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이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요> 하세가와 사토미 글그림, 김숙 옮김/민트래빗

by 진영

3월 2일, 우리 아이들의 새 출발은 어땠나요?

어린이집 책가방을 맨 모습을 보며 '언제 저렇게 다 컸나' 뭉클하기도 하고, '엄마 없는 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나요? 뒤도 안 돌아보고 씩씩하게 어린이집으로 홀랑 들어가버렸다면 좀 서운했을 것 같아요.


손가락 좀 보세요. 너무 귀엽지 않나요. 저 와중에 엄마 운동화 신고 왕발이 되었어요.


다섯 살이 된 저희 집 꼬마(조카)도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아침 일찍 나섰어요. 어린이집 앞에서 '나 안 갈래, 엄마랑 들어갈래' 씨름을 잠깐 했는데요. 그날 모바일알림장에 올라온 일지를 보니 꽤 재밌게 놀았더라고요.



기특하면서 한편으로는 짠하고, 고맙고, 웃기고 그렇네요. (누가 보면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인 줄 알겠어요.)


저도 새 출발을 했어요. 3월부터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공부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인데, 새로운 집단에 어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좀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사회생활을 아무리 오래했어도 '새 출발'은 언제나 긴장되는 법이에요.


어른도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오히려 아무 걱정 없이 마냥 해맑으려나요?


저희 집 꼬마의 첫 사회생활을 응원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요>라는 책을 골라봤어요. 뭐니 뭐니 해도 사회생활의 핵심은 '관계'니까요.





숲속 작은 집에 고양이가 이사를 왔어요. 짐 정리를 마친 고양이는 새로운 이웃을 만나러 집을 나섰어요.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넓은 보폭에서 고양이의 설렘이 물씬 느껴지네요. (아무래도 이 고양이의 MBTI는 E인가 봐요. I인 저는 짐 정리를 끝냈으면 소파에 착 붙어 앉아 중국집에 전화부터 했을 텐데….)


"뭐니 뭐니 해도 처음이 중요해.

이웃을 만나면 '나는 이 숲속 동네로 이사 온 고양이야.' 하고 말할까.

아니면 '반가워, 나랑 같이 놀지 않을래?' 하고 말할까."


고양이는 이웃 친구들을 만나면 건넬 인사말을 연습하면서 길을 걸어갔어요. 마침 근처에 사는 오소리, 고슴도치, 꼬마 돼지, 다람쥐가 공터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요.


"나야, 고양이. 모두 안녕!"


이참에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마음먹은 고양이가 모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려고 한 바로 그때, 다람쥐가 말했어요.


"이사 온 애가 멋쟁이면 좋겠다. 내 예쁜 리본을 빌려주게."


고양이는 멈칫,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차림새를 내려다봤어요. 그리곤 바로 걸음을 돌려 집으로 달려가죠. 아무래도 멋쟁이와는 거리가 멀었나 봐요. 그러고는 옷장을 열어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어요.


"그래, 됐어. '나는 멋쟁이 고양이야. 모두들 안녕!'

이제 이렇게 인사하기만 하면 돼."


다람쥐는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옷을 뒤집어 입고 말았지만, 이제는 새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넬 '자격'이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때, 고슴도치가 말했어요.


"멋쟁이도 좋지만, 아는 게 많은 척척박사면 좋겠다. 내가 모르는 것 이것저것 다 물어보게."


"앗, 내가 척척박사냐고? 어떡한담? 난 아는 게 별로 없는데."


고양이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요. 그러고는 평소에는 들춰 보지 않던 어려운 책들을 양손 가득 챙겨 나옵니다.


"됐어. 이러면 나는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멋쟁이에다 척척박사 고양이지."


고양이는 이번에야말로 새 친구들을 사귈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때, 꼬마 돼지가 말했어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면 좋겠다. 그러면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잖아! 라라라."


오소리도 한마디 보탭니다.


"뭐니 뭐니 해도 오후 간식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좋겠어. 그래야 다 같이 쿠키 곁들여 차를 마실 수 있잖아!"


고양이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바로 쿠키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노래로 인사를 건네는 거죠!


"안녕, 안녀냥~ 고양이다냥~

나는 멋쟁이에 아는 게 많다냥~

간식도 아주 좋아한다냥~

노래라면 라라라, 지금 들으시는 그대로다냥~

첫 만남을 위해 맛난 쿠키를 만들 거다냥~"


온 집 안이 밀가루투성이가 되고 버터와 설탕으로 바닥이 끈적끈적해졌지만, 고양이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어요. 가장 멋진 옷을 입었고, 척척박사의 상징인 책도 챙겼고, 노래 연습도 충분히 했으니 이제 맛있는 쿠키만 완성되면 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생각이었죠.


바로 그때, 쿠키를 넣은 오븐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어요.


"꺅! 이런 이런. 큰일 났다!"


고양이는 오븐에 들어 있는 쿠키를 꺼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허둥댔어요. 그러다가 그만 꼬리에 불이 붙고 말았죠.


"아뜨뜨, 아 뜨거,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고양이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바로 그때, 고양이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오소리와 고슴도치, 꼬마 돼지, 다람쥐가 달려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쩌죠? 그을음 낀 옷은 조금도 멋지지 않았고, 책은 집 안에 두고 나왔고, 노래는 생각도 나지 않았고, 쿠키는 까맣게 타버렸거든요. (왜 꼭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내가 가장 후줄근한 모습일 때 만나게 되는 걸까요...)


"이 집에 이사 온 아이가 너니?"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면 우리 아이들의 세계관은 '나'에서 남'으로 점차 넓혀져요. 그동안 자기중심적인 사고만 가능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그 과정에서 친해지고 싶은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에게 잘 보이려 나름의 노력을 하기도 하죠. 인형놀이를 할 때 내가 아기 역할을 하고 싶지만 친구를 위해 언니 역할을 한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크레파스를 양보하고 노란색을 쓰는 식으로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요>의 주인공, 고양이도 그랬어요. 새로 이사한 동네의 이웃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바라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요. 옷장에서 가장 멋진 옷으로 골라 입고, 평소에는 읽지도 않던 책을 챙겨 드는 것도 모자라 노래도 부르고, 쿠키도 만들며 갖은 애를 쓰죠.


친구가 되기 위한 '자격'을 하나하나 갖춰가는 고양이의 노력이 무색하게 결국에는 가장 볼품없는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서게 돼요. "이 집에 이사 온 아이가 너니?"라는 말에 왜 제 심장이 다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일까요.


그런데, 친구가 되기 위한 '자격'이랄 게 따로 있을까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에요. 고양이와 새로운 친구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요. 고양이의 표정을 보세요. 신나고 설레고 기쁘고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표정도 표정이지만, 고양이의 차림새를 좀 보세요. 멋져 보이는 옷도, 똑똑해 보이는 두꺼운 책도, 환심을 살 맛있는 쿠키도 없어요. 굳이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요.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예요. 가장 '고양이스러운' 모습 그대로!


"이 집에 이사 온 아이가 너니?" 다음에 대체 어떤 말들이 오고 갔길래 고양이가 이토록 환하게 웃고 있는 걸까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우리 아이들과 이 책을 읽으며 말해주세요.


친구가 되기 위한 '자격'은 없다고, 그저 '나답게' 다가가도 괜찮다고.

친구를 사기귀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한다면, 그건 '나다움'을 지켜나갈 준비라고 말이에요!


(이상, 30년 넘게 산 제 자신에게 한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