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가 ('나에게') 사랑받는 이유 - 방구석 논문[뻥튀기 편]
싫어하는 것 빼고는 다 좋아하는 입맛.
대중적이며, 보편적이고, 지극히 맛집의 기준 진입장벽이 낮은 편에 속하는 입맛. 그 뜻은 웬만한 건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갖고 있는 입맛이라는 것.
군것질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기에 평소 늘 자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제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운동을 해주며 가끔씩 먹어주는 군것질거리들은 나름 삶의 재미가 된다.
처벅처벅- 길을 올라가던 중 느리게 뛰던 심장박동과 같은 비트로 울려대는 펑-펑- 소리에 멍-하니 걸어가다 눈길을 돌려보게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다. 주민센터 앞에 가끔 찾아오는 뻥튀기 아저씨. 즉석에서 뽑아내는 뻥튀기 탄생의 경쾌한 소리는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꼬깃꼬깃-지폐를 들고 나름의 파스텔톤을 자랑하는 뻥튀기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부터 술에 잔뜩 취해 이거 저거 요거- 마구잡이로 한 봇 다리 사가시는 어르신들까지. (뻥튀기 도매업인 줄 알았다...)
자극적인 대기업들의 과자들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무한먹방이 가능한 슴슴한 맛의 뻥튀기가 당길 때가 있다. 사실 '있다' 보다 '많다.'가 맞다. 뻥튀기는 언제나 당긴다. 눈앞에 두고 멍-하니 바스락 거리며 오물오물 씹다 보면 바닥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고 내 배에는 알게 모르게 지방층이 쌓여 있...(운동 보상 들어간다.)
그렇게 나는 뻥튀기를 사고 말았다. 무심하게 거슬러주는 거스름돈에 외로운 반쪽 남은 5천원이 불쌍해 보여 한 봉지 더 살까 했지만, 외로움 보다 빈 지갑의 허기가 더 불쌍해 보였기에 추가구매는 없는 걸로.
이제 세상은 내 거다. 뻥튀기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휘휘-돌리며 집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에 뻥튀기를 구매한 합리적인 이유와 이익을 생각해 봤다. 대기업 과자들 몇 봉지 사면 훌쩍 넘어가는 금액보다 저렴하게 구매한 것. 그리고 칼로리가 낮을 거라는 부족한 지식으로 머릿속에 구겨 넣는 세뇌. 어쩌면 밥 대신 먹어도 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합리화까지.
그리 길지 않은 잡생각 이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까라는 방법들을 상상해 본다. 냉장고에 꽁꽁-숨겨져 있는 아이스크림이랑 같이 먹어야지. 그리고 믹스커피랑도 먹어봐야지. 등등
결국 이것저것 해먹어보고도 남아있는 뻥튀기를 우걱우걱- 먹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 키보드에 눈 떨어 질까 싶어 한입에 구겨 넣고 오물오물 거리며 끄적여본다.
한동안 하지 못했던 글쓰기는 언제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 덕에 다시금 쓰게 된다.
'뻥튀기는 왜 맛있을까?' 그리고 '왜 꾸준하게 사랑받는 것일까? 나에게-'
슴슴한 매력? 자극적인 과자들 사이에서 이런 슴슴한 맛이 지금까지 생각나게 만들 수 있었던 건 엄청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그렇다고 매운맛은 전혀 없는? 오묘한 그런 매력.
며칠 전 친한 형과의 커피타임에서 '평범하게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평범함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더 모호한 부분이긴 하나 각자가 느끼는 본인의 삶아 평범할 거라 생각하기는 쉽지가 않다. 각자의 수많은 사연들은 맵고, 짜고, 달고, 쓰고, 시고......? 말하다 보니 오미자 같네... 나 또한 생각해 보니 그다지 보편적이거나 평범한 인생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모든 기준을 나에게 맞춰 본다면? 나는 평범하진 않지만 그래도 잘 이겨내면서 즐겁게 살아가려 노력 중인 것 같다. 그런 팍팍한 삶 가운데 슴슴한 뻥튀기가 자극적이었다면 어디 내가 찾았겠는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은 오미자 같은 맛 말고, 무던하고 착했으면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들어오는 것들은 굉장히 자극적이기에. 그래서 어쩌면 멍-때리는 시간을 만끽해보려 노력하는 거 일수도.
바스락? 거리는 식감이 참 좋다. 치아보다 덜 딱딱한 뻥튀기의 식감은 겉바속촉을 매우 좋아하는 나에게 꽤나 좋은 재미이다. 이런 식감 덕에 변형이 다채롭다. 아이스크림을 사이에 넣고 먹을 수도 있으며, 예술혼이 시도 때도 없이 발열될 때 해본 적도 없는 조각의 세계로 빠져들어 볼 수도 있다. 나만 알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진 뻥튀기는 현대미술의 대적할만하지 않을까 라는 영양가 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콧방귀 한 번에 곧바로 입속으로 들어가는 작품은 도자기를 만들어 깨부수는 장인의 느낌을 만끽하게 한다. (이런 기분이시군요.)
가성비가 좋다. 옛날에는 더 저렴했었던 기억이 있지만, 우리 동네 뻥튀기 아저씨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많은 양을 넣어 주신다. 며칠 째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뻥튀기는 단 돈 5천 원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보통은 저렴한 가격대비 훌륭한 이익이나 쓰임을 잘하는 것들을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뻥튀기는 기분이 좋을까?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고, 앞서했던 생각보다 더 영양가가 없을 수 있지만 궁금했다.
그만한 대우와 가치를 인정받고 싶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뻥튀기의 가격이 오른다면? 상상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거든...
한 움큼 입압으로 구겨 넣고 내일을 기약하며 봉지의 끝을 잡아 야무지게 매듭짓고 있었다. 예로부터 봉지에 담겨 팔리는 뻥튀기는 대세를 따르지 않았다. 종이나 낱개 포장을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언제나 포근한 베이지 색으로 나왔다. 생각해 보면 마라나 민트가 붐을 일으킬 때 모든 음식과 음료에 민트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핫한 소재들은 많았지만 뻥튀기가 콜라보를 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민트뻥튀기, 초코뻥튀기, 딸기뻥튀기, 녹차뻥튀기, 마라 뻥튀기, 불닭뻥튀기...
다양하고 독특하게 선을 넘으며 궁합 따위 뒤로 한채 일단 찍고 나온 수많은 실패들 속에 묵묵히 자신의 맛만 고수하며 천천히 달리고 있는 뻥튀기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하나 궁금하긴 하다. 뻥튀기에 맛을 넣어본다면?
대세를 따르고 유행을 따라가는 다소 느린 나는, 이런 뻥튀기가 나와 닮아 있다는 것을 느껴본다. 나와 닮은 것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수히 많은 이유들 중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이었다.
뻥튀기 같은 사람. 사람 같은 뻥튀기(?). 오묘하게 닮은 뻥튀기를 사랑하는 이유.
오늘은 특별히 '금요일'이니까-
뻥튀기를 2개씩 먹어야지. 뻥튀기의 높은 가치를 주중의 사치로 뽐내드리리-
쓰다보니 뻥튀기 사업 할뻔.
먹다보니 뻥튀기 사업 할뻔.
일단 그만 쓰고, 그만 먹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