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안녕달 글그림 / 책읽는곰
조카의 앞머리가 제법 길었습니다. 이대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서(추노 같았어요) 함께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미용실 문이 닫혔지 뭐예요. 조카가 유리문에 착 붙어 불 꺼진 미용실 안을 들여다보며 묻습니다.
조카 : 미용실 왜 닫은 거야?
이모 : 사장님이 집에 가셨나 봐.
조카 : 사장님은 왜 집에 간 거야?
이모 : 글쎄. 무슨 일이 있었나.
조카 : 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모 : 글쎄. 똥 마려우셨나. <-치트키 '똥' 발사
조카 : 미용실 왜 닫은 거야?
이모 : 왜 닫았을까? <-창의력 길러주는 척 너도 당해 봐라 수법
조카 : 사장님이 왜 미용실을 닫았는지 이모가 어서 생각해 봐.
이모 : (????? 말을 이렇게 잘한다고?????)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조카에게 오늘도 당했습니다. 아직 경험한 것보다 처음 보는 게 더 많은 조카는 쉴 새 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왜? 왜요? 왜? 왜요? 왜? 왜요? 왜? 왜요? 왜? 왜요? 왜? 왜요? 왜? 왜요?
부모에게 '중2병'만큼이나 두려운 게 바로 '왜요병'이라고 하죠. 어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채워가는 아이의 순수한 질문이 왜 두렵게 느껴질까요? 저의 경우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틀린 대답을 할까 봐 걱정됐어요.
이 작고 무해한 아이의 깨끗한 세상이 저의 한마디 한마디로 채워진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더라고요. 바르고 정확한 대답만 해줘야 할 것 같았답니다. (근데 기우였어요. 얘는 그렇게까지 이모 말을 귀담아듣진 않더라고요^^ 자주적인 녀석^^)
두 번째는 나도 이유를 몰라서였어요.
어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들에 아이는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요. 이때 말문이 막힌 어른들은 질문을 못 들은 척하거나 말대답하지 말라며 화내기도 하죠. (전 안 그래요.) 아이가 "왜요?"라고 물으면 가끔은 '그러게, 진짜 왜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물론 가끔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이모'답게 "엄마한테 물어봐" 스킬을 쓰는데요. 호호. 오늘은 '왜요병'에 기가 막히게 대응하는 아주 엉뚱한 엄마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안녕달 작가의 <왜냐면…>입니다. 표지만 봐도 책의 내용과 분위기가 예상됩니다. 제목 그대로 엄마가 아이의 "왜요?"에 열심히 "왜냐면…" 하며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금붕어가 헤엄치는 바다 속 풍경과 엄마와 아이가 손 잡고 걸어가는 장면이 겹쳐지면서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고요.
아이는 뭐가 그렇게 궁금했을까요?
이야기는 어린이집에서 시작합니다. 하원 시간에 맞춰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갔네요. (아이는 엄마보다 강아지를 더 반기는 듯합니다.)
"엄마, 비는 왜 와요?"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야."
"새는 왜 우는데요?"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놀려서야."
"왜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해요?"
'왜요 폭격'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타격감이 전혀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정말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툭툭 내뱉는 느낌입니다. 저라면 첫 질문을 듣자마자 비가 왜 오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하나, 그 과학을 내가 알고 있나 생각하느라 버퍼링이 걸렸을 것 같은데 말이죠.
엄마의 얼렁뚱땅 대답은 멈추지 않습니다.
"왜 물고기는 먹던 걸 자꾸 뱉는데요?"
"물고기 밥이 너무 매워서 그래."
"물고기 밥이 왜 매워요?"
"물고기 밥 농장 옆에 고추밭이 새로 생겼거든."
아이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음… 엄마, 내 바지도 고추밭 옆에서 자랐나 봐요."
"어… 왜?"
"오늘 유치원에서 바지가 맵다고 울었어요."
"바지한테 물 줘야겠어요."
그 엄마에 그 아들입니다. 저는 이 모자의 티키타카가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데 힘을 들이지 않지만 대충 얼버무리지도 않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깔아준 놀이판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요.
아이도 알았을 거예요. 엄마의 대답이 엉터리라는 것을요. 하지만 서로의 대답이 엉터리라는 걸 알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부정하거나 정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특히 "바지한테 물 줘야겠어요."라는 아이의 말에 대한 엄마의 대답이 정말 멋집니다. "하하, 그럴까?" '현실 엄마'라면 당장 빨래할 것도 아닌 바지를 아이가 물에 적셔서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고 다닐 모습을 떠올리며 "안 돼!"라는 말부터 내뱉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딱딱하게 굳은 어깨가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질문에 정답이 있어야 한다'는 경직된 생각에서 한 발 물러난 덕분이겠죠? 우리 어른들만 힘을 빼면 아이의 세상은 활짝 열리는 듯합니다. 그 세상을 굳이 교훈적으로 채울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이 책을 덮었습니다. (조카 덤벼라.)
엉뚱한 모자의 티키타카 외에 이 책의 관전 포인트가 또 있습니다. 바로 안녕달 작가의 과감한 전개와 유머 감각,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인데요.
물고기들의 목욕탕입니다. (엄마 피셜) 물고기들은 안 씻으면 등이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대요. 목욕탕 입구부터 여탕, 남탕, 세신사까지 정말 디테일하지 않나요? 아이 때를 밀어주는 엄마, 엄마 등을 밀어주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현실적인데 비현실적인 이 상황. 정말 웃기고 귀엽습니다.
(엄마 피셜)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리는 이유가 물고기 밥이 매워서 그런 건데, 그 이유는 물고기 밥 농장 옆에 고추밭이 있어서랍니다. 정말 기발하죠? 그림도 알록달록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물고기들이 새들한테 더럽다고 놀리는 순간인데요.
저 표정 좀 보세요. 눈과 입, "더럽대요" 대사만 연필로 그린 걸까요? 얄미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정말 내용도, 그림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그림책입니다.
며칠 전, 조카가 물었습니다.
"이모, 달이 자꾸만 나를 따라와. 왜 따라와?"
웃음이 났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아빠에게 똑같이 물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아빠가 저에게 들려줬던 그대로 말해주었습니다.
"네가 예뻐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