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도 좋아하고,
밖을 나돌아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한없이 걸으며 침묵하는 것도 좋아한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침묵하는 것도,
한없이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한다.
책상에 앉아 행복에 관해 심오하게 고민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들과의 심도 깊은 대화가
다소
지루해질 때쯤, 밖을 나돌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 쓴 듯 안 쓴듯한 패기 넘치는 청년 룩(?)으로 갈아입고 동네를 거닐다가
문득
행복해지는 방향과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넘치게 있을 것 같은 서점으로 향하고 싶었다.
가끔
이런 충동적인 발길에 재미를 느끼는 편인가 보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면 몇 퍼센트인지 모르는 확률인
절묘한 타이밍이란 것에 마주하게 된다.
계단을 내려오는 속도를 유지한 채로 지하철에 탑승할 타이밍.
혹은
뛰어내려왔지만 눈앞에서 닫히는 비극적 타이밍까지.
. 늘 우리 인생은 타이밍이라 말하거늘.
이마저도 타이밍에 포함된다면 인생 너무 팍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난 뒤로부터 뛰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탑승했다고 한들 그 타이밍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각자가 풍기는 향보다 빠른 속도로 뛰어내려 갔다.
주인 찾아 따라가던 향의 일부는 내 콧속으로 들어오거나
지하철 어느 공간 곳곳에 자리 잡다 사라진다.
향이 사라지는 동안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으로 가득한 공간에 홀로 녹색빛을 뽐내고 있었다.
'비상구
정확히 말하면? 아니
솔직히 말하면! 비상구 방향을 알려주는 저 녹색의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시간도 보낼 겸, 항상 하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데 어찌 눈을 마주칠까.
그러나 나는 패기 넘치는 청년 룩(?)을 입은 청년이 아니었던가.
패기롭게 눈을 마주쳤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
너
나
알아?
넘쳤던 패기가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집에서 마주친 친구들이 그리웠다.
한번 꺼낸 용기에 뭐라도 담고 싶은 마음에
소심하지만 집요하게 재차 질문했다.
"그런 건... 아닌데... 혹시... 행복... 하시..."
이름도 몰라주는데
행복할리가 있겠어?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텐데?
이쪽으로 가면 된다.
저쪽으로 가면 된다.
방법부터 방향까지.
비상구, 그 친구도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근데 이름을 몰라?!
기껏 만들어놓고 방관하는 거야 뭐야?!
"저... 말씀 중 죄송한데요... 방관 까지는... 아닌..."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야 할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친 나의 잘못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뭐.
생각해보니
방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네.
가만 보면 말이야.
이래라저래라
어떻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데...
으... 잔소리...
속 시끄러워.
물론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잔소리지만!
일종에...
리더십?이라고 할까?
그럴 때 아니면... 내버려 두어 내버려 두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란 말이야.
나 봐. 내버려 두니까 얼마나 좋아.
이런 대화들을 계속하다 보면
가끔 정신이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내가 원하고자 했던 답이 무엇이었을까부터
나는 왜 눈을 마주쳤는지 까지.
항상 말에는 요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점 없는 말에도 분명 핵심은 있을 것 같았다.
방관이...... 나쁘지 않다?
방관이라는 말은 긍정보단 부정에 가깝게 느껴지는 단어이었다.
그렇다고 또 엄청나게 부정적인 것 같진 않고.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흩어질 수 있는 단어인 것 같다.
부정에 가까운 이 단어를 긍정으로 조금 옮겨보고
생각해봤다.
"맞아요. 방법. 방향 말고 방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알면 지하철이나 타.
열차 왔어.
오고 가는 이야기 중에 지하철이 왔다.
가끔 여러 책들을 보다 보면 교훈을 주는 경우도 있고
삶이 여러 방향을 열어주는 것들도 있었다.
때론 이런 글들도 있으면 어떨까.
교훈도 방향도. 그리고 방법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알아서 받아들이는.
일종에... 글쓴이의 방관?
들썩이는 지하철 안에서 행복이란 무거운 단어는 잠시 방관해놨다. 그리고 '비상구'라고 불렀던 이의 이름을 찾아보며 다음 정거장에서 문이 닫히기 전,
정확한 이름을 불러드렸다.
'안녕하세요. 비상구 유도등 씨.'
p.s 당신의 잔소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해요. 감사합니다.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