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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힝맨 Sep 07. 2021

회사 생활 보고서 2.

그래도 회사였던, 작은 마케팅 회사 - 현실과 꿈 사이에서

 두 번째 보고서입니다. 두 번째 보고서는 친구가 대표였던 작은 마케팅 회사입니다. 사실 정확히는 두 번째 회사가 아니었는데요. 신입 사원으로 두 회사를 다녀보다가 가게 된 회사였습니다. 경력이 5년인 신입사원이었던지라 여러모로 적응하지 못했던 듯싶어요. 신입사원이라는 입장보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싶어서 스타트업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면 대기업을 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죠. 그런데 당시에는 대기업의 몇몇 면접에서 깊은 실망감을 느껴 대기업을 선택지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세상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러나 스타트업도 사실 정말 스타트업 스피릿으로 운영되는 곳은 찾기 힘들어요. 카카오나 토스, 배달의 민족같이 잘 성장한 기업들이 있지만, 그런 스타트업은 1%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죠. 나중에 아마도 나중에 다시 언급하게 될 테지만, 이런 경향을 잘 설명하는 링크가 있어 첨부합니다. 

 "대기업 꼰대 피하려다 판교서 `젊꼰` 만났네요"…스타트업 탈출하는 MZ세대


  당시 저의 회사 선택 기준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였는데, 마케팅 회사의 대표인 친구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왔고, 친구의 회사였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합류했습니다. (실은 무척 많은 약속을 받아내고 합류했습니다.)

 

 1. 매출을 기반으로 월급 주는 직원이 있던 회사


 대표였던 친구는 프리랜서로 퍼미션 마케팅을 하다가 규모를 늘려 회사를 만들게 된 거였는데요. 주로 네이버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했습니다. 블로그 마케팅과 카페 운영이 주 매출처였고, 이를 운영하기 위한 직원도 몇 명 있었습니다.


 마케터들은 대부분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 하지요. 친구 역시 자신의 제품, 서비스를 가지고 싶어 했어요. 마케팅에는 자신이 있는데 항상 남의 일만 받아서 하다 보니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를 고민해봤고, 제주도에 게스트 하우스 예약 앱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에서 채용을 진행하기도 힘드니 저에게 영입 제의를 한 것입니다. 그 회사에서 저는 처음에는 서비스 파트의 PM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마케팅 전략을 담당하게 됐지요. 추가적으로 계약 내용의 검토라거나 마케팅 전략, SEO 같은 마케팅의 기술적인 부분 등을 맡게 됐습니다.  


2. 이 회사의 장점 : 매출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추가적인' 직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비스를 만드는 PM으로는 똑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니까 매출을 신경 쓰지 않는 스타트업의 속성이 그대로 반영된 직무였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주어진 직무는 매출이 기반인 직무였죠. 


 매출이 있기 때문에 먹고 살 걱정은 앞의 동아리 같은 회사에 비하면 덜했습니다. 친구는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다고 할 수도 없는 금액의 월급을 약속했지요. 저는 최소한의 생활비 외에는 거절하고 프로젝트 비용으로 써달라고 했지요. (그래 이때는 스타트업 스피릿이 넘쳤어...) 정부 사업도 몇 개 받아봤고, 투자 유치 제의도 여러 차례 받아봤기 때문에 서비스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받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어요.(인터넷 기사로는 수 차례 투자 유치받은 것 같은 사람) 저는 그랬지만 같이 일하는 다른 친구, 직원들은 월급을 받았으니, 전에 회사에 비하면 좋은 환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모일지 고민하거나 정부지원 사무실을 찾아 헤매지 않고 같이 모여 일할 사무실이 있다는 것도 좋았지요. 이 모든 것은 회사가, 팀이 운영될 매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3. 이 회사의 단점 : 스타트업이란 매출보다 성장에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이 매출이 우리의 성장에 발목을 잡았지 않았나 고민스러워요. 스타트업 업계에서 외주를 하거나 정부사업을 수행하면 진짜 의미 있는 서비스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대규모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 중 성공한 기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유니콘 중에서요. 그나마 배달의 민족이 국민대학교에서 작은 사업을 수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유니콘을 키우지 못한다고 말하죠. 그만큼, 스타트업은 외주나 정부사업을 수행하기보다 서비스를 집중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후회한 것은 프라이머 엔턴쉽의 초기 발표팀으로 선정되었고, 투자 계약 과제가 주어졌음에도, 우리는 계약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계약으로 일정 지분을 넘겨주고 시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는데, 매출이 있다 보니 이것이 저희에게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출 대비 너무 작은 금액이었거든요. 서비스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진 것은 매출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기준으로 접근한 거였어요. 단순히 금액이 아니라, 그분들과 일해 볼 수 있는 기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린 거였죠. 만나본 몇몇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프라이머의 투자유치가 꿈이었다는 분들도 꽤 계셨습니다. 그만큼, 돈이 문제가 아니라 국내에서 손꼽히는 분들과 일해볼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는 것이죠. 그런 기회를 잡았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기회라고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저의 고질병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서비스의 완성도에 비해) 기회가 주어지다 보니 그 기회가 크고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싶네요.


4. 얻은 것과 잃은 것.


 얻은 것 1. 매출 기반으로 생각하는 법 


 이전 회사에서는 매출을 기반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매일매일이 적자인 회사에서 계산을 해봐야 고통스러운 것이었죠. 입출금 내역, 지출 내역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늘어나는 마이너스를 보기 싫어서 계산을 포기해버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출을 기반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죠. 그랬기에 우리 팀은 유지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매출을 만들면서 팀원들의 성장을 기다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고민하곤 합니다. 우리 팀을 '스타트업'으로 정의했기에 매출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 스타트업이라는 관점 자체가 저의 관점이었고, 우리 팀원들이 원하지 않는 관점이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외주라도 하면서 경험을 늘리고 싶었던 친구들이 있었으니까요.


얻은 것 2.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법


 프리랜서를 매출을 만드는 일로 시작한 대표의 사고방식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로부터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행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친구의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 친구가 이것으로 돈을 벌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에 저는 직접 코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워드프레스라는 툴을 통해 개발을 했는데요. 일일이 새로 만드는 것보다 워드프레스를 통해 만드는 게 퀄리티 있으면서도 훨씬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저는 워드프레스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개발자로 생각하지 않았고, 당시에 워드프레스는 보안 문제도 있어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우린 서비스를 만들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외주를 해선 안돼!)


 그런데 이후의 저는 워드프레스를 바탕으로 프런트 엔드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기업의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잘 런칭해서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들이 있지요. 저에게 제안을 했던 친구는 무엇이 사람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기능 중에 무엇이 사람들에게 가장 잘 팔릴지를 정확히 알았죠. 서비스를 키우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받는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서비스를 만들면 이것이 가장 어려워요. 설문조사는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서비스가 만들어지면 실제로 설문조사와 같이 구매가 일어나지 않아요. 즉, 구매라는 관점과 설문조사의 관점은 완전히 달라요. 이를 프러덕트 마켓 핏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이 회사에서 이 친구 덕분에, 그리고 거래처를 통해 이 프러덕트 마켓 핏을 발견하는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서비스의 당위성을 중심으로 생각했지 않았나 싶어요.


잃은 것 1. 현실과 꿈 사이에서- 쇠퇴해가는 꿈


 이 회사에서 제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이게 구멍가게 운영하는 것과 뭐가 달라?'였습니다. 매출이라는 현실적인 기준을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아직 꿈에 취해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스타트업에 미쳐있던 인간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보편적인 서비스를 만든다라는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당시에 이 회사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꿈은 '크리에이터도 대출받는 세상'이었고, 제가 만드는 서비스가 여기에 작은 기여를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꿈에 올인하지 못했어요. 우리에게는 그래도 매출이 있었고, 몇 년을 이렇게 살아도 될 거 같았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우리는 매출을 버리고 투자금으로 팀을 운영하고, 서비스 개발사로 넘어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니 어쩌면 프라이머를 통해 더 많은 관계가 맺어져 매출도 더 뛰어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출 대비 작은 투자금, 우리가 넘겨줘야 하는 지분을 고려해, 그 제의를 거절했죠. 꿈에 미쳐있었던 시절이었다면, 매출이 거의 없는 시절이었다면, 당연히 했을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잃은 것 2. 꿈에 미쳐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또한 여기서 스타트업에 미쳐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잃었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서비스의 구상이 끝났을 때, 지난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개발자 동생에게 스카웃 제의를 했었어요. 그때 제가 그 동생에게 권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 모일 수 있는, 숙식을 함께할 수 있는 사무실. 2) 적당한 수준의 월급. 두 가지였습니다. 사실,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이 별로 없던 초창기였고,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 동생에게 받은 피드백도 두 가지였습니다. 1)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 서비스의 구조와 비전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 했다. 2) 형이 스스로 변했다 변했다 이야기할 때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오늘 정말로 형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시커메졌다...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까요. 변해버린 자신이 싫은 것도 아니고, 변해버린 자신을 모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정말로 변해버려서, 이제 서비스보다 환경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동생을 마지막으로 '서비스가 가장 먼저'인 사람과 일해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만든 것'인 사람이요. 이후에 다른 회사에서 채용을 진행할 때, 이렇게 서비스가 최우선인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늘 주장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꿈에 미쳐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잃어버렸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서 멀어졌으며, 그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요. 


5. 소고 : 매출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에게 


 창업과 스타트업이 비슷한 말이 되어가는 지금, 이것은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고 봐요. 기업에서 매출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성장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우리 팀이 지향하는 바가 정말 폭발적인 성장인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죠. 제니퍼소프트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지만 꿈의 직장으로 통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는 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실제로도 팀이 마케팅 팀과 서비스 팀으로 쪼개져버렸습니다. 폭발적 성장도 매출을 기반으로 하는 차분한 성장도 모두 가치 있는 것입니다. 다만 함께하는 팀원 간에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 너무 쉽게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사실 벤처를 지나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생겨날 때(스타트업해요보다 벤처기업이에요 라는 말이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때), J커브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스타트업이 아니다 라는 말이 유행했어요. 당시의 저는 이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실리콘벨리처럼 성장을 추구하는 모든 조직은 스타트업이다 라는 정의가 더 멋져 보였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분명히 구분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폭발적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고, 폭발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또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중소기업이지 스타트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낮은 임금을 견딜 수 있는 지분 계약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제가 일한 스타트업들은 낮은 임금에도 지분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장이란 말은 말뿐인 목표였습니다. 즉, 낮은 임금이 올라갈 일도, 지분도 말 뿐이었죠. 이런 기업들은 그냥 중소기업입니다. 


 그러나 매출을 바탕으로 차분차분 성장하는 것을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허황된 계획보다 훨씬 건설적이죠.(그러니까 지분보다 연봉이 편하다는 말.) 스타트업이라는 미명 하에 낮은 임금의 착취를 하는 기업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실은, 이런 기업에 인재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죠.(드디어 밝혀지는 이직이 쉬웠던 이유. 프로 이직러로 살 수 있었던 이유. 낮은 임금의 착취에 동의했기 때문에.


 아마 작은 회사로 이 부분을 고민하는 회사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나만 모지리라 고민했나?) 우리가 원하는 회사의 형태는 어떤 것인가, 구성원과 많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걸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후에 이것에 완전히 실패한 회사 이야기가 나와요! 핳핳핳) 일과 삶의 밸런스도 중요하지만, 꿈과 현실의 밸런스도 중요하니까요!


 오늘의 논조는 '매출을 중시하다 꿈을 잃었다'가 될 텐데, 바로 다음에 소개할 회사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회사입니다. (사실 이직할 때마다 그 회사에서 가장 문제였던 것이 다음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직이 잦은 이유를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라 했을 때, 이직의 이유가 다 달랐기에 대답하기 어려웠다.) 다음에는 매출보다 투자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회사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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