만졌어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혼자였다.
2. 지하철 안의 재판정
시간이 이상하게 흘렀다. 영화처럼 빠르게 지나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어, 어..."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소리만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들킨 것에 대한 당황. 한두 번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두려운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 나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역무원이라도 불러주세요."
플랫폼 계단으로 올라가던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눈을 감았다. 힘껏.
그 침묵이 말하는 것을 알아챈 나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내가 112를 눌렀다.
연결음이 유난히 길었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도와주세요. 성추행범을 잡았어요. 제 엉덩이를 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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