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아니라?
어릴 적 가물가물한 정취가 머리를 스칠 때가 있다. 그리고 따라오는 후각의 기억이 눈을 감게 만들고, 그때의 추억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가끔씩 찾아오는 과거형 인간은 때아닌 시간여행을 재촉한다. 못 이기는 척 끌려가다 보면 하염없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모름지기 여행의 끝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줄곳 타지 생활을 길게 한 탓에 아침을 챙겨 먹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매번 밥을 차려먹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습관이 되어버린 패턴에 오전에 끼니를 먹는다는 것 자체는 마치 사치와도 같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나마도 계란이라도 먹자는 생각으로 노력은 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복불복 같은 아침식사가 되었다.
등교하기 전 엄마가 차려준 아침에는 따끈따끈한 감자가 들어간 뽀얀 국물이 있었다. 고소하다는 맛이 어떤 맛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때. 그저 참기름맛이 고소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뽀얀 국물의 맛이 아주 고소했었던 것 같다. 작은 알감자가 포슬포슬 씹히는 식감도 좋았다. 난 그 국을 감자국이라 불렀다. 맛있긴 했으나 굳이 찾지 않았다. 때 되면 밥상 위로 올라오는 그 감자국은 제철에 맞게 시원한 바람과 함께 뜨끈한 연기를 휘날렸었다.
소중한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무서운 현상은 늘 후회와 아쉬움을 동반한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른인 척하는 나이었을 때쯤. 집에서 작은 알감자를 손질하는 엄마를 봤다.
"감자국 하게?"
"아니, 토란국."
토란국?!?!!?
그때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건 감자가 아니라 토란이었으며, 감자국이 아니라 토란국이었단 사실을.
그리고 이후 차려 주신 엄마의 밥상에는 세상 고소한 토란국이 윙크를 날리고 있었다. 마치 수년을 속고 속이던 치열한 신경전을 끝내고 비로소 친구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언제나 속고 있었던 건 나였으니 신경전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네. (감자전이라고 해야 하나. 토란전?)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날 수 없는 엄마와 밥상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그리고 소중함이다. 가끔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 비슷하게 흉내를 내본 음식들이 있으나, 그 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소중한 건 흉내 낼 수도 없나 보다. 지나고 나면 그저 기억하고 떠나보내는 것뿐.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이란? 인생뿐인 것인가. 여행을 떠나 본래의 자리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을 끝이라 말한다면 아직 우린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토란국을 감자국으로 착각했던 수년의 세월 속에 지금의 토란국에 추억을 불어넣었으니, 먹지 않아도 향과 맛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먹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떠돌아도 좋으니 여행이 아름답게 이어지길 바란다. 잠시 멈춰 그저 둘러봐도 좋으니 아름다운 여행이 찬란하길 바란다.
나의 여행도. 그리고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여행에도.
가을이 오면 토란국 한 그릇 어때요?
나는 토란국이 먹고 싶다.
나는 감자튀김도 먹고 싶다.
원래 여행은 항상 배고픈 법이다.